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도 다윗의 기도이며 나중에 찬송의 가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기도 역시 다윗이 어려움 중에 처해 있을 때 드린 것입니다. ‘탄식시편’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에 앉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해 줍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고난은 영적으로 기회입니다. 하지만 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은 신속하게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고난 중에 기도할 때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합니다. 고난의 상황은 더욱 심해지고 나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지는데, 하나님은 묵묵부답이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3절)라고 호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침묵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책망하고 꾸짖기 위해서 고난 중에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라고 여깁니다(1절). ‘하나님이 나를 징계할 작정이 아니라면 이렇게 침묵하실 수 있으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의 심신이 지쳐 있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있음을 토로합니다(2-3절). 더 이상 지체 하지 말고 구원해 달라고 청합니다(4-5절). 그렇게 청하는 이유는 “주님의 자비하심”(4절, 개역개정에는 “주의 사랑”)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는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 즉 변함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사랑에 의지하여 다윗은 다시금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께 아룁니다(6-7절).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길이 없어 울기만 하는데, 그 슬픔이 그의 생명을 소진시키고 있습니다.
7절과 8절 사이에서 독자는 잠시 멈춰야 합니다. 시편의 기도들은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올린 기도를 옆에서 받아 적은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혹은 며칠을 두고 올린 기도가 수정처럼 농축된 것입니다. 시편의 기도가 때로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고 두 세 개의 기도문을 합해 놓은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중간에 멈추어 “왜 이렇게 기도자의 태도가 달라졌는가?”라고 물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1-7절까지의 기도 즉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며 속히 구원해 달라는 간구를 오래도록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여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응답은 없고 고난은 더 깊어집니다. 그럴수록 다윗은 더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렇게 기도 하던 중에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8-10절은 기도 중에 얻은 변화 후에 드린 기도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미 기도에 응답 하셨고 그로 인해 대적들은 황급히 쫓겨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다윗이 기도를 통해 믿음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는 그 믿음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내다 보고 이미 일어난 일처럼 선포합니다.
묵상: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눈 뜨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침묵 하신다고 느낀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붙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기도의 자리에서 많은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로 인해 심신은 피폐해지고 영혼은 시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도와 눈물이 그의 마음을 씻어내고 하나님을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자 그는 낙심과 절망 가운데서 회복 됩니다. 그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눈물로 침상을 적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식음을 전폐 했던 그는 추스리고 일어나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게 되었고, 상황은 아직 변하지 않았지만 이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진 것처럼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납니다.
믿음은 이렇듯 눈 감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을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고 고백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고 그분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넋두리를 한 셈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가책과 염려와 근심을 진실하게 내려 놓았다면, 기도하는 중에 혹은 기도한 후에 표정과 음성과 발걸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소망(희망)을 낳고, 그 소망은 사랑을 실천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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