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종교개혁 494주년(20)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10. 17. 06:09

이것들 위에, 참으로 이 모든 것들 위에,

믿음의 의, 혹은 기독교적인 의가 있다.

이 의(義)는 다른 모든 의로부터 철저히, 그리고 주의 깊게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외냐하면 위에 말한 의들은 이 의에 반대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황제의 법들, 교황의 법들, 그리고 계명들에게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며,

우리의 행위로 구성된 것들이며,

스콜라주의자들이 가르치듯이 ‘순전히 자연적 재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며,

은사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공로에 의한 의도 하나님의 선물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로 없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인정하시는 이 가장 놀라운 의,

곧 믿음의 의는 정치적인 의도 아니며 의식적인 의도 아니며 법률적인 의도 아니며

공로 의도 아니며, 그것들과는 전혀 반대되는 의미이다.

 

위에 나열한 모든 의는 능동적인 의인 반면 이 의는 오직 수동적인 의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가 그 대가로 행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해 드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받기만 하고 우리 속에 누가 와서 행하도록 맡기는 일 뿐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의, 기독교적 의를 ‘수동적’ 의라 부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이것은 신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의이다.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는 의이다.

사실 그리스도인 자신도 합당하게 이해하지 못하며,

더구나 유혹에 빠진 상태에서는 그 뜻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의는 항상 가르쳐야 하며 계속해서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괴로운 일을 당하거나 양심에 공포를 느낄 때

이 의를 굳게 잡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견디지 못한다.

이 수동적 의만큼 튼튼하고 확실한 양심의 위로는 없기 때문이다.(루터,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