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진실로 자랑할 만한 것 (갈 6:11-18)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7. 28. 06:59

해설:

바울 당시에 글을 쓰는 일은 전문적인 기술에 속했다. 그래서 사도는 편지를 쓸 때 전문 필경사에게 불러 주어 쓰게 했다. 갈라디아서도 그렇게 썼는데, 11절부터 마지막까지는 바울이 직접 “큰 글자”(대문자)로 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자신이 쓴 편지임을 증명하는 싸인인 셈이다. 또한 쓰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12절)은 이방인 신도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유대주의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들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이방인 신도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기” 위함이다. 바울처럼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13절)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했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큰 자랑거리였다.

 

이에 반하여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14절)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대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에게는 전부가 되신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사도는 세속적인 조건들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것들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그 모든 것들을 똥오줌으로 여겼다(빌 3:8).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 여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못박는다. 중요한 것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15절)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 나는 것을 말한다. “이 표준”(16절)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리킨다.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난 모든 사람들 즉 갈라디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에게 축복의 안부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17절)라는 말로써 편지를 마무리 한다. ‘스티그마’ 즉 상처 자국은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고난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뜻할 수도 있고, 예수님의 상처 자국(못 박힌 자국과 창에 찔린 자국)이 그의 몸에 나타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후자일 수도 있지만, 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에 의해 사도성이 입증된다고 믿었다. “괴롭히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미혹됨으로 인해 겪은 마음의 고통을 가리킨다. 

그는 마지막에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한 축도로써 편지를 끝낸다(18절).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고, 세상 쪽에서 보면 우리가 죽는 것입니다(14절).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의 무엇을 얻기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믿기 전에는 세상이 전부였는데, 믿고 나니 세상은 의미 없어지고 그리스도 예수가 새로운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열린 하나님 나라가 새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목적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나라를 사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성령에게 심는 것”(8절)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생각과 말과 행실이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내가 중심이었고 이 세상이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이웃이 중심이고 하나님 나라가 목적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번영하는 것이 삶의 과제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과제가 됩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입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었고, 죄로부터 해방되어 성령을 따라 살게 되었으며, 하나님 나라에서 그 모든 것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때로 손해를, 때로 오해를, 때로 비난을, 때로 무시를, 때로 박해를 당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무게는 곧 우리 믿음의 진실됨을 증명해 주는 증거가 됩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됨의 증거는 얼마나 많은 이적을 행했느냐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느냐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믿음의 깊이만큼 우리는 희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상처 자국을 자랑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