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넘겨 줄 대상 (막14:10-11)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3. 15. 05:20

해설: 

그 즈음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 대가로 은돈을 주기로 약속합니다(10-11절).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 준 이유는 돈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더 많은 돈을 요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궁지로 몰아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분은 이상하게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이후로 갈릴리에서 행하던 이적을 끊으셨습니다. 왜 그 이적의 능력을 억압하고 있는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 넣으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떨치고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는 그 때부터 예수님을 넘겨 줄 기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마가는 “넘겨주다”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합니다. 복음서에서 헬라어 ‘파라디도미’는 예수님이 죽음 당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넘겨 주었고, 로마 총독은 군사들에게 넘겨 주어 그분을 죽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넘겨줌의 행동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 넘겨 주었고, 성자 예수님은 그 뜻을 받아 자신을 군사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무력하게 죽음을 당하신 것은 그분이 스스로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묵상:

한 인간의 생각과 선택과 행동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연루 됩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만으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만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고, 혼자 만의 삶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행한 일이라도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영향이 미치게 되어 있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의해 영향 받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는 영적인 영향도 연루되어 있습니다. 악한 영은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교란시켜 멸망의 길로 가게 하고,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을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조심하라”, “지켜 보라”,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시 방심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끌려 다니거나 환경에 지배 당합니다. 악한 영이 그 기회를 틈 타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분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것이 우리가 치룰 영적 전쟁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우리의 주권을 성령의 손길에 “넘겨 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체적인 존재요 독립적인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그것은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누구에겐가 예속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래 창조주의 사랑 안에 살도록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인가에 예속 됩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넘겨 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문제는 어떤 힘에 자신을 넘겨 주느냐에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의 마음을 교란시키는 악한 영에 자신을 넘겨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예수님을 권력자들의 손에 넘겨 주는 죄를 범합니다. 바울 사도는, 죄의 본질이 타락한 욕망에 자신을 “넘겨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1:24). 따라서 우리는 죄에 대해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자유의지를 오용하여 그릇된 것에 자신을 넘겨 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