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제 그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위 제목이오. 지금 우리는 급한 일에 휘둘리기 때문에 삶의 근본을 거의 놓치고 있소.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공동체인 교회에서 일하는 목사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소. 목회라는 게 장난이 아니라오. 뺑뺑이 돌듯이 교회에 일들이 많소.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목사가 게으르다는 말을 듣소. 신자들도 그런 목사를 원하오. 새벽기도 하고, 종일 심방하고, 여러 전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오. 교단 정치에 관여하는 목사들은 그것으로 또 바쁘오. 노회장이나 총회장을 하면 각종 회의와 모임에 설교 하러 다니느라 교회에 붙어 있을 시간도 많지 않소. 그래도 총회장을 하려고 애를 쓰는 분들이 많은 걸 보면, 좀 안 돼 보이오. 오죽 영성이 없으면 저런 일이라도 붙들려고 할까 하고 말이오. 또 이야기가 옆으로 나가고 있구려.
삶의 근본은 단순함이 있다는 걸 그대도 인정하리라 보오. 삶에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소.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이들의 삶을 보시오. 수도원 제도가 바로 그것이오. 수도승들의 삶은 단순 투박하오. 밖에 있는 사람들은 며칠도 버텨내지 못할 정도로 무미건조하오. 명상, 기도, 성경읽기, 적당한 노동, 소박한 밥먹기가 모든 삶이오. 더 줄이면 기도와 노동이오. 그런 삶은 수도원에서만 가능하지 세속에서는 말이 안 된다고 그대는 생각할 거요. 옳소. 그건 세속에서 비현실적이오. 그러나 이런 삶이 틀린 것은 아니오. 방향은 그것이오. 세속이 수도원이 된다면 그게 현실이오. 그러나 이미 역사는 다른 쪽으로 진화했기에 그걸 거슬러 갈 수는 없소. 여기에도 불가역이 작용하오.
세속의 질서에서 수도원 영성을 확보하려는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오. 복잡한 세속에서도 단순 명료한 삶의 본질에 천착하려는 사람들이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나는 말할 수 없소.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하오. 경험도 다르고, 능력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기준을 제시할 수도 없소. 한 가지만은 분명하오. 삶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훈련이 필요하오. 그러면 삶이 놀랍도록 단순해질 거요. 겉으로는 바쁘게 살아도 그의 영혼은 단순성에 집중될 거요. 그런 삶이 자리를 잡으면 삶 자체가 가벼워질 거요. 이런 차원에 이르는 훈련을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껍데기인지를 알아야 하오. 생각해보시오. (2010년 10월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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