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의와 공의 (이사야서 51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1. 27. 05:38

해설:

1절부터 8절까지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의’에 대해 말씀하신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아”(1절)를 직역하면 “의를 따르는 사람들아”가 된다. 여기서의 의는 ‘쩨데크’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죄로 인해 어긋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잡히는 것이 ‘구원’이다.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마치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혹은 구덩이에서 꺼낸 것처럼 약속의 땅에서 떨어져 나왔다. 주님은 그들에게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고 하신다(2절). 그들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선물로 아들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광야를 에덴처럼” 혹은 “사막을 주님의 동산처럼”(3절) 만드실 것이다. 포로된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그분의 ‘의’가 만백성의 빛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4절). 여기서의 의는 ‘미쉬파트’로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미쉬파트’는 악을 일삼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되고(8절),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된다. 하나님은 “나의 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가 능력으로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5절)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의를 아는 사람들” 즉 “마음 속에 내 율법을 간직한 백성들”(7절)은 죄악 된 현실을 보고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며” 그분의 “의는 꺾이지 않을 것”(6절)이기 때문이다.

 

9절부터 11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행하신 전능의 능력들을 열거하면서 그 능력을 떨쳐 유다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기뻐하게 될 것이다. 

 

12절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것은 이사야를 통해 유다 백성 전체에게 전하는 말씀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망각하고 이 땅의 통치자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을 억압하는 사람들은 “죽을 인간들”이며 “한갓 풀에 지나지” 않는다(12-13절). 주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포로로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키실 것이다(14-16절).  

 

17절부터 23절까지는 이사야가 유다 백성에게 하는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노의 잔”(17절)을 충분히 마셨다. 유다 백성 중에 그들을 구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18절).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자녀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 갔기 때문이다(19절). 포로 생활 칠 십여 년 후에 그들은 만취한 사람처럼 쓰러져 있다(20절). 이사야는 낙심해 있던 동포들에게 자신의 말에 귀 기우리라고 하면서(21절), 주님께서 진노의 잔을 그들에게서 거두어 그들을 괴롭힌 자들에게 마시게 하실 것이라고 전한다(22-23절). 

 

묵상: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의‘(짜디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 아래에서 모든 것이 제 모습을 얻고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하나의 큰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공의’(짜디크)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좋다”(토브)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름답고 평화롭고 복된 상태를 깨뜨린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로 선택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 균열이 생겨났습니다.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왜곡되었고, 세상은 불의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사와 세상사에서 겪는 모든 고난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바빌로니아에게 패망하고 칠 십여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충분히 마셨습니다. 절망의 깊은 구덩이에 누워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회개하고 그분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의’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공의’를 행하실 것입니다. 회개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는 구원입니다. 

 

“진노의 잔”이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 대신 마셔야 할 ”진노의 잔“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 26:38)라고 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마시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그 잔을 마시지 않고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의’와 ‘공의’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짜디크) 거듭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미쉬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