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편 71편: 쓸 모 없어져도

새벽지기1 2023. 1. 1. 07:00

 

해설:

이 시편에는 탄원시(1-18절)과 찬양시(19-24절)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먼저 탄원시에서 시인은 늙고 병들어 쓸모 없어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의”(2절)에 의존하여 자신을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1-4절). 지금 그는 악한 사람들의 위협에 떨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해 왔는지를 말씀 드립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님을 믿어 왔고(5절) 태어날 때부터 주님을 의지해 왔습니다(6절).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7절). 그는 온종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살아 왔습니다(8절).

 

그런데 지금 그는 늙어서 쇠약해져 있고(9절) 적들은 그를 하찮케 여기고 음모를 꾸밉니다(10-11절). 시인은 사람들에게 하찮아진 자신을 하나님께서는 하찮케 여기지 말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펼치셔서 그를 공격하는 자들을 징벌해 주시기를 구합니다(12-13절). 그렇게 되어야만 그는 희망을 하나님께 두고 계속 찬양하며(14절) 주님의 의로우심을 전할 것입니다(15-16절). 그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의지해 왔음을 다시금 강조하면서(17절) 늙고 병든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18절).

 

19절부터는 찬양시로 바뀝니다. 이 부분은 시인이 구원을 받은 후에 쓴 것일 수도 있고, 아직 응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응답 받을 것을 믿고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주님의 의로우심이 저 하늘 높은 곳까지 미칩니다”(19절)라고 고백합니다. 그 의로우심은 그의 개인사에서 여러 번 증명되었습니다. 그가 비록 많은 재난과 불행을 당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20-21절). 그러므로 시인은 여러 가지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 하겠다고 고백합니다(22절). 그는 찬양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님을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은 흥겨운 노래로 가득 차고, 주님께서 속량하여 주신 나의 영혼이 흥겨워할 것입니다”(23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뿐 아니라 찬양은 원수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비밀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양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공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24절). 

 

묵상:

이 시편에서 시인은 두 번이나 자신의 쓸 모 없어진 상태를 묘사합니다(9절, 18절). 인간적인 기준으로 그는 늙고 병들어 하찮게 보였던 것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의 눈에 쓸 모 없어진 자신이 하나님께도 쓸 모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염려합니다. 그래서 그는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이 늙고 병들어 쓸 모 없어졌어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렇게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시편에서 “의”라는 말이 하나님과 관계하여 다섯 번 사용되었습니다(2절, 15절, 16절, 19절, 24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라는 말은 “그분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혹은 “그분은 믿을만한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 분이시기에 시인은 늙고 병들어 쓸 모 없어진 자신을 하나님께서 계속 사랑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은 사람의 가치를 “쓸 모”에 기준하여 판단합니다. 쓸 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림 받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사랑 받기 위해 자신의 쓸 모(가치)를 높이려고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결국 늙고 병들어 쓸 모 없어집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모두에게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쓸 모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로운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쓸 모가 더 있어서 우리를 더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쓸 모가 없어서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상태에 상관 없이 절대적 분량으로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증명된 그분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