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묵상에서 껍데기를 벗겨내라는 말을 했소. 그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전달되었다면, 내 말을 수정해야겠소.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는 껍데기도 필요하오. 과일에도 껍질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오.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불가결이오. 껍질이 없으면 속살이 보존될 수 없소. 껍질과 속살은 한 덩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소. 겉으로 보이는 것은 오히려 껍질이기 때문에 껍질이 실체인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소.
그대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말하는 걸 이해하시구려.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 형식들은 사실 껍데기요. 교회를 예로 들어보겠소. 목사라는 직책 자체는 껍데기요. 교회 건물도 껍데기요. 교회의 여러 조직도 껍데기요. 그것은 마치 과일의 껍질과 같소. 목사라는 껍데기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와 성만찬을 집행하는 행위가 들어 있소. 그것이 근본이오. 그것도 사실은 또 하나의 껍데기일 수 있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하니 말이오. 설교라는 형식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속살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말이오. 속살이 본질이라 하더라도 형식이 없으면 그것이 보존될 수 없으니 껍데기는 필요하오. 교회 제도를 모두 해체해 보시오. 본질까지 훼손되고 말거요.
가정이라는 제도 역시 껍데기요. 학교도 역시 그렇소. 돈 버는 직장은 더 말할 나위도 없소. 그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할 속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시오. 가정의 존재 이유, 학교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 거요. 현대는 그것이 실종되고 있소. 껍데기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데만 열을 내고 있소. 사람은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소. 껍데기의 화려함에 취하면 결국 속살은 외면당하는 거요. 속살의 맛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껍데기를 치장하는 일에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소. 껍데기는 껍데기의 역할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오. (2010년 10월8일, 금, 구름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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