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표제는 이것이 “다윗의 식가욘”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식가욘’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결론이 없습니다. 어떤 문학 장르를 의미할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베냐민 사람 구시”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는 다윗에게 적들이 그를 해하기 위해 거대한 모략을 꾸미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기도는 그 상황에서 다윗이 드린 “애가” 즉 슬픔의 노래입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겠으니 적들에게서 목숨을 지켜 달라고 호소합니다(1-2절). 이어서 그는 자신에게 눈을 돌립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우리가 먼저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머물러 앉아 이러한 상황에 이르도록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는지 묻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이 더 큼에도 불구하고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더 큰 잘못을 해 놓고는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는 듯이 하나님께 내 편을 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하나님께 역겨운 일입니다.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꼼꼼히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에게는 그런 모함과 미움과 공격을 당할만한 잘못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악으로 자신을 심판할만큼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3-5절).
자신을 돌아본 후에 다윗은 다시금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6-10절). 그는 “내 의와 내 성실함을 따라”(8절) 자신을 판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은 “의로우신 하나님”(9절)이시며 “마음이 올바른 사람”(10절)을 돌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낱낱이 살피시는 분”(9절)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은 진실합니다. 그는 바른 생각을 가지고 의롭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 줄곧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려움을 당하여 하나님께 이토록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다윗은 간구를 멈추고 하나님께 대한 고백과 찬양을 이어 갑니다(11-17절). 이것이 기도의 또 다른 묘미입니다. 우리가 당한 어려움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기도 중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뜹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대한 간구를 내려 놓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상황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잊었던 하나님의 의와 위엄과 영광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기도는 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고백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하나님 찬양은 조금 색다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공정한 재판장이시요, 언제라도 악인을 벌하는 분”(11절)이라고 고백합니다. 개역개정에는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칼을 갈고 활을 당겨 놓고 있으며 살상 무기를 준비해 두고 계시다(12-13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반어법적인 표현입니다.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매일 공의로 세상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온갖 살상 무기를 준비하고 언제라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직접적으로 심판 하기도 하지만, 더 자주 인간이 선택한 죄악이 그 자신에게 올무가 되게 하는 방식으로 심판하십니다(14-16절). 하나님께서 인생을 그렇게 디자인 해 놓으셨습니다. 죄를 선택하는 것은 곧 심판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길인 줄 알고 죄악의 길을 선택합니다. 지금 다윗을 향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의 불행을 음모하고 있고 스스로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딱한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태도를 고백합니다. 죄악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는 심판입니다. 반면, 다윗처럼 의롭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는 찬송하고 감사할 대상입니다(17절).
우리의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완전한 거룩과 완전한 공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비록 불완전하지만 거룩과 정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분노합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분노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과 불의에 분노합니다. 불완전한 우리도 이러한데 완전한 거룩과 공의의 하나님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처럼 분노를 수시로 터뜨리는 분이라면, 우리 중에 살아 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소행을 보시고 매일 분노 하지만, 그분의 사랑과 자비가 그분으로 하여금 오래 참게 하십니다. 때로 사랑과 자비를 잠시 거두고 심판 하기도 하시지만, 그분에게는 사랑과 자비가 더 강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들의 악행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죄악을 버리고 돌아와 거룩하고 의롭게 살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신 하나님은 동시에 “매 순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그분이 분노하시는 표정을 보이셨다면 그 이면에 그분의 사랑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보고 있다면,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언행심사를 보고 계신 분에게서 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고, 더욱 깨어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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