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15:1-13 교회안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합에 관한 권고)

새벽지기1 2019. 5. 27. 07:12

12

13

14

15

성도의 의무

성도들에 대한 권면

하나님에 대한 의무

(12:1-2)

교회에 대한 의무

(12:3-13)

사회에 대한 의무

(12:14-21)

국가에 대한 의무(13:1-7)

이웃에 대한 의무(13:8-10)

성도의 종말적 자세(13:11-14)

판단하지 말 것에 대한 권고(14:1-12)

-서로 비판하지 말라!

덕을 세움에 대한 권고(14:13-23)

-서로 덕을 세우라!

믿음 있는 자!-네 형제를 근심케 말라!

믿음 적은 자!-믿음을 좇아 행하라!

교회 화합에

관한 권고

(15:1-15:13)

-너희도

서로 받으라!

교회와 세상

교회 안 성도간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의 적용)



너희도 서로 받으라!

(15:1-13 교회안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합에 관한 권고)


본문

1.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해석과 설명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

14:1-15:13'아디아포라(adiaphora)'문제로 인한 유대인 출신 성도와 이방인 출신 성도간의 분쟁 해결을 다루고 있다. 그 중 본문은 그 결론 부분이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의 화합을 위해 먼저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며 자기를 기쁘게 하기보다 형제를 기쁘게 하여 덕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교훈하고 있다.

아디아포라(adiaphora)

원래 아디아포라(adiaphora, 그리스어: ἀδιάφορα, 무관심한 것)는 스토아주의에 의해서 형성된 개념으로, 선도, 악도 아니고, 명령 받지도 않고, 금지되지도 않은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아디아포라(adiaphora)''대수롭지 않음' 이란 뜻의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것을 말한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2)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분명한 행동 원리인 사랑(14:15)이 외부적으로 실천될 때 바로 이렇게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결과를 이룬다. 그러나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은 이웃의 바라는 것을 모두 들어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본절의 문맥이 말하는 바와 같이 강한 자가 자신의 행윙의 자유를 절제하여 약한 그리스도인들의 거리심이나 유혹을 제거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다. 한편 덕을 세우다(헬 오이코도메오)’집을 세우다란 의미로 믿음이 강한 자의 행위의 외적, 직접적 목적을 보여준다. 즉 믿음이 강한 자의 이웃에 대한 배려는 직접적으로 이웃의 신앙 성숙을 가져옴을 암시한다. 여기서 이란 나의 유익보다 교회 공동체의 유익하고 성도와 이웃이 보기에 아름다우며 주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원문에는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따라서 본절은 2절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형제를 기쁘게 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기쁨이나 유익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사셨던 것을 내세워 성도의 삶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성실히 섬김으로 인해 고난 받음을 묘사한 시69:9을 바울이 인용했다. 바울은 이 내용을 메시야가 하나님께 충실한 탓으로 비난과 수모를 당하셨다는 내용으로 보다 확대하여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이 모욕을 참으며 고난을 감수하셨듯이 믿음이 강한 자들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그러한 고난을 받아야 한다. 하물며 믿음 약한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는 일이야 더욱 더 쉬운 일이다. 바울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모법적인 행위를 들어 강한 자들을 권면하는 것은 강한자들도 역시 그리스도의 모범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보고 약한 자들에 대해 교만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여기서 전에 기록한 바란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성도들의 생활의 가장 분명한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기록된 구약을 앞절에서 인용한 바울은 이제 범위를 보다 넓혀 구약 성경 전체로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이 부분은 앞선 문맥에 이어 인내와 더불어 성경을 상고할 때 얻는 유익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인내(헬 휘포모네)’는 고난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감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격을 헤치고 선을 이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이것이 하늘에 소망을 둔 성도의 자세다. 성경은 하나님의 위로격려의 약속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인내성경의 위로는 특히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믿음이 강한 자들은 연약한 자들이 그러한 경지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어야만 한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5-6)

