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다양성은 중요성의 모태

새벽지기1 2017. 11. 19. 06:18


요즈음 사람들과 말을 나누다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사람이 다르니까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세대차가 심하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다르고 부모와 자식의 생각이 다르다. 교회에서는 교역자와 평신도의 생각이 다르고 장로와 집사의 생각이 다르다. 정치적으로는 야당과 여당의 생각이 다르고 구파와 신파의 생각이 다르다. 노사 문제에서는 노사정(勞使政)의 생각이 다 다르다.

생각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옳고 그름은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시는 절대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종교다원주의는 결코 용납될 수 없고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절대 포기될 수 없다. 구원의 진리에서는 옳고 그름이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윤리 문제에 있어서도 분명한 기준이 있고 옳고 그름은 가려져야 한다.

구원과 윤리에 있어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할 때 사랑으로 해야 한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할 때에(엡 4:15) 그 말이 빡빡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도 풍요롭고 듣는 사람도 풍요롭다.

윤리 문제를 포함하여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선을 그을 수 없는 사안도 많다. 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를 때 강압적인 방식으로 획일성을 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특별히 집단과 집단이 생각이 다를 경우 법 테두리 안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율할 때 서로에게 풍요로운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사람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사람의 생각도 다 다를 수 있다.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은 풍요로운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싸울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조정해야 한다. 정(正)과 반(反)이 풍요로운 합(合)에 이를 수 있다. 획일성은 폐쇄와 고집으로 인해 빈곤성을 낳지만 다양성은 포용과 조율을 통해 풍요성을 낳는다. 서로 다른 많은 지체들이 상합하여 하나의 온전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고전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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