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진희사모

부활의 증거로 겸손히 성령님을 의뢰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로 진정한 회개가 되어진다.

새벽지기1 2019. 3. 27. 11:27


부활의 증거로 겸손히 성령님을 의뢰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로 진정한 회개가 되어진다.

               

주일 예배 가운데 많은 말씀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애찬을 준비하다보면 말씀을 온전히 듣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초집중을 하지 않으면 다 날려보내기가 너무 쉽다. 자리에 앉아서 듣지 못해도, 때때로 잘 들리지 않아도 한 말씀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 2가지가 들리고 마음에 새겨졌다.

하나는 '증거 앞에 겸손하라!'는 말씀과 또 하나는 '회개하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주인이신 증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고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증거, 죄와 죽음과 마귀와 옛사람의 습관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증거 등 이러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있음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부활!!!'인 것이다. 부활이 역사적 사실로 기록이 되어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증인들이 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수 백, 수 천년 전에 예언해 놓으신대로 오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객관적인 사실로 흔들리지 않을 확실한 증거를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왜 믿지 못할까?...
이땅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부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상식, 느낌.감정, 경험으로는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기에 인간 자신의 관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믿지 않는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주인되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생각의 틀 안에 전능하신 분을 가두어 두고 그속에서 생각하고 판단 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이 곧 교만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그렇다면 증거 앞에 더 이상 내 생각, 내 느낌, 내 경험을 가져다가 대입시켜 생각할 수 없다.

부활로 우리의 주인이심을 확증해 주신 분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사는 것이다.


지난 주 월요일에 우리 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춘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소양강 스카이워크를 찾아가 강물 위에 유리로 놓인 다리를 건너 보았다.

다리가 유리로 되어 있고 다리 양쪽으로는 직접적으로 발 밑에 강물이 보이지 않게 흰색판을 받쳐 놓았고 가운데로는 발 밑으로 흐르는 강물이 그대로 보였다.

연세가 많으신 김금도집사님을 부축하여 모시고 가면서 강물이 그대로 보이는 가운데에서 한 번 걸어 보시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니라고 사양하시며 물이 보이지 않은 바깥쪽으로 걸으셨다.

나 역시 바깥쪽으로 겉다가 다리 가운데로 한 걸음을 옮겨 걸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다리 가운데나 양 바깥쪽이나 같은 다리임이 분명한데 발 밑에 흐르는 강이 직접 보이고 안보이고에 따라 엄청 두렵기도
하고 두렵지 않기도 한 것이었다.

'아,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느낌. 감정이 이런 것이구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이렇게 마음이 요동할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며 인지가 되었다.

또한 다리 끝부분이 다리보다 큰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김병욱목사님이 몸무게로 다리에 힘주어 흔들었더니 근처에 서 있던 내게도 바닥이 흔들리는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 순간 흔들리지 않는 사실 위에 세워진 부활이 얼마나 든든하고 믿을만한 것인지 새롭게 마음에 새겨지며 감사했다.

아무리 큰 체험을 했어도, 아무리 많은 기도응답을 받았어도,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아도 부활의 근거가 아닌 나의 것으로 믿음이 세워지는 것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속에 콕 박혀 있는 부활은 그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믿을만한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예배 중 들렸던 또 하나는 '회개하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회개가 하는 척이 될 때 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최근에 무리를 일으킨 연예계 사건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연예인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고백을 했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 연예인이 정말 뉘우친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나 최근에 다시 그 연예인의 범죄가 드러났다.

지난 번 보다도 더 심각하게 그 죄가 드러났다.

게다가 그 전에 자신이 뉘우친다고 반성한다고 했던 말들이 뉘우치는 척을 한 것이었음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처음 사건이 드러났을 때 정말로 회개했다면 그는 다시 그러한 죄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눈가림만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비판하는 우리는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가?....
그 연예인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서 연예인 인생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가장 힘든 지금의 때가 그 연예인에게 주어진 또 한 번의 기회인 것이다.

더 이상 그 마귀의 속임수에 속지 말고, 마귀의 종이 되어 끌려다니지 말고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인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도 동일하다. 내게도 동일하다.

회개하라는 것이 율법이 아니라 돌이킬 기회요, 주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들으며 앞에서 이야기한 연예인처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척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회개하는 척' 할 수 있다는 것이 찔림이 되었다.

나는 진심이었다고, 진심으로 회개한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 잘못을 다시 반복한다면 잠깐의 뉘우침과 반성은 될 수 있어도 진짜 회개한 것이 아닌 것이다.

또는 그 연예인처럼 겉으로만 뉘우친 척 한 것이다.

이 말씀이 복음으로 비쳐지니 죄를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뉘우치고 회개했다면 그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서는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얼마나 죄를 반복하며 그 죄를 붙들고 있었는가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 뿐인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대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자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여기서 놀라운 자유함이 있다.

내 힘으로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과 결단을 해도 나의 힘으로 죄가 끊어질 수 없는데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나를 통해 성령께서 살아내시며 누리게 하신다. 할렐루야~!!
매일 부활의 주님 앞에 회개로 나아가는 은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