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김용택 시인의 시 「섬진강 동구」를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의 품과 부모님의 품이 있어 고맙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섬진강 17 – 동구 / 김용택
추석에 내려왔다 / 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 (중략)
-차비나 혀라 / ―있어요 어머니 /
철 지난 옷 속에서 / 꼬깃꼬깃 몇 푼 쥐여주는 /
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 /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 고개 숙여 텅 빈 들길 /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우야 (중략)/
공사판 모닥불 가에 몸 돌리며 앉아 불을 쬐니(중략) /
고향 마을 떠나올 때 / 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 /
눈에 선하다고 (중략)/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
너는 편지를 쓸 것이다 /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아우가 추석에 내려왔습니다.
잘 나가는 자식보다 힘든 자식에게 어머니는 늘 마음이 쓰입니다.
그래도 고향집을 찾아 준 자식놈이 고맙고 눈물겹습니다.
어머니는 소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철 지난 옷 속에서 꼬깃꼬깃 모아온 돈 몇 푼을 쥐여줍니다.
“차비나 혀라”“있어요 어머니”하는 자식의 마음에는 이슬이 맺힙니다.
일터로 다시 돌아와 어머니가 있어 좋다고
돌아갈 고향이 있어 고맙다고 편지를 씁니다.
편지 끝에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씁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먼 발치에서도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갑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20b)
성공해서 돌아오는 아들은 집으로 당당히 들어옵니다.
그러나 실패한 아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면목이 없어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멀리서 서성일까 봐,
문 앞에 나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아들이 보이자 ‘아직도 거리가 먼 데’ 달려가 영접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고개 숙이고 서성거리는 우리를 이내 알아 보십니다.
유채꽃밭에서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어도,
눈밭에서 흰 패딩을 입고 있어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 우산을 들고 있어도,
우리를 알아보시고 달려와 안아 주십니다.
불효자식이라며 고개를 숙여도 잔치까지 벌여 주시며 안아 주십니다.
돌아갈 하나님의 품이 있다는 것이,
부모님의 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이제는 한가위 풍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먼 거리를 달려 그리운 사람들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가위는 여전히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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