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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막생활인가?(추수감사절) (레위기 23:39-43

새벽지기1 2018. 2. 8. 07:23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다. 구약의 절기로 보면 초막절이다.

추수감사절은 17세기에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지키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 깊은 뜻을 알려면, 우리는 구약의 초막절로 돌아가야 한다.

 

초막절은 모든 수확물을 저장하고서 이레 동안 지키되,

첫날과 여덟째 날에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화제)를 드리게 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대회’,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이다.

(레 23:34-36)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명절에는 각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예물을 드리며 감사하라고 하신다.

(신16:16-17)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오늘 우리는 지난 주 초막절 첫째 날 예배에 이어 여덟째 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레 23:39-42)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오늘은, 이 말씀의 초점을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에 두고자 한다.

왜, 한해 수확을 다하여 저장한 다음에 이를 감사하며 명절을 지키는데

집도 아닌 초막생활을 하게 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이레 동안,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로 초막을 지어 거주하라고 하셨다.

 

모든 수확물을 저장하고서 지키는 명절을 수장절이라 하면서도,

왜 초막절이라 이름하셨으며, 왜 명절기간 동안 초막생활을 하게 하셨을까?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로 이를 지키라 하셨을까?

첫 번째 뜻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다.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한 해 동안 수확을 하여 저장한 복도 즐거워할 일이지만,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를 알라는 것이다.

초막절 때마다 구원의 복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오늘 한 해의 수확이 있기까지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대회로 지키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고 “여호와를 위하여”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해의 풍성한 수확 가운데 잊기 쉬운 것이 구원의 복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며 하나님이 가장 걱정한 것은 한 가지였다.

(신8:7,12-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셔서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우리 또한 세상에서부터 불러내어 어둠에서 빛으로 아들의 나라로 구원해 주셨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복주시고 인도하셨다.

이를 감사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우리 구원의 복이다.

 

이 구원을 위하여 성자 하나님은 영원한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제물이 되셨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는 것을 구약 제사를 통해 하나님은 계속 계시해 오셨다.

 

송아지와 양의 피가 아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

이 화목제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과 화평이 이루어졌고,

믿음으로 은혜로 하나님께 구원받고 자녀가 되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에 한해 동안의 수확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하되,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고난 받으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히13:12)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게 하시는, 두 번째 뜻이 있다.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함이라

 

초막은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겪은 광야와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출해 내신 후 곧장 가나안 기업을 주시지 않고

광야에서 훈련과 연단을 받은 고난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 후 광야의 초막 생활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과 회심은 귀하고 필수과정이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고 출발일 뿐이다.

우리는 자라야 하고 성숙해야 하고 대장부같이 견고해져야 한다.

 

갖난 아이로 머물러 있을 수 없고 광야 초막 생활을 통해 자라고 굳건해져야 한다.

(신8:14-16)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광야에서 초막생활의 목적은 우리를 온전케 하여 마침내 가나안 기업을 주기 위함이다.

“모든 선한 일에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히13:21).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다(롬8:29).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하고 성장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과 진리의 성령을 따라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몸에 밴 어린 시절들과 ‘조상이 물려준 헛된(망령된) 행실들’(벧전1:18)을 버려야 한다.

 

이 변화와 순종의 삶이 우리 스스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초막 생활은 세상으로부터 구원 받은 자가 광야의 훈련과 연단을 거침을 상징한다.

우리 주님이 당신의 귀한 몸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바친 것처럼

우리도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의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는 것이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 사는 길로 가는 것이다.

‘내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내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이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난을 통해 훈련과 연단을 받아야, 초막생활을 거쳐야,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되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된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초막 생활의 목적을 잘 말씀해 주는 말씀이 있다.

(히13: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초막생활의 목적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구원받고 자녀가 되었으면 광야 초막 생활을 통하여 온전하여져야 한다.

모든 선한 일에서 주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 앞에 즐거운 것을 우리 가운데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생애를 통하여 진정으로 수확하여야 할 것은 주의 뜻과 주 앞에 즐거운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추수감사절은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대심판대에 설 때이다.

우리는 생애 동안 수확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계산을 해야 할 것이다.

 

광야의 초막 생활을 겪으며 성품을 온전케 하는 일에 인내와 믿음으로 헌신한 사람들은,

오직 주의 뜻을 행하기 위해, 주 앞에 즐거운 것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은,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기쁘고 즐거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직 자기 뜻과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은 한스럽고 괴로운 날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초막 생활에서 자기들의 뜻을 이루어주지 않는다고 원망 불평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의 뜻은 아랑곳 없이 자기 뜻을 위해 우상들에게로 갔다.

 

그 끝은 멸망이었고, 가나안 기업의 상실이었다.

이 모든 구약의 기록은 우리의 거울과 경계로 쓰여진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교훈을 받고 위로와 인내와 소망을 가져야 한다.

 

광야 초막 생활은 그렇게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고난 중에 형통이 있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과 공급이 있다.

다윗이 쓴 시 23편은 그의 광야 초막 생활 중에 쓴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누어 쉴만한 푸른 풀밭과 물 가로도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하신다.

피할 길도 열어 주시고, 감당할 만한 힘도 주신다.

만나도 주시고, 생수도 주시고, 옷이 헤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릅트지 않게도 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사람, 하나님이 목자인 것을 아는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여정의 끝과 목적을 아는 사람은 통과하는 위기와 장애물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는 사람은,

그분이 나의 모든 길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큰 목자임을 아는 사람은,

광야 초막생활의 험난함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는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광야를 통과하면서도,

주리고 낮추시는 시글락 위기를 겪으면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된다.

그 끝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감사해야 한다.

아울러 매년의 추수감사절을 맞이할 때마다 초막에 거주하게 하신 뜻을 생각하며

우리의 영원한 추수감사절, 초막절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영원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함께 고난 받았던 시절을 돌아보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

오늘 추수감사절, 초막절에, 현재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자.

우리가 진정으로 맺어야 할 수확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수확을 위해 헌신하자.

이 영원한 수확을 위해, 오늘 우리의 삶을 과감히 조정하고 결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