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대가 나를 건드렸어, 톡톡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7. 12. 06:56

    혹시 그대는 김응교 시인을 아시오? 나는 신학대학교 학부에 다닐 때부터 그분의 시와 글을 읽었소. 뭘 알고 읽은 거는 아니고,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어서 그렇게 폼을 잡고 있었소. 아마 그분이 크게 뇌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오. 투병일기 비슷한 것을 읽은 것 같소. 다 옛날이야기요. 그런 젊은 시절이 좋은 것은 책읽기에 빠져들어 간다는 것이오. 김응교 시인이 금년 초부터 <기독교 사상>에 글을 연재하고 있소. 그분의 독특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시에 대한 해설을 하오. 이번 달에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소개하는 글을 썼소. 그 글의 제목을 오늘 매일묵상의 제목으로 그대로 따왔소. 김응교의 설명에 따르면 네루다의 대표 시의 제목은 <시>라 하오. 김응교 시인은 시창작이라는 강의의 첫 시간에 주로 이 시를 읽는다 하오. 다음과 같소.

 

 

그러니까

그 나이였지 ...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 왔는지 강에서 왔는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다. 그건 들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며 침묵도 아니었어.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자 돌아오는 길에서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것이 나를 건드렸어.

(it touched me)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었어.

뜨겁거나 잊혀진 날개들,

또한 내 맘대로 해보았지

그 불을

해독하며,

드디어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지.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진한

난센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구부러진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디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지.

 

     어떻소? 뭔가가 그대를 건드리지 않소? 저 시를 외우고 싶소. 그런데 내 나이에 시를 외울 수 있겠소? 그게 안 된다면 이번 가을에 도서관에서 네루다의 시집을 빌려서 읽어보겠소. 김응교 시인의 해설 마지막 패러그래프를 그대로 옮기겠소.

 

     우리에게 시혼(詩魂)은 이렇게 다가온다. 이 <시>를 쓴 네루다처럼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리의 눈시울과 뼈와 피를 조금씩 건드리며 말을 거는 시혼을 잘 환대해야 할 것이다. 그 시혼과 자주 친해지다보면, 영혼이 움직이고, 어쩔 수 없이 참을 수 없어 희미하게 혹은 어렴풋이 한 줄 쓰게 된다. 그런 순간, 갑자기 새 하늘이 열리고, 그냥 시라는 바람에 풀려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느껴지시는지. 시혼이 우리의 영혼을 건드리는 은밀한 순간을, 톡톡.

 

(2010년 9월27일, 월, 지난여름의 열기가 다시 그리워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