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죽어야할 죄와 심판을 대신 지시고, 대신 당하시고, 고통을 겪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가 용서받은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구원자의 이름이요, 능력자의 이름이라면 그 예수를 전하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안이 구원 받게 될 것입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고, 체포하고 싶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내가 유대인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을 몽땅 잡아 올 테니 공문서를 하나 써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떠납니다. 다메섹에 거의 다 왔을 때 살기가 등등한 사울에게 하늘에서 빛이 비취었습니다. 사울은 그 빛을 받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눈이 멀게 됐습니다. 그는 그 빛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 때 사울은 그 음성을 듣고 아주 유명한 한 마디를 던집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사울이 했던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힙니까?”라는 질문을 오늘날에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도대체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기에 자꾸만 교회에 가자고 하는가? 난 잘 살고 있는데 왜 자꾸 전도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주여,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이천 년 전에 죽으신 분입니까? 아니면 지금도 살아계신 분입니까? 예수는 침묵하시는 분이십니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까?” 저는 이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성탄절을 맞아 네 가지 시리즈 설교를 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의 본질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지만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그 본질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독특성이요, 절대성이요, 유일성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우리를 대변하기 위해, 우리가 죽어야할 짐을 대신 지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속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죄를 지은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 이전에 죄를 짓지 않았던, 죄가 없는 참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가슴 아플까요? 죄가 없으신 분이 고난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은 참 메시아이십니다. 구약에서는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구원할,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 “메시아는 아직 오지 않았는가?”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때가 되어 여인의 몸에서 약속의 메시아가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갈 4:4).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절대적 진리 되신 하나님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셨다, 예수님은 참 메시아였다’는 세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결론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참 구원자이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입니다. “예수 외에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을까요?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의 길이 없을까요? 이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갈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너무 편협하고, 너무 이기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믿고, 저것도 믿어서 다 진리에 이르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면 괜찮을 텐데 예수만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구원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고 일방적으로, 편협하게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상대적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생각하는 구원과 진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살고, 정성스럽게 종교를 믿으면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구원, 상대적인 진리에서는 그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 구원, 절대적 진리에 있어서는 틀린 말입니다. 여러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태양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를 키운 양부모가 있다 할지라도 나를 낳은 생모는 한 명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진짜 진리는 하나입니다. 다원주의적 종교에 진리가 섞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여기서 예수님이 부처나 공자가 말하는 것처럼 “나는 여러 길 중의 하나다”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나만이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절대성을 선언하기 때문에 상대적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자기가 진리요, 자기가 길이요, 자기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강도요 도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1). 진정한 절대적 구원은 하늘의 진리, 하늘의 구원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하늘의 주인이요, 땅의 주인이요, 하늘의 구원자요, 땅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구원과 상대적으로 말하는 구원과는 다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은 약간의 이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씻고, 인간의 원죄를 뿌리째 뽑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 넘어진다는 성경 말씀처럼 우리는 선을 행하고 싶으나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굉장히 참고 애쓰고 노력해도 내 속에 안개와 같이 솟아나는 죄악의 생각, 욕정의 생각, 음란한 생각, 탐욕의 생각을 스스로 뽑아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죄악을 감출 수는 있습니다.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합니다. 상대적 진리에서는 나를 위장할 수 있지만 절대적 진리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나를 숨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선행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조금 더 나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선행을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구원이라든지 진리라는 것은 모두 상대적이고 인간적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원죄의 뿌리를 뽑고 그것을 씻어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피와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피만이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만이 우리의 죄를 뿌리째 뽑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원죄를 씻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우리를 천국 백성,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이 요한복음 3장 16~1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직접 하실 수 없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죽어야할 죄와 심판을 대신 지시고, 대신 당하시고, 고통을 겪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가 용서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면 말로 하면 될 거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꼭 자기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어야만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피 흘림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기록돼 있습니다(히 9:22). 우리의 죄가 공짜로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가를 치름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대속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는 것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체는 하나님
요한복음 3장 18절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 우리 죄를 씻어주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셔서 우리의 구원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기도를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하는가?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쫓아야만 하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자기 아들의 신분으로 보내셨지만 그분의 본체는 하나님이십니다(빌 2: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고 인정하고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2장 9~10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하나님이 구원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특별한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 있는 어떤 존재도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귀신을 쫓을 때 예수의 이름으로 쫓습니다.
저는 수백 명의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놀랍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에게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하면 귀신이 ‘앗 뜨거워’ 하면서 침대 밑으로 들어갑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갈 지어다’라고 말하면 귀신이 벌벌 떱니다. 그리고 뒤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제가 다른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면 귀신은 나를 조롱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 귀신조차도 무릎을 꿇게 하는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가 귀신을 쫓을 때 ‘예수가 무섭지 않냐’라고 물어보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며 ‘예수라는 말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시인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빌 2:11).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
요한복음 1장 6~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빛에 관해 증거 하러 온 증인이었는데 이는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자신은 그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그 빛에 대해 증거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증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다(요 1:11). 그러나 여러분의 집 안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죽음의 영이 없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절망과 좌절과 저주와 죽음의 영이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눈만 뜨면 희망으로 가득차고 입을 열면 좋은 말,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며 찬송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늘 위나 땅 아래나 모든 존재가 그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를 찬양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모든 악한 세력을 꺾는 이름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은 사람의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으로, 전통적으로, 종교적으로 생각하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요 1:13).
예수 믿고 전도하라
결론이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마음의 문을 여시고 예수님을 인정하고 영접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번째, 성령님께 의지하십시오. 여러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예수가 믿어지지 않습니다(고전 12:3). 자꾸 마음 한 구석에서 사탄이 역사해 예수를 밀어내고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풀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충만 하십시오. 성령충만의 본질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시인하는 단계에 들어갔다면 성령이 여러분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도하십시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지진이 일어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간수들이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자살하지 말라면서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행 16:31). 올해 저희 집에서 아들과 딸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평생 소원이 예수 잘 믿는 사돈을 만나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두 집안이 예수 믿지 않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네가 사랑하는대로 우리는 인정하겠다”고 하자 놀랍게도 두 집안에 복음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이 구원자의 이름이요, 능력자의 이름이라면 그 예수를 전하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안이 구원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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