이 구절은 3-4절을 적절하게 요약한 표현으로 모든 성도는 예수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성도는 본래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낮추어 사람의 모양을 입었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삶도 믿음이 강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낮추며 믿음이 약한 자를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때 성도는 다음과 같이 될 수 있다.(5절하반절-6) , 성도가 서로 뜻이 같게 하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7)

여기서 그러므로14장 이후 논의 된 로마교회의 문제, 즉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의 조화 문제에 대해 요약적 진술을 제시한 후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권면했던(6) 바울은 그러한 모범적 행위 역시 그리스도에게서 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를 막론하고 모두를 받으셨기에 성도들도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8)

14장 이후 다뤘던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들간의 문제에 대해 다룬 바울은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이는 당시 로마 교회의 구성원과 상황을 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이란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약속을 결코 변개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라는 말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그의 생애 동안 유대인의 규례를 모두 준수하신 것을 말한다. 한편,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라는 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을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후손을 허락하셔서 모든 족속들의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12:1-3)은 그의 아들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져 결국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 되었다. 여기서 견고케 하시고약속이라는 단어와 결부되어 성취 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본절에서는 이방인들도라는 단어가 핵심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언약은 본래 유대인들을 통로로 하여 주어졌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나타났다. 이것이 이방인들이 구속사의 측면에 있어서 이러한 이방인의 구원 사상이 신약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기록된 바...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9-12절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사상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먼저 인용되는 것은 18:49로 다윗이 이방 정복 후의 승리를 감사하며 부른 노래. 다윗이 이방 민족을 정복하고 그들을 복종하게 하여 이스라엘로 영입한 것 같이(18:43-47) 그리스도 역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정복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다. 따라서 바울 역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속 역사 가운데 포함됨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다.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10)

이는 32:43의 인용으로 모세가 지상 삶과 사역을 마무리하기 전에 부른 마지막 노래의 한 구절이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인해 하나님을 믿게 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구약 시대의 언약에 이미 나타났던 이방의 구원이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취 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바울은 본문을 인용한 것이다.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11)

117:1이 인용으로 내용적으로 10절과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다만 본절에서는 열방이 찬양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열방모든 백성은 대구적인 표현으로 모두 이방을 가리킨다. 이방들도 이제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이스라엘에 베푸셨던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자신들에게 베풀어 주신데 대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12)

마지막으로 11:10절을 인용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야의 출현과 사역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바울이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함으로서 열방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긍휼을 입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 있다. 즉 열방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를 묘사함에 있어 묘사한 구절이 이새의 뿌리’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이라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첫째, 이새의 뿌리-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태어나실 것이 강조된 나단의 예언(삼하7:11-17)과 연관된 유대적 배경의 뉘앙스가 강하다.

둘째,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메시야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열방을 통치하시기 위해 오신 것을 나타냄으로써 세계적 배경의 뉘앙스를 가진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 즉 온 인류의 구속을 이루신 분이다. 따라서 열방이 소망을 두리라고 한 것은 당연하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본절은 마치 바울이 지금까지의 교훈을 종결하며 서신의 수신자들에게 축도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본절은 성도들의 일상의 삶과 관련된 교훈(14:1-15:13)에 대한 맺음말이다. 한편, ‘기쁨과 평강은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생활하는 신자들이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교훈과 적용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성경에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는 규범을 '디아포라(diaphora)'라고 한다면,

반대로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아 신자가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디아포라(adiaphora).

이를테면, 주일 예배를 몇 시로 할 것인가?

목사가 가운을 입어야 하는가 아닌가?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신자는 술. 담배를 하면 안 되는가?

세례가 옳은가 침례가 옳은가?

성찬식을 마치고 남은 떡과 포도주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로마교회를 비롯한 초대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제사음식을 먹는 문제였다.

바울은 앞 장에서 이에 대하여 명쾌하게 정리해 준바 있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14:20)”

본문은 그 연장선상에서 결론을 맺고 있다.

첫째, 믿음이 강한 성도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1)

둘째,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2)

셋째,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을 같이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5-6)

넷째, 너희도 서로 받으라!(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