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소중한 것을 잃는 거래 (창 25:19~34)

새벽지기1 2023. 11. 11. 07:05
인생의 수많은 선택은 다른 한편으로 거래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처럼 명확하게 주고받는 거래도 있지만, 삶의 소중한 것을 내어 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거래도 있습니다. 소중한 것을 내어 주고 더 소중한 것을 얻는 거래가 있고, 소중한 것을 내어 주었음에도 하찮은 것 또는 헛된 것을 얻는 거래도 있습니다. 
구약 <전도서> 저자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소중한 삶을 내어놓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하늘 아래 일어나는 많은 일을 탐구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많은 사업을 벌여 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금하지 않고 행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삶의 소중한 부분들을 내어 주고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하고, “해 아래 새것이 없으며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영원을 만나지 못하면 인생의 그 어떤 수고와 거래도 헛됨으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영원의 관점으로 모든 인생의 선택을 추구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의 선택이 무엇을 내어 주고 무엇을 얻는 거래인가? 소중한 삶을 내어 주고 더 소중한 미래의 삶을 얻는가? 이 땅의 것을 내어 주고 영원한 삶을 얻고, 영원으로 살아가는 인생인가? 늘 질문해야 합니다. 
인간의 질서 뛰어넘는 부르심 주신 이유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거래를 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거래입니다. 그들이 왜 불행에 처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에서와 야곱이 함께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삭의 두 자녀가 리브가의 뱃속에서 쌍둥이로 태어날 때 두 가지가 강조됩니다. 첫째,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한 지 20년이 되도록 자녀가 없었는데 기도로 자녀를 잉태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할 때 40세였는데 19년이 되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삭과 리브가도 그랬습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해서 그녀를 위해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셔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됐습니다”(21절).
성경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기도했다고 나오는 첫 번째 기록이자 마지막 기록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시키시고 성장시키신 것처럼, 이삭의 믿음도 확인하고 성장시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시기에 때로 막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이 오랫동안 기도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두 아이가 태에서 싸우고 있을 때 리브가가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는데, 하나님이 그녀에게 주신 계시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네 태 안에 있다. 네 태 안에서부터 두 민족이 갈라질 것이다. 한 민족이 다른 한 민족보다 강하니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23절).
리브가에게 주신 이 말씀은 당시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를 뒤집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형이 동생을 섬긴다”는 메시지가 던져지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데, 당시에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혁명적인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에서와 야곱에게 당시 질서를 뒤집는 말씀을 왜 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에서와 야곱의 모든 일을 이 말씀을 기준으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시지만, 전통에 따라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따라 자유롭게 일하시는 분임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로마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을 강조할 때 이 사건을 인용해서 중요한 근거 구절로 삼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또한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인해 임신했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또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인하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인해 서게 하시려고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롬 9:10~12).
하나님이 리브가의 쌍둥이 자녀에게 당시 세계관과 관습, 인간의 전통을 뒤집는 계시와 선택을 하신 이유입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에서와 야곱이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택하시고 부르시는 뜻으로 인해 형이 동생을 섬긴다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인간의 어떤 행위, 반응, 조건, 선과 악의 행위에 근거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언약을 통해 주시는 복은 인간에게 나오는 어떤 조건이나 행위, 반응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그분의 주권적인 선택을 따라 주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질이 있어서 택함 받은 것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나은 의로움이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겸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시고 부르신 것입니까? 그 어떤 조건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는 근거가 아닙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던 ‘오직 은혜’라는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직 은혜의 부르심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인간의 질서를 뛰어넘는 부르심을 주신 이유입니다. 
두 자녀로부터 거리가 먼 아버지, 
어느 한 자녀에게 밀착된 어머니
이삭과 리브가에게 주어진 과제는 모든 선택의 관점을 하나님의 계시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자녀가 없을 때 그들은 마음을 합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두 자녀가 자라면서 어느 순간부터 대화를 상실하고,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이삭의 두 자녀에게서 일어난 불행한 거래는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의 계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하나님의 계시는 분명히 알았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남편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삭은 영적으로 어두웠기 때문에 불순종한 것이고,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기다리는 인내가 없었기 때문에 불순종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이삭의 가정에 일어난 갈등은 하나님이 뜻하시지 않고 의도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불순종하는 모습이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 
“그 아이들이 자라서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으로 들판에 나다니는 사람이 됐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장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27~28절). 
