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변한다 해도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세상이 이럴 수 있을까. 허탈하고 답답하고 막막하다. 이상이 정상으로, 정상이 이상으로 통하는 것 같다. 살 맛이 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국방 교육 가정 등 모든 분야에서 기본적인 틀이 흔들리는 것 같다.
터가 무너진다고 느끼는 것조차 이상으로 보일 정도다. 이상이 큰 소리 치면 이기고 정상이 가만히 있으면 진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변했는가? 알렉산더 포프의 말이 생각난다.
“악덕은 너무도 무서운 모습을 한 괴물, 미워하기 위해서라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자주 보면 그 얼굴도 익숙해져서 처음에는 참아야 하지만 다음엔 동정하고 마침내 끌어안는다.”
“저러면 안 되는데, 저건 아니야”라고 거절하면서도 자꾸 보고 자꾸 들으면 점차 무감각해진다. 좀더 있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감각조차 마비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옳은 것도 그 중심축을 잃고 만다.
사회가 이렇게 거꾸로 가고 있는 동안에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했는가? 초대교회는 예루살렘과 아시아와 로마를 복음으로 변화시켰다. 복음적 가치관으로 온 세상을 감염시켰다. 바른 말, 바른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을 짜게 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세상을 짜게 하는 소금 알갱이들도 물론 많이 있다. 그러나 대개 소금 알갱이들은 소금병 안에서 놀고 있다. 가정에서도 끼리끼리, 학교에서도 끼리끼리, 식사시간에도 끼리끼리 모여 있다. 소금 알갱이들이 소금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는 소금 알갱이들인데 일단 사회에 나가면 병 마개를 꼭 막아버린다.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 나가면 기독교인의 신분을 숨기고 산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지면 기겁하기도 한다.
설령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알린다고 하여도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사회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영향을 준다 해도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짠 맛을 주기는커녕 구린 맛을 풍긴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소금은 소금병 밖으로 나와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잠잠하지 말고 말해야 한다. 말로 말하고 글로 말하고 삶으로 말해야 한다. 거꾸로 뒤집어진 세상을 다시 거꾸로 뒤집어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한다. 온 세상이 살 맛 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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