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는 말 | |
롬15장 | 롬16장 |
①이방인 사도로서의 바울의 직무(롬15:14-21) -내가 제사장의 직무를 다하기 위함(15:16) ②로마 방문계획(롬15:22-33)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함(15:23) | ①문안 인사(롬16:1-16) ②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롬16:17-20) ③마지막 인사와 송영 -로마교회에 대한 축복 기원(롬16:21-27) |
선교 여행 계획/ 문안 |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다!
(롬15:14-21 이방인 사도로서의 바울의 직무)
▶본문
14.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해석과 설명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4절)
이제 본문부터 본서의 마지막까지는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본서를 마무리하고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이는 당시 로마 교회 교인들의 상태를 보여주는 말이다. 여기서 ‘선(헬 아가되쉬네)’은 단순히 도덕적인 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내주로 인하여 실현된 신앙적 성숙함과 이것이 실생활에 표현됨을 의미한다. ‘지식(헬 그노시스)’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구원의 비밀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리킨다(고전8:1,7). 이런 점에서 당시 로마교회 성도들은 다소 분쟁은 있었으나 신앙적으로 매우 성숙했으며 바울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이는 당시 로마 교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선과 지식이 가득 찼을 뿐 아니라 이러한 미덕을 외부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들에게 서로 권하는 신앙적 성숙함을 가진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15절)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로마 성도들이 신앙적 성숙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모든 면에서 완벽 했덙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 대한 칭찬과 함께 그들에게 충고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는 신약에서 유일하게 본 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마음에 되새기게 하다’ ‘반복하여 상기시키다’는 뜻이다. 즉 바울은 본서에서 다루는 복음의 원리에 대해 다시한번 반복하여 설명함으로 믿음에 굳게 서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라’
바울은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떤 자신의 능력이나 사상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만 감당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한편 ‘더욱 담대히’란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권면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겸손히 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들의 과오를 지적하는 담대함을 보임으로서 사도로서 권위를 나타내고 보이고 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6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앞절에서 언급했던 ‘은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그 은혜’란 바로 바울의 사도직임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이는 구약의 제사를 연상하게 하는 매우 독특한 비유다. 이 비유에 의하면 바울은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이며, ‘복음 전파의 일’은 ‘제사장의 업무’인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를 통해 회개한 이방인 신자들’은 바로 제사의 ‘제물’이다. 바울의 이러한 사상은 사66:20에 근거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는 당시 선교 현장적 정황에서 이해해야 한다. 특히 유대인 신자들은 당시 복음 전파가 확산됨으로 점차 숫자가 많아지는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유대적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은 불결하다고 주장했다. 바울은 이러한 경향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즉 이방인들도 ‘성령 안에서 거룩한 존재’임을 천명한 것이다. 한편 ‘받으실 만하게’는 ‘열납 될 수 있는 제물이 되게’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17절)
바울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랑은 절대로 자신에게 연유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밝힌 후 이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논점을 이어가고 있다. 즉 바울 자신의 유일한 자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18절)
본절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헬라어 원문에는 ‘왜냐하면(헬 가르)’라는 접속사가 앞에 등장한다. 즉 본절은 바울이 자랑거리로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직분이 ‘이방인들을 순종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앞절의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즉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성결하게 되어 하나님께 합당한 제물이 된다는 의미다. 이는 바로 ‘바울 자신을 통하여(말미암아)’ 이루어졌으며, 바울의 ‘말(복음 전파)과 ’행위‘(사역 전반)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9절)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본절은 앞절과 연결된 내용으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는 앞서 언급한 ‘말과 행위’가 바울의 인간적인 능력에 의함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라는 표현은 바울이 지금까지 전도한 곳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친 자신의 전도 여행을 통해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20절)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 구절은 두 가지 사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주로 복음의 불모지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이미 복음을 믿고 있는 로마교회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바울은 서바나로 가는 길에(23) 잠시 들러 로마교회 성도들을 만나고 싶은 것은 성령에 관한 롬1:11-12 언급했던 것처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는 것‘과 로마교회 성도들을 만나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었다.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것은 바울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하나의 원칙(선교관)이 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바울이 로마에 잠간 들러 성도를 격려하고 신앙을 견고하게 한 후에 머무르지 않고, 미개척지인 서바나로 가려고 했던 이유다.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21절)
이는 사52:15의 70인역 인용이다. 원래 히브리 원문의 문맥은 이방의 ‘나라들과 그 왕들’이 과거에 멸시하던 ‘고난 받는 종 메시야’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놀라며 이들도 메시야를 높이게 될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여기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이지만 이제 복음을 듣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인용한 것이다.(데니)
▶교훈과 적용
◦불모지 개척 원칙!
이제부터는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본서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고백이다.(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바울은 그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했다.
그리고 복음은 열방까지 편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9)”
여기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라는 표현은
바울이 지금까지 전도한 곳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원칙(선교관)이 있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20)
그래서 바울은 주로 복음의 불모지에 복음을 전했다.
바울의 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다’는 원칙은
지금부터 25년 전 내가 적용했던 원칙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내 출신 지구에서 사역할 수도 있었다.
아마 그랬다면 개척의 고통을 맛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바울의 ‘불모지 개척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이 수원으로 인도하셨다고 믿는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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