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배우는 목적은 겸손해 지기 위해서다
글쓴이/ 봉민근
인간은 만사가 교만 덩어리다.
우주가 자기중심으로 자기 때문에 돌아가는 줄 착각하며 살아선 안 된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며 새로운 역사는 만들어진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과 더불어 나의 작은 일 까지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배우는 목적은 겸손해 지기 위해서다.
나의 자존심이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도 없다.
나의 신념과 고집스러운 집착으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분의 계획 하심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죽어지지 못한 결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고
돌아오지 않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기억해야 한다.
나는 아닐거야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순간이 내 속에서 교만의 화산이 용솟음치며 폭발하는 순간이다.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고 조금도 낮아지려는 마음이 없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가까운 부모 형제와 지인들이 교회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거부 반응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고 나의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는 지인이 말하기를 형제들의 모임이나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에도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핑계삼아 늘 소극적이며 모이지 않고 희생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
잠재의식 속에서 교회에 대한 호감보다는 비호감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교만한 자는 자신의 교만을 모르며 결코 자신을 교만하다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내 탓이요
내가 죄인이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의인 같고 모두가 선한 것처럼 보이며 믿음으로 똘똘 뭉쳐 사는 자들 같다.
이런 사람들만 교회에 있다면 어떻게 해서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으며
왜 회개의 설교가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할까?
진정한 겸손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 것이며 성경도 배우는 것이다.
조금도 낮아지려 하지 않고 형제보다 높아지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욕심을 부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혹여라도 나 때문에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하고 실족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은 나를 낮추는 낮은 포복 자세가 기본 자세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 옥토와 같은 신앙인이라 할 것이다.
내가 겸손해지지 않고 죽지 않고서는 결코 어떠한 신앙의 열매도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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