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늘도 황혼이 찾아왔습니다.
동쪽 하늘부터 조금씩 어두워지다가
마침내 잠시 노을이 졌던 서쪽 하늘마저 어두워지면서
모든 세계가 어둠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루가 늘 낮이거나 밤이었다 하더라도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겠으나
황혼의 신비는 경험할 수 없었을 겁니다.
주님,
저는 어릴 때 황혼이 주는 감미로움과 신비로움에
황홀해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김소월의 ‘옛 이야기’를 흥얼거렸습니다.
한국적인 정서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느낌이 아니겠습니까.
밝음에서 어둠으로 변화되는 그 현상이 저를 막연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그리움에 빠지게 했습니다.
어른이 된 후로 황혼을 다르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몇 분 단위로 색깔이 달라지는 황혼의 서쪽 하늘을 보면서
꿈틀대는 지구의 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태양과 저 별들, 우주의 에너지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에 충만한 신비로운 힘이었습니다.
주님,
제가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황혼을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여행도 끝날 것입니다.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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