에서와 야곱은 전혀 다른 기질과 성격의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아주 잘하는 외향적인 남성적 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집안에 있기를 좋아하는 내성적 인물이자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조용하다’는 것은 단지 침착하다, 성품이 말이 없다는 뜻도 포함이 되어 있지만, 더 나아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성격’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어느 한 자녀에게 사랑을 집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에서를 사랑한 이유를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라고 설명합니다. 에서에 대한 이삭의 사랑은 조건적이었습니다.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습니다. 이삭이 사랑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에서가 아니라 고기였습니다. 에서는 자신이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보고 계속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사냥에 집중했고, 결국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어린 시절 자녀의 어떤 행위에 박수를 쳐 주고 인정해 주느냐에 따라 진로가 바뀔 수 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자신이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 길로 간 것입니다.
반대로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야곱을 가리켜 ‘마더 콤플렉스의 소유자’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세계에 중심이 되어 있는 사람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망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요즘 학자들이 말하는 ‘역기능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 자녀로부터 거리가 먼 아버지, 어느 한 자녀에게 밀착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깊은 친밀함을 잃어버리고, 대화를 잃어버리고, 두 자녀 양육에 대한 공통점과 자녀 양육 철학을 상실했습니다. 이삭은 그저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이삭에게 소외받는 야곱에게 집착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적으로 야곱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에서는 미래의 축복을 잃어버렸고, 
야곱은 가정의 화목과 우애를 잃었다 
이 배경에서 자란 형제가 불행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형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때를 맞춰 야곱이 죽을 만들고 있습니다. 형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의도가 정반대였습니다. 야곱은 일종의 ‘부비트랩’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부비’는 ‘바보’라는 뜻이고, ‘트랩’은 ‘올가미’, ‘덫’을 의미합니다. 바보들이 걸려드는 덫, 무심코 만지고 들 수 있는 것에 폭탄이 있는 것을 ‘부비트랩’이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야곱은 죽을 부비트랩으로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배고픔을 유난히 참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에서를 야곱이 이용한 것입니다. 
“에서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장자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냐?’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오늘 당장 내게 맹세부터 하십시오.’ 에서가 맹세를 하고 야곱에게 자기 장자권을 팔았습니다”(32~33절). 
에서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미래 자신에게 주어질 복과 즉시 주어진 필요를 바꾼 것입니다. 그는 즉각적인 만족과 순간의 필요를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숙이 무엇입니까?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입니다. 현재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현재의 고통을 감당하는 게 성숙입니다. 그에게는 성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을 지경인데 장자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했습니다. 
에서의 ‘죽을 지경인데’라는 말에서 그가 중독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중독이든 그 증상은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중독이 그렇습니다. 에서가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독의 영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떤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입니다. 
에서가 중독에 빠진 세속적인 사람이라면 야곱은 거룩한 사람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야곱이 어리석은 에서를 속였지만 장자권을 갖고 왔기 때문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인간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돕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불의한 속임수,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필요할 수 없습니다. 야곱의 교활한 방법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갸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겼기에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데 아닙니다. 유다의 죄이고, 야곱의 죄입니다.
형제의 거래에서 에서는 어리석음과 무지함으로 고난을 겪고, 야곱은 교활함으로 인해서 고난을 겪습니다. 남의 것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빼앗고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 모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권리라는 미래의 축복을 잃어버렸고, 야곱은 가정의 화목과 형제의 우애를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에서와 야곱은 서로에게 불행한 거래를 한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온 한 흑인 주교가 어느 콘퍼런스에서 이런 의미 깊은 말을 했습니다.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땅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 이 거래에서 손해 본 쪽이 어디입니까? 성경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성경을 버리고 땅을 가졌고, 땅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땅을 잃어버렸지만 성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인생에 내어 주고 무엇을 얻는 선택을 해야 할까요? 순간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미래에 주실 축복과 가능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선택과 거래를 하십시오. 야곱처럼 야심과 욕심을 이루기 위해 관계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거래가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삶을 묵묵히 인내하며 순종할 때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부정한 세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 믿음과 인내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것을 내어 드릴 때 영원히 가치 있는 것들이 우리 삶에 채워지는 인생의 선택과 거래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