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장미꽃 시인 릴케

새벽지기1 2020. 1. 13. 06:50


장미꽃 시인 릴케


계절의 여왕, 5월은 장미의 계절이며 시인 릴케를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다.

릴케에게 있어서 장미는 그의 묘비명만이 아니고 자신의 시와 일기와 편지에도 빈번히 등장한다.

장미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시인이었고, 장미를 좋아하여 직접 재배하며 장미 속에서 살았고,

장미 향기에 흠뻑 취했으며, 장미에 한 깊은 사색과 더불어 최고의 찬사로 멋지게 시를 발표하던 시인이었다.

그는 죽기 1년 전인 1925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이

유언장을 작성하고 자신의 묘비를 위해 직접 비문을 적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꺼움이여....”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장미라고 한다.

아름다운 꽃이라면 우선 떠올리는 것이 장미다.

사랑을 고백할 때도 생일 선물에도 장미꽃이라면 항상 여심(女心)은 쉽게 녹아난다.

장미는 모순이다.

사랑과 배신, 상처, 보복의 이미지가 모두 담겨 있다.

정말 장미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꺾는 걸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줄기에 촘촘히 가시로 진을 치고 있다.


1980년 활동한 미국의 밴드 ‘포이즌’의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Every Rose Has Its Thorn)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 자체로도 치명적인 독이 있다.
국내외 가수들이 부른 장미에 한 주옥같은 아름다운 노랫말 가사가 많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팝송 중 하나가 바로 ‘The Rose’다.

우리나라 가수들이 부른 노래 중에는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다.


한 사람 때문에 이름을 새로 쓰고, 그 한 사람을 위해 헌정하는 시를 읽으면서 ‘사랑’에 해 생각해 본다.

릴케가 루 살로메에게 헌정한 기도 시집에는 그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그려져 있다.


내 눈을 감기세요. (Put Out My Eyes)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잡을 것입니다.
손으로 잡듯이 심장으로 잡을 겁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럼 뇌가 고동 칠 것입니다,
마침내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때는 내 피가 당신을 실어 나르렵니다.


학교 때 읽었던 책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라는 책 표지에는

루 살로메 얼굴이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루 살로메의 생애와 사랑, 지그문트 프로이드,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레드리히 니체 등

당대를 표하던 지성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렸던 루 살로메,

사진 속의 그녀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총명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파마를 한 듯 곱 슬한 머리, 귀여운 얼굴, 그리고 그녀의 눈은 반짝이는 듯 보던 것이 나의 첫 느낌이었다.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그는 내 마음 사로잡아
우리는 그의 눈 속에서 하나가 되고
그의 목걸이로 하나가 된다.
그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네사랑은 포도주보다 아름답고
네 기름의 향기는 어떤 향 품 보다 뛰어나구나.
나의 신부여
네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솔로몬의 사랑의 연가4:9-11).


정략결혼으로 많은 여인들을 거느렸던 지혜의 왕 솔로몬,

 그의 애간장을 태우고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술람미 여인을 향해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라고 노래했다.

그분의 속삭임에 온 몸이 녹아들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파열할 듯 숨 막히는 님이다.


장미의 시인 릴케에게는 이 시의 “나”는 릴케 자신이고 누이요 신부인 여인은 루 살로메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원초적으로

언제나 함께 있고 싶고,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없는 그리운 실체가 있다.
문학 속에서는 저 존재 밑바닥의 깊고 오랜 갈망을 채워줄 사랑이고

현실에선 욕망과 탐욕의 이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