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빛의 자녀들답게 사십시오

새벽지기1 2019. 5. 12. 06:49


빛의 자녀로 사는 법 


나는 누구입니까?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주안에서 빛입니다(8절). 여러분, 우리는 빛이기 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빛입니다. 어떻게 빛이 되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빛이 되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빛이 된 것입니다(요 1:9, 9:5, 마 5:14).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빛의 자녀들답게 살라.” 저는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세상은 칠흑 같이 어두워졌습니다. 뭔가 아는 것 같은데 알지 못하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허전한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세상에 온 빛을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둠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어둠은 빛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피합니다. 둘째, 어둠은 빛이 오면 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셋째 특징은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빛이 오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빛이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빛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캄캄한 세상 가운데 한줄기 빛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빛으로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빛의 자녀의 위대한 특권을 돈과 맞바꾸지 마십시오. 빛의 자녀의 위대한 신분증을 작은 명예와 맞바꾸지 마십시오. 빛으로 부름 받은 이 위대한 사명을 인기와 맞바꾸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참 빛으로 이 땅에 오셨고 이 캄캄한 세상에 진짜 빛을 비추기 위해서 당신을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그럼 ‘빛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선함, 의로움, 진실함입니다(9절). 선함이란 도덕적으로 바른 것입니다. 의로움이란 비뚤어지지 않고 똑바른 것입니다. 진실함은 불순물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빛의 자녀는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삽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차할 때에 옆 사람이 내리는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 일렬 주차할 때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중립에 놓는 것, 빈정거리지 않고 대화하는 것, 공금은 1원이라도 건들이지 않는 것 등입니다.


바른 도덕성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른 도덕성은 구원의 열매요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성품이나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건 가짜입니다. 진짜에는 메시지가 있고 빛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크리스털이 빛나듯 당신의 삶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반짝반짝 빛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당신이 지나만 가도 착함과 바름과 진실함이 빛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두 가지 해답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해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입니다(10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있고, 싫어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빛의 자녀처럼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왜 이 시대가 이렇게 흔들릴까요?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기준, 나침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헤매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해서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진리다’는 식입니다.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마호메트가 모두 구원의 길로서 의미가 있다. 절대적인 진리, 오직 한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는 기준이 있고 나침반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명령, 언약, 뜻이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남자끼리 관계를 맺는 것은 성적인 취향이 아니라 분명한 죄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우습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고 죄에서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옳다고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착한 행실로 말하십시오 


시대 풍조가 우리 인생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늘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을 취하십시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피하십시오.” (살전 5:21~22) 모든 것을 분별하십시오. 선한 것을 꽉 잡으십시오. 악은 흉내도 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 행하는 능력이 영성입니다.  


두 번째 해답은 어둠에는 열매가 없다는 것을 착한 행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11절).  우리가 아무리 어둠을 비판한다고 어둠에 열매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 바르고 착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어둡게 살아가는 인생은 잘못됐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12~13절).  우리가 착하게 살면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마 5:16). 어둠에 살던 사람들이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며 충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라고 자신의 삶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거기에 충격이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이런 혁명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착하게 살고, 바른 길을 가고, 진실과 정직을 찾아오면 사람들이 거룩한 충격을 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저렇게 사업해도 되는구나. 저렇게 공부해도 되는구나. 저렇게 해도 굶어죽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어둠의 일들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 빛으로 나오게 하십시오 그것으로 끝일까요? 오늘 말씀의 비밀이 14절 말씀에 있습니다. “이는 드러나는 것 마다 모두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하면 “크리스천들이 선하게 살면 세상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어둠을 깨닫고 크리스천이 될 것이다”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선한 행실을 보면 어둠이 드러나고, 어둠이 드러나면 그들이 빛으로 나올 것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역사가 당신의 인생가운데, 이 민족가운데 일어날지어다. 14절 후반을 보면 빛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외치는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으신 외침입니다. 교회에게 맡겨주신 외침입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외침입니다. 이 메시지는 입을 크게 벌리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바르게, 정직하게 살면 삶에 빛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둠을 흔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이 빛이 됩니다.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 메시지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그런 놀라운 역사가 있을지어다. 이 메시지가 당신의 입술로만 있지 않고 당신의 삶에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