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2장 29∼30절에 이런 기록이 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位)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음이었더라”
당시 애굽 왕의 장자가 죽었다고 하는데 그 증거가 있는가?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경의 기록이다.
애굽 왕의 장자가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미리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이었다(출 11:4∼5).
유월절 예식도 장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제정된 예식이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치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있는 피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이시지 않겠고 약속하신 것이었다(출 12:12,23).
완악할 대로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던 애굽 왕이
항복한 것도 장자의 죽음 때문이었다(출 12:31∼36).
애굽 왕의 장자가 죽었다는 것은 위와 같은 성경의 증거로 충분히 입증되지만 성경 외에도 증거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것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하기 480년 전이었다(왕상 6:1).
솔로몬은 BC 970년에 즉위했는데 솔로몬이 즉위한 지 4년 후에 성전 기공식이 있었다.
솔로몬 성전은 BC 966년에 건축되기 시작했다.
BC 966년에서 48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BC 1446년이 된다. 출애굽 연대는 BC 1446년이다.
그때 애굽은 제18왕조의 투트모세 3세(모세가 피해서 도망할 때의 바로?출 2:11∼15)가 다스리고 있었다.
투트모세 3세는 BC 1447년에 죽었고 그의 아들 아멘호테프 2세가 왕위를 이어 BC 1421년까지 다스렸다.
그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투트모세 4세(BC 1421∼1410)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했다.
기제의 스핑크스 사원에서 발견된 석판에는 하르마키스(Harmakhis) 신이 꿈에 나타나 말한 내용이 적혀 있다.
부왕이 다스릴 때 왕자들 중의 하나로 있던 투트모세 4세에게 하르마키스 신은 꿈에 이렇게 엄숙한 약속을 했다고 한다. “나는 너의 아버지(신으로서의 아버지) 하르마키스(Harmakhis-Khepri-Re-Atum)이다.
나는 너를 살아 있는 자들의 우두머리로 세워 나의 지상왕국을 주겠다.”
그 신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투트모세 4세의 부왕이 죽을 때까지 그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는 신탁이었다.
왕의 장자가 후임 왕으로 즉위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그런 신탁이 불필요하다.
그 신탁은 투트모세 4세가 그 꿈을 통한 신탁을 받을 당시에는 세자(장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투트모세 4세에게는 아버지의 왕위를 이을 그의 형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형은 언제 없어졌을까?
그의 형은 출애굽기 12장에 기록된 열번째 재앙인 장자사망 재앙에서 죽은 것이 분명하다.
애굽 왕의 장자가 죽었다는 것은 성경의 증거와 성경 외의 증거로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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