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인문학, 기독교를 만나다·한재욱목사

을돌이와 을순이

새벽지기1 2019. 11. 21. 07:16


인문학 나눔


“갑순이는 누구에게 시집갔을까?  을돌이에게 갔겠지.  

갑돌이는 을순이에게 갔겠지.  그래, 평생 갑으로 산 그들은 

남은 평생도 자신에게 고분고분할 을이 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았지만 눈딱 감고 시집가고 장가갔을 것이다.  

첫날 밤엔 울었지만 다음날 아침부터는 웃었을 것이다.  

사랑으로 사는 것보다 갑으로 사는 게 더 좋았으니까. 

그래서 행복했을까?  물론 행복했을 것이다.  한번 갑질에 중독되면, 

한번 이기심의 포로가 되면 평생 그것이 행복이라 믿고 사니까.”

 

정철 저(著) 「꼰대 김철수(허밍버드, 2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대중 민요 ‘갑돌이와 갑순이’에 얽힌 유머입니다.  

서로 갑으로만 살았던 이 둘은 먼저 사랑한다고 하면 손해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돌이는 ‘을순이’에게 장가가고, 갑순이는 ‘을돌이’에게 시집갔다고 합니다.  

사랑보다는 고분고분할 ‘을’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집 장가가서 첫 날 밤은 울었지만 다음날부터는 웃었다는 유머입니다. 


최승호 님의 시 「오징어 부부」 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등켜 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갑질은 폭력에 가깝습니다. 

참 사랑을 하면 힘을 뺍니다.  

마치 을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와 딸이 다투면 대부분 어머니가 을이 되어 집니다.  

그 이유는 딸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딸을 더 사랑하기에 그러합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초라한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참 사랑하시기에 힘을 빼고 마치 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참 사랑을 하면 갑질을 벗고 갑옷도 벗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막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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