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바울 사도의 편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복음의 원리를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복음을 따라 사는 삶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5장 15절까지에서 사도는 복음의 원리에 대해 설명한 다음, 16절부터는 복음을 따라 사는 삶에 대해 설명한다.
복음을 따라 사는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다. “살라”로 번역된 ‘페리파테이테’는 현재 명령형이다.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지속적 행동을 의미한다. 지속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때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따르지 않게 된다. “육체의 욕망”은 우리의 죄성에서 나온다. 반면, 육체의 욕망을 따르면 성령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 육신 안에 살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는 둘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어 있다(17절).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율법 없이 율법을 성취한다(18절).
사도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 때 행하게 되는 여러가지 죄들을 나열한다. 성적인 죄(19절: 음행, 더러움, 방탕), 종교적인 죄(20절: 우상숭배, 마술), 관계적인 죄(20절: 원수맺음, 다툼, 시기, 분냄, 분쟁, 분열, 파당, 질투), 무절제의 죄(21절: 술취함, 흥청망청함) 등이다. “그와 같은 것들”(21절)이라는 표현으로 사도는 열다섯 가지의 죄들이 예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사도는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상속받다”는 표현은 앞에서 아브라함의 약속을 설명하면서 자주 사용했다(3장).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사도는 성령을 따라 살 때 행하게 되는 일들을 열거한다. 그것을 사도는 “열매”라고 부른다(22절). 그것들은 성령을 따라 살 때 저절로 따라오는 변화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는 아홉 가지(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의 덕성을 언급하는데, 이것도 역시 예시일 뿐이다.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는 다 열거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23절)는 말은 그 무엇도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믿는 이들은 육체의 욕망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옛 사람을 그분과 함께 못박았다는 뜻이다(24절).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여 주인이 되신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니,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마땅하다(25절). 따라서 잘난 체 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성령을 따라 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26절).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옛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세례는 옛 사람에 대한 사망 선고이며 새 사람에 대한 출생 신고의 사건입니다. 이 거듭남의 사건은 매일, 매 순간 성령의 내주와 다스림을 인정하고 따르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육신 안에 살고 있으며, 육신의 정욕은 다시 살아나 전횡을 부릴 기회를 찾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언제나 육신의 정욕이 이끄는 힘과 성령께서 이끄시는 힘 사이에 서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매일, 매 순간,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거룩한 변화에 대해 “성령의 열매”라고 부른 것은 적절한 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매 순간 그분께 자신을 맡기고 살아갈 때 온갖 아름다운 미덕들이 우리에게서 일어납니다. 성령을 따라 살기 전에는 “우리 안에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성령을 따라 살다 보면 우리 자신도 믿기 어려운 거룩하고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잘 가꾼 과일 나무에 때가 되어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그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는 우리 자신에게 신령한 기쁨과 만족을 줄 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유익을 줍니다. 열매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믿는 이들은 역설적 실존을 산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옛 세상에서 새 세상을 살아가고, 육신 안에서 영을 살며, 목숨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삽니다. 따라서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을 숨 쉬지 않으면 어느 새 옛 세상으로 돌아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임재는 더욱 분명해지고 영생의 기쁨은 더 충만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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