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진희사모

예수님의 통치하심 아래 항상 주를 바라보며 나의 영혼이 늘 깨어있길 원합니다

새벽지기1 2018. 10. 3. 22:30


예수님의 통치하심 아래 항상 주를 바라보며 나의 영혼이 늘 깨어있길 원합니다.

( 부제: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을 항상 바라볼 때 변화는 따라온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데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으로 새벽 말씀이 증거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을 정말 주인으로 믿는가?

그렇다면 주인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변하지 않을까?....
그것은 주인되시는 예수님 앞에 매일, 매 순간의 굴복이 되지 않아서이다.

굴복은 왜 되지 않는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항상'이 아니라 '가끔' 바라보기때문이다.

즉, 우리 영혼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을 바라보며 동행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한복음 6장 40절에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내 힘이 아닌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되어지는 것, 예수님이 주인이셔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와 늘 함께함에 있다.


마태복음28장 20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을 주시면서

너의 힘으로 너 혼자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함께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여종을 구해줌으로 사도 바울은 도리어 감옥에 갖힌다.

그 여종을 통해 점을 치며 돈을 벌던 여종의 주인이

더 이상 여종이 점치는 것으로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바울을 고소한 것이다.

이처럼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감옥에 갇힌 바울은 감옥 안이나 감옥 밖이나 상관없이 주님의 함께하심으로 늘 기쁠 수 있었다.


구약의 모세는 또 어떠한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라는 사명을 감당하고 나서 마지막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는 못했다.

약속의 땅인 그 가나안 땅이 보이는 느보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세상의 인본주의 관점으로는 마치 사냥개를 사냥할 때 쓰고서는 사냥이 끝난 후에는

그 개를 잡아 먹는 것과 같은 토사구팽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영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땅에서는 원하는 결과를 반드시 얻는 것이 아닐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중요한 것이다.

광야에서도 모세와 함께하신 주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 있을 때에도 함께 하신 것이다.


스데반집사는 또 어떠한가?

베드로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할 때 삼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고

전도의 열매로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스데반집사는 설교하다가 돌아 맞아 죽게 된다.

이렇다 할 사역의 성과도 없이 죽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스데반집사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순교의 본이 되고 있다.

주를 위해 사는 것도 주를 위해 죽는 것도

모두가 예수님이 주인되셔서 함께해야 할 수 있는 순교인 것이다.

주께서 기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그의 죽음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순교였다.


예수님은 왜 우리와 동행하고 싶어 하실까?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가 원래 당신의 자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님의 사랑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전부를 주실만큼 크신 사랑이다.

그 사랑의 근원이신 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마음 하나이다.

함께하기 원하시기에 마음의 주인되시길 원하시는데 우리는 그 마음 하나 내어 드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세상이 마귀권세 아래 어둠인 것에 눈이 떠질 때,

그 어둠에서 건짐받았음이 믿어질 때 비로소 마음 중심의 자리를 내어 드리게 된다.

너무나 놀라운 영광스런 순간인 것이다.


우리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에는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 믿음이다.

복음이다. 그러나 믿음은 동행까지인 것이다.

나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통치하심 아래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에녹과 같이 기쁨의 동행을 하는 것이다.

주인되시는 예수님과의 동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분께 기쁨으로 순종하고 올라오는 옛사람의 습관이 굴복되기 위해 주님 앞에 마음을 낮추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붙들기 원합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서도 낮은 마음으로 마지막 예배인 것처럼 온마음으로 예배하길 원합니다.

자유와회복공동체에 주시는 생명의 말씀에 아멘으로 받게 하소서.

부활하시어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