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3절에서 사도는 1절에서 언급한 “자유”의 주제로 돌아간다. 새번역은 원문의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꾸어 놓았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노예 상태에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부르셨다.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기 위함이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믿음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육체의 욕망”은 인간 본성에 배어 있는 죄성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이유는 더 많은 죄를 쌓게 하려는 뜻이 아니다. 사도는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라는 말로 자유하게 하신 이유를 밝힌다. “섬기다”는 “종이 되다”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인간의 본성은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것이 자연인으로서의 모든 인간의 속성이다. 죄성 때문이다. 믿는 이들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께서는 죄성을 치유하셔서 죄가 이끄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한다. 억지로,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기쁨으로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되어 준다.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게 만든다.
이어서 사도는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모든 율법은 한 계명 즉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한다(14절). 예수님도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신명기 6장 5절과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여 답하셨다(마 22:34-40). 성경 안에 담긴 613개의 율법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며, 사랑한다면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
15절에서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물어뜯다”와 “잡아먹다”는 야수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갈라디아 교인들 사이에 분쟁과 다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을 잃었다는 의미이고, 그대로 계속한다면 모두가 망하고 말 것이다. 서로 싸우는 이유는 서로에게 주인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망하다”는 말은 공동체가 붕괴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구원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묵상:
현대인들에게 “자유”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자유입니다.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합니다. 근대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 과정이었습니다. 그 투쟁의 열매를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오늘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하지만 자유가 너무 많아서 자유를 당연시 하는 병폐도 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당연히 그런 것처럼 여깁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를 쓸 당시, 사람들은 여러가지의 속박과 예속 아래 살았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갈라디아 지방은 더욱 그랬습니다. 로마 황실은 “팍스 로마나”의 이념을 전파하면서 로마 제국의 보호 아래에 들어오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자유도 매우 제한적이었고, 경제적으로 그리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실제로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를 갈망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유”로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유에 대한 열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으라고 말합니다. 정치적 속박이나 신분적인 제한보다 더 근원적인 매임을 보라는 뜻입니다. 외적인 면에서의 자유는 당장 쟁취할 수가 없습니다. 식민지 주민들로서 로마 제국에 대항해 투쟁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근원적인 매임에서 벗어나는 일은 지금 당장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자유는 사랑과 함께 옵니다. 죄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은 자기중심성에서 풀려났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사랑은 자기 보호 본능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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