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서로 덕을 세우라! (롬14:14-23 덕을 세움에 대한 권고)

새벽지기1 2019. 5. 22. 08:18

12

13

14

15

성도의 의무

성도들에 대한 권면

하나님에 대한 의무

(12:1-2)

교회에 대한 의무

(12:3-13)

사회에 대한 의무

(12:14-21)

국가에 대한 의무(13:1-7)

이웃에 대한 의무(13:8-10)

성도의 종말적 자세(13:11-14)

판단하지 말 것에 대한 권고(14:1-12)

-서로 비판하지 말라!

덕을 세움에 대한 권고(14:13-23)

-서로 덕을 세우라!

믿음 있는 자!-네 형제를 근심케 말라!

믿음 적은 자!-믿음을 좇아 행하라!

교회 화합에

관한 권고

(15:1-15:13)

-너희도

서로 받으라!

교회와 세상

교회 안 성도간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의 적용)


서로 덕을 세우라!

(14:14-23 덕을 세움에 대한 권고)

 

본문


14.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해석과 설명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14)

여기서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라는 말은 바울이 권면하는 모든 것들이 자기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는 바울의 주장은 아마도 예수님의 교훈을 근거로 했던 말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15:10)”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물론 구약이 정결에 관한 율법에는 부정한 음식에 관한 규례가 나타난다.(11)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받은 성도들에게는 그러한 음식의 문제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 바울이 확신하는 것은 제의적인 부정함은 더 이상 문제 되지 않고 이제는 주 안에서’, ‘거룩한 것속된 것이 새롭게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이 세상에는 본질적으로 부정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속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속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부정하게 된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앞절에서 거룩함과 속됨의 개념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규정한 바울은 이제 음식 문제에 대해 중요한 원칙을 또 다른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식이 아닌 사랑의 관점에서 대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고전8:1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바울은 형제의 귀중한 영혼과 그를 사랑해야 할 성도의 의무를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나 자신의 관계가 귀한 관계라면 내가 비방하는 형제 역시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혼을 죄악에서 구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며, 그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25:40, 고전8:11-12). 실제로 신앙 생활 하는 가운데 동료 교인의 행동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고 교회를 아예 떠나 버리는 경우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16)

여기서 선한 것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넓은 문맥으로 보아 믿음이 약한 자나 강한 자가 모두 얻는 믿음의 구원을 말한다.

이는 학자들에 따라 믿음’(웨트), ‘하나님 나라’(메이어), ‘신앙과 복음’(렌스키)라고 표현된다.

둘째는, 15절을 고려하여 믿음이 강한 자들이 누리는 신앙생활의 자유함을 뜻한다는 주장이다.(칼빈)

많은 학자들이 문맥상 믿음이 강한 자들이 누리는 신앙생활의 자유로 본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본절은 16절의 이유를 설명한다. 이러한 사실은 원문에 왜냐하면이라는 뜻을 지닌 접속사 가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여러차례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헤 바실래아 토우 데우)는 바울에게 있어 장차 올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완전한 신적 통치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본 절에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권이 강조된 현세적 하나님 나라, 즉 교회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본문은 미래에 이루어질 천국에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전혀 필요 없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현세 교회에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나라의 현세적 구현은 교회의 본질의 회복에 있다. 즉 교회의 본질적 중요성은 이렇게 성령 안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내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있다. 성령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있어 결정적 동인이 되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사용된 (헬 디카이오쉬네)’평강(헬 에이레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도가 죄로부터 구속되었다는 칭의와 이러한 칭의의 결과로 인한 하나님과의 구속적 화평(5:1)을 뜻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본절에서는 문맥상 윤리 혹은 사회적 의미로 보아 는 신자들에 의해 성취되는 상호적 , ’평강역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상호 조화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빈센트, 메이어, 고뎃, 머레이등) 이런 맥락에서 희락역시 교회 안에서 의와 평화가 넘칠 때 나타나는 신자들 마음속의 기쁨과 아울러 교회가 공동적으로 누리는 즐거움으로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8)

