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의 예배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아픔을 알고 계시고 결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여러분의 상처와 고민을 다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고, 예수를 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님이십니다. 성탄의 진정한 주인공 ‘예수’ 성탄절을 앞두고 네 주에 걸쳐 성탄절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탄절의 진정한 주인공에 대한 의미가 아주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산타클로스나 눈 오는 날의 사슴이나 화려한 장식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길래 그분의 탄생을 축하할까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인류 역사가 AD와 BC로 나눠졌을까요? 그리고 지난 이천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온 인류가 그를 경배하고 찬양하며 축제를 베풀었을까요? 죽은 사람을 위해서는 축제를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 인류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합니다. 만약 예수가 보통 인간이었다면, 만약 예수가 죽어서 무덤에 이천년 동안 갇혀 있던 분이라면 어느 누구도 성탄절을 이렇게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인류 역사 가운데 생생하게 계실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온 인류에게 주는 기쁜 소식이요, 축복의 날입니다. 성탄절을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합니다. ‘Christmas’는 ‘예수’라는 뜻의 ‘Christ’와 ‘예배’라는 뜻의 ‘Mas’의 합성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온 인류가 구원의 빛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고 절하고 예배드리는 경험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그분이 지금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저에게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가 있습니다. 대학시절에 영등포교도소의 한 사형수를 위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밤새도록 영등포교도소의 모든 재소자들을 위해서 제 손으로 직접 크리스마스 카드를 수천 장 만들었습니다. 제가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카드와 친구들의 카드를 모두 모아 글씨가 써 있는 부분을 다 떼고 깨끗한 속지를 붙여서 재소자들에게 크리스마스의 복된 소식을 전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죽은 자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라는 복된 소식을 전하며 먹을 것을 싸들고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시절에 성령체험을 한 후 복음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커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의 망원동에 쓰레기처리장이 있었는데 그 인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곤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그곳에 라면과 계란을 싸들고 가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 아내를 때려 상처받은 가정들을 성탄절 노래를 부르면서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계획입니까? 12월 한 달 동안 인류의 축제인, 이천년 동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여러분은 어떻게 축하하려고 준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추수감사절에 쌀 한 포대 내고 다 지켰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정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살아계신 예수님과 더불어 복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바랍니다. 저는 한 달 내내 이 예수를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가정이 불화한 사람은 하나 되고 잃어버렸던 자녀를 다시 찾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지쳐 있다면 이 한 달 동안 눈물로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에 대한 본질은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그 말씀이 빌립보서 2장 6절부터 11절에 명확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낮춰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왔지만 본래 하나님이셨습니다. 여자의 배를 아프게 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궁궐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땅에 오래 살지 않고 33년의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죽을 때도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죽은 것으로 예수님의 인생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3일 후에 기적처럼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은 예수님의 모든 제자를 충격으로 몰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분의 행적과 그분의 삶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오죽하면 니고데모가 ‘당신은 하늘로부터 온 사람입니까? 당신이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내 양심이 부끄럽습니다’라고 고백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눈에 안 보이는 어떤 신령한 존재일까요?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라는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물질이 아니고 육체가 아니기 때문에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온 우주와 온 지구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의 예배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아픔을 알고 계시고 결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여러분의 상처와 고민을 다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실제 우리의 문제는 주님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오실 텐데 준비된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청소 안된 집에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치면 얼마나 당황합니까? 옷을 멋지게 입고 향수를 뿌리고 교양 있게 만나는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그것이 실제 삶이 아닙니다. 나의 실제는 꽁꽁 숨겨둔 내 내면의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어두운 부분이 많습니까. 남편을 죽이려고 밤마다 노려보는 사람,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에게 칼을 갈고 있는 사람, 부모에게 복수하고 싶은 자녀들, 이것이 우리의 실제이고 진정한 모습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창조와 기적의 사건은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이신데 못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물 위를 걸었다든지, 죽은 자를 살렸다든지, 문둥병을 고쳤다든지, 내가 인간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이성이나 감성으로는 해석되지 않지만 만약에 예수가 인간 이상의 존재이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면 예수님이 못하실 일이 어디 있으며 기적이 뭐가 이상하겠습니까. 하나님이신데 왜 그것을 못하겠습니까?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여러분의 인생도 축복의 인생으로 변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무덤에 갇히신 분이 아니라 오늘 온누리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있는 이 시간에도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들어주시고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너를 잘 안다. 사람들이 인간 쓰레기라고 말할지라도 너를 인생의 다이아몬드로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더 용기 있게, 더 지혜롭게,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하고 미래에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멋지게 나를 포장도 하지만 내 스스로를 보면 비참한 인간입니다. 속으로 우리는 다른 고민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 병을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제 병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내 몸에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 모두 예수가 진정 하나님이라고 믿고, 모든 고민과 근심과 걱정과 죽음에서 해방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기적
제가 이번에 나고야 러브소나타 때 눈물이 날 만큼 은혜를 받은 것은 바로 이지선 자매의 간증이었습니다. 손가락 여덟 마디가 절단되었는데 10년 넘게 치료를 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피부의 50%가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붕대로 감고 7개월 만에 집에 가서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니 자기가 아닌 너무나 생소한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22살의 대학생이었는데 온몸에 불이 붙어서 피부의 50%가 없어졌습니다. 그 후로 자기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하는 딸아’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향해 ‘사랑하는 딸아’라고 불러주었는데 교회 가서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답니다. 그 후, 뉴욕에 있는 콜롬비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내년에는 박사과정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 자매에게 있어서 기적은 피부가 재생된 것도 손이 다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처럼 불행한 교통사고를 당해서 인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라’고 비전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이 자매는 몸이 변한 것이 아니고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가기 전에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상처와 좌절과 절망과 저주와 아무리 해도 풀어지지 않던 문제들이 모두 풀어지길 바랍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다’라는 한 마디 고백으로 풀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온 하나님이시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그분은 모르시는 것이 없다. 내 인생의 미래를 알고 계시고 현재의 나를 알고 계시고 나의 연약하고 부족하고 열등감이 많고 자신감이 없는 내 자신을 잘 알고 계신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구원의 주, 예수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되기를 포기하셨습니다. 아무리 옷을 바꿔 입어도 그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듯이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사랑에는 목마르고 미련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까? 자녀에 대한 사랑도, 부부의 사랑도, 남녀의 사랑도 사랑할수록 갈등이 많습니다. 서로 기득권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그 사랑이 집착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분석을 해보면 우리의 사랑은 집착이고 본능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을까요?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서입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왜 우리의 사랑이 열정적이지만 외로운 것일까요? 서로 손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말로는 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나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한다든지 나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 절교를 한다든지 이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되시는 것도 포기하고 손해 보기로 결정하고 죽기로 결정하고 고난을 당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기에 원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가게 된 인간을 하나님은 구원하신 것입니다. 다른 곳에 가서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성령충만 하십시오. 성령체험 하는 것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고, 예수를 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다른 것을 구하지 마십시오. 진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님이십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 하나님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인간을 지옥으로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1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마구간에 오신 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고 죄 값을 물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녀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부모는 그 아이를 무조건 감싸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도 비슷합니다. 사랑은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고, 자기 감정이 만족된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진짜 사랑을 했다면 손해 보셔야 합니다.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정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처절하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죽음과 저주와 절망의 문을 부수고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분이 본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극히 높은 모든 이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지옥까지도, 모든 사람들도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주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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