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인문학, 기독교를 만나다·한재욱목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새벽지기1 2019. 11. 25. 07:39


인문학 나눔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중략).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유발 하라리 저(著) 조현욱 역(譯) 「사피엔스 (김영사, 58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모른다면,  

힘을 가진 자가 악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머리카락 한 올을 칼날 위에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두 갈래가 난다는 

취모지검(吹毛之劍)을 가지고 정신없이 칼춤을 추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대개 “힘을 달라” 고 기도합니다.  

힘이 없는 것이 인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일면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 힘을 어디다 쓸지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최초의 남아공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힘이 너무 많은 데 있다!”

인류는 인공지능 로봇까지 만들어 내며 유발 하라리 교수의 표현대로  

‘호모 데우스(神)’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힘을 어디에 써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시계보다는 나침반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무한한 힘을 가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변함없는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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