본절은 앞절과 연결해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섬기는 자에게 보장된 두 가지 측면의 긍정적인 결과를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섬기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류온종과 같이 봉사하다라는 뜻으로 그리스도로 인해 구속함을 받은 성도가 마땅히 견지해야 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세를 언급해 준다. 한편 이 표현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을 사는 자는 교회 공동체에서 뿐만 아니라 불신자에 있어서까지 존경을 받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칭찬도 받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성도의 삶은 쉽지 않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19)

앞 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가 얻을 두 가지 측면의 유익을 언급한 바울은 이제 그 당연한 실천을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화평의 일이란 바울이 지금까지 논의하고 있는 성도간의 조화와 친교적인 노력을 뜻하며, 덕을 세우는 일(타 테스 오이코도메스)’이란 원래 집을 짓는 과정으로서의 건축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성도의 지혜와 덕과 거룩함 등의 덕목이 점점 자라나게 하는 일을 의미한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이는 본장에서 바울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권면이며 또한 덕을 세우는데 방해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여기서 무너지게(헬 카탈뤼에)’라는 표현은 건축물을 무너뜨린다란 의미, 앞절의 덕을 세우는 일이라는 단어와 의도적으로 반대되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서 강조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사업(토 에르곤 투 데우)’이란 믿음이 연약한 형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새서 믿음이 강한 자가 아무 음식이나 먹음으로써 믿음이 연약한 자의 구원을 가로 막고 교회 공동체를 와해 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만물이 다 깨끗하다라며 먹는 사람들은 믿음이 강한 사람이며, ‘꺼리낌으로 먹는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자다. 즉 이 표현으로 보아 음식 자체는 결코 악한 것은 아니라 그 금식이 상황을 무시하고 남용 할 때 악한 결과를 거져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21)

이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 성도들도 바로 이 <형제 사랑의 원리> 때문에 자신들을 절제해야 한다. 한편 본 절에는 그동안 계속 감추어져 왔던 음식 문제 마시는 것-고기와 포도주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고기는 이방제단에 바쳐졌던 우상 제물을 말하며, ‘포도주를 마시는 문제는 구약부터 내려오는 경건을 훼손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금하고 있었다. 바울은 비록 믿음이 있어 음식(먹는 문제)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믿음이 약한 형제가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절제 했다.(고전8:9-13)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본 절도 앞선 문맥과 마찬가지로 역시 이 권고도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참된 믿음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확신과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데니)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옳다(헬 도키마제이)’는 마치 금이 순도를 시금석으로 측정하듯이 충분한 진위 시험을 거친 후에 인정받다라는 뜻이며, 정죄하다(헬 크리노)’판단하다’ ‘심판하다는 의미다. 즉 책임 의식이 있는 성도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검토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굳은 신념)을 의미한다. 한편 복이 있도다(헬 마카리오스)’는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영적 번영을 가리킨다.(데니)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23)

지금까지 믿음이 강한 자가 굳은 신념을 가진 것에 대한 긍정적 평간인데 반해 본절은 믿음이 약한 자가 자기의 신념에 위해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다. 여기서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는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서 스스로 책임질 수 없을 때에는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의심하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 받는 이유다. 한편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는 본장의 결론적인 구절로서 여기 나타나는 믿음역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이를 인간의 이기적인 뜻과 구별하여 분별력 있게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교훈과 적용


성도의 이중 유익!

본문에서는 18절을 주목한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본절은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섬기는 자에게 보장된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이른바 성도의 이중 유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섬기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류온종과 같이 봉사하다라는 뜻으로

성도가 마땅히 견지해야 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세를 말한다.

한편 성도는 교회 공동체에서 뿐만 아니라

불신자에 있어서까지 존경을 받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든 성도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하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하나님께 칭찬도 받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성도의 삶은 쉽지 않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그 방법이 19절에 언급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충고한다.

그것은 바로 화평의 일덕을 세우는 일이다.

화평의 일이란 성도간의 조화와 친교적인 노력을 뜻하며,

덕을 세우는 일이란 집을 건축하는 것처럼

성도의 거룩함의 덕목이 점점 자라나게 하는 일을 의미한다.

하지만 교회 내에는 사소한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20)

여기서 하나님의 사업이란 구원의 역사를 의미한다.

한편, ‘무너지게(헬 카탈뤼에)’라는 표현은 건축물을 무너뜨린다라는 의미로,

앞의 덕을 세우는 일에 반대 되는 개념이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