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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이 있는 마을

새벽지기1 2022. 4. 2. 12:10

종탑이 있는 마을


누가 입술 둥근 나를 마셔다오
낡은 종탑 하나만 있어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늘 울었지만 들키지 않았던 애통은 저토록 목이 메어 백 년을 울고 있으니
나도 나에게 얻어맞으며 몸 차가운 이 형벌을 울어야겠다
 
파란 정맥 같은 풀잎의 지파들도 저마다의 십자가를 딛고
닳아버린 이목구비를 공중에 매달고 있구나
 
아무도 울리지 않으려면 누구든 먼저 울어야 한다고
종소리는 종을 떠나며 울고
 
종탑을 내려와 사람의 마을로 제 슬픔에 길을 내며
녹슨 청동의 울음을 울 때
 
사랑한다 사랑한다
 
몸을 던져 울리는 종소리만 있어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만방의 어두운 곳을 어루만지며 이팝꽃 피고
종소리 머물던 가슴마다 한 채씩 종탑이 일어선다
 
깨울 영혼이 있는 한 종을 울리는 자는 그치지 않을 것이므로
 
안개 자욱한 바닷가 외진 마을에서
간절함의 시작과 간절함의 모든 것이었던 타종을 들은 듯 하였다
이마에 푸른 멍이 든 애통의 뒤를 밟힌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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