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갈 5:2-12)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7. 24. 05:53

해설:

2절의 도입구는 개역개정처럼 “보라 나 바울은”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이 단락에서 사도는 지금까지 펼쳐 온 주장에 대해 결론을 짓는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이라는 표현은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 이미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할례를 받는다는 말은 유대교인으로 개종한다는 뜻이고,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겠다는 선택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율법 전체를 완전히 지켜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은혜로부터 스스로를 밀어내는 어리석은 일이다(2-4절).  

 

“그러나 우리는”(5절)이라는 표현으로서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과 자신을 한편으로 묶는다. 하나님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 믿는 이들은 율법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 그들은 미래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는 최종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 때 구원은 완성된다. 그것이 믿는 이들의 소망이다(5절).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할례 받았다고 나을 것이 없고, 안 받았다고 못할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고 싶어하시는 것은 믿음이고, 그 믿음은 사랑의 행위를 통해 입증된다(6절). 

 

사도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경주의 비유를 자주 사용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진리를 따라 잘 달려 왔는데, 유대주의자들이 끼어들어 방해했다(7절). 그것은 유혹요 속임수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8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들은 할례 받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한다”(9절)고 경고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런 유혹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10절). “주님 안에서”라고 덧붙인 이유는 자신의 확신이 주님께 대한 믿음에 근거해 있다는 사실을 전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을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을 흔드는 사람들은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사도가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는 이유는 할례를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낌”(개역개정 “걸림돌”)이다. 십자가 사건은 구원의 도구로서 할례와 율법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11절). 12절은 사도가 할례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할례는 성기의 표피를 제거하는 예식인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자기의 그 지체” 즉 성기 전체를 잘라내면 어떠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묵상:

사도는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에 대해 반박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진리들을 언급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근원적인 구원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는 복합적입니다. 첫째는 죄로 인해 받아야 할 징벌(저주)이 있고, 둘째로 우리의 본성에 깊이 퍼진 죄성이 있으며, 셋째로 그 죄성을 자극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악한 영의 유혹이 있습니다. 이 상태 안에 머물러 살게 되면 이 땅에서 죄를 쌓으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 영원한 죽음에 이릅니다. 그것이 자연인이 처해 있는 실존 상태입니다. 영원한 운명의 빛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저주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 저주는 누가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할례를 받겠다는 말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는 저주 아래에서 신음하며 구원의 길을 찾던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 안에서 자신을 결박하고 있던 죄의 사슬이 풀어지고 그를 사로잡고 있던 죄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주신 순수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은혜를 받아 들이는 일 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의 다스림 안에 들어갑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을 변화시켜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증거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 입증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사랑의 실천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성령의 능력 아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면, 사랑의 행위는 있는데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의 자만심을 충족시키는 일이 되고 맙니다. 

 

믿음은 경주이며 여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부터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성령의 능력을 힘 잆어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최종적인 심판을 통과하여 영원을 누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그리스도 신앙의 세 기둥으로 여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