좋은 말씀/-매일 묵상

목사공부(11) '칭의는 수행의 존재론적 근거다.'/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5. 5. 5. 04:15

수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서 찾는다는 사실에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에 충실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겉으로는 이게 말이 된다.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덕을 아무리 높이 쌓는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런 노력은 우리를 좌절하게 하거나 교만하게 만든다.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충분히 해명했고, 루터도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이라는 신학 개념에서 분명하게 언급한 칭의(稱義)에 대한 가르침이 그것이다. 실제로는 의롭지 않지만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바울과 루터의 칭의론에 근거해서 수행을 외면하는 건 칭의에 대한 오해일 뿐만 아니라 수행에 대한 오해이기도 하다. 칭의는 업적주의에 대한 경고이지 삶을 무게를 배제하는 게 아니다. 삶이 배제되면 소위 값싼 은혜에 떨어지게 된다. 수행을 율법으로 보면 곤란하다. 수행이 오히려 복음이다. 수행은 복음과 마찬가지로 업적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영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수행은 칭의의 인식론적 토대이고, 칭의는 수행의 존재론적 근거다. 칭의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만이 삶을 수행으로 여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