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믿음과 사랑의 계명 (요일 3:21-24)

새벽지기1 2017. 10. 5. 09:37

 

1.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는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의 피로 열어주신 길이다.

(히4:16)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10:19-20)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음을 말씀을 통해 믿어야 한다.

구약에서는 보좌의 상징인 지성소의 시은좌 앞에 일 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화목제물이 되어 피를 흘리심으로 지성소의 휘장은 찢어지고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의 의를 힘입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고서도 담대하게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본문은 말씀한다.

여기서 마음은 양심과도 같다.

 

양심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작은 재판관이다.

양심은 둔해지거나 잠들거나 털나지 않으면 우리의 동기와 행위들을 판단해 준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양심의 판단에 민감하고 순종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 마음(양심)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무엇이든지 하니까 눈이 번쩍 떠지기 쉬운데,

그것은 항상 우리 영혼에, 우리 영생에, 유익한가가 기준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리 영혼에 무익하고 해로운 것을 주실 리가 없다.

그런 탐심을 가진 사람이 양심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는 없겠지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양심에 책망할 것이 없도록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담대히 구하여 받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하나님은 우리 양심보다 훨씬 큰 재판관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양심이 아는 것보다 우리에 대해 훨씬 많이 아신다.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이 하시게 된다.

 

우리의 양심은 잘못 판단할 수도 있고, 잘못 길을 인도할 수도 있다.

(고전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주님이 주권적이고 최종적으로 나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잘 깨닫고, 따르는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책망할 것이 없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하자.

그리하여,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구한 바를 얻는 우리가 되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려면,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도 않고, 그분을 슬프게 해드리는 일을 한 사람은

아무래도 그 앞에 담대히 나아가기도, 무엇을 구하기도 힘들지 않겠어요?

 

평소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삶의 최우선인 사람은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고 필요한 것을 구하여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

오늘 말씀이 이를 보장하고 있다.

 

2.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게 될 것이다.

 

그의 계명은 믿는 것과 사랑하는 것 두 가지라고 본문은 말씀한다.

먼저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그분의 인격과 사역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과 사역을 다 믿는 것을 말한다.

‘그 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예수’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는 그분의 사역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요 구세주요 중보자시요 대제사장이신 그분의 인격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입술에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믿는 것은 그분의 인격과 사역을 우리 영혼 중심에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영접하는 것이다.(요1:12)

 

그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게 된다.

(갈5:5-6)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다.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하신다(요일3:18).

정말로 그 이름을 믿으면 우리는 변화되게 돼 있다.

 

믿는 자는 사랑하게 돼 있다.

그 크신 분이 우리 영혼 중심에 들어오셨는데,

그리고 그분은 한 마디로 사랑이신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고 관계를 회복하게 한다.

 

옳고 그른 것을 따져가지고는 정의는 세워지겠지만,

가장 소중한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기는 어렵다.

관계의 회복에는 사랑말고는 없다.

 

더군다나 유행가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은 계명이요, 진리 안에서 사랑이다.

정의를 주장하는 아비와 사랑을 주장하는 어미가 다 있어야 하지만,

결국 엇나가는 자식을 정의로 돌이키는 사람은 아비가 아니고 어미인 것을 본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고 살리셨다.

(의로우셨기에가 아니다. 의의 심판은 아들에게 대신 하시고, 그 아들의 의를 옷입혀 주신 것,

그것이 구원이다.)

 

주님은 주의 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저는 이 기도를 할 때마다 걸리는 때가 있다.

그러면, 다시 이 주님의 기도를 생각하고 원수 같은 이를 위한 축복 기도를 한다.

 

성령의 첫 열매가 사랑이고 두 번째 열매가 희락, 세 번째가 화평이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이 이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맺을 수 있는 열매들이다.

 

우리가 육체로 충만하여 육체로 취하니까, 맺지 못하고 육체의 열매들만 맺게 된다.

갈등하고 싸우고 갈라지고 찢어지는 것이 육체의 열매들이다.

그 열매의 뒤끝이 생긴대로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부상으로 은혜와 평강과 화평과 천국을 얻게 된다.

육체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부상으로 자기 의와 불안과 불화와 지옥을 얻게 된다.

 

내가 일만 탈란트 빚진 것을 갚아주신 것을 생각하면, 오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함을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한다고 하셨다.

우리 마음이 사랑보다 미움이, 평화보다 갈등이 요동칠 때, 내 받은 것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오늘 천국을 사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다.

믿음으로 사랑하면, 그분이 나의 주인임을 생각하면,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관계일수록 상처받기 쉽고 깨어지기 쉽고 흔들리기 쉽고 장애물들이 많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니까 서로 사랑하자.

화평이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의를 위한 투쟁은 오히려 악의 열매를 맺고 말이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하셨다.

(롬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내가 갚아 봐야 별로 신통하게 갚지도 못한다.

원수보다 내가 더 상처를 많이 받고, 원수보다 내가 더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고, 나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하면서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노면 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그런 기회가 왔을 때도, 오히려 그를 먹이라고 한다.

그 뜻은 ‘그를 실컷 먹이라, 아니 더 나아가 그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관대하게 먹이라’라고 한다.

‘마시게 하라’도 화해와 우정의 표시로, ‘네 사랑을 그렇게 확인시켜 주어라’는 뜻이라 한다.

그렇게 할 때,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 뜻은 ‘그를 녹여 그로 하여금 회개와 우정을 갖게 하고,

너에게 그의 영이 누그러진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이라고 한다.

(쇠를 녹이는 사람들이 쇠를 숯불 아래 두기도 하고, 숯불 위에 쌓아놓기도 한다).

이처럼 사울도 다윗의 친절에 의해 녹아지고 정복을 당했다. (삼상24:16,26:21).

- 그것을 통해 너는 친구를 얻을 것이다.

 

두 번째 뜻은, ‘그것은 정죄를 재촉하고,

너에 대한 그의 악덕을 더욱 핑계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라는 것이다.

-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 이런 결과가 주어질 것이다.

 

‘악에게 지지 말라’는,

‘어떤 악이 너를 자극한다 해도 그 능력이 너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 있다.

‘그 감정이 너를 흔들어 너의 평안을 깨뜨리고 너의 사랑을 파괴하고 너의 영을 불안케 말라’,

‘어떤 앙갚음을 구상하거나 시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 묵묵히 상처를 감내하지 못하는 자는, 완전히 그것에 의해 정복당한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너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을 참음과 인내로, 아니, 한 술 더 떠 친절과 관대함으로 대하라.’

‘최소한 네 자신의 평안을 지키도록 하라.’

- 자신의 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자는, 힘센 자보다 강하다.

 

원수를 사랑해 줌으로 결국은 승리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들이다..

그분 안에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승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그 이름을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계명의 반만 지키는 것이 될 것이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만 지키고, 둘째 계명은 지키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3. 하나님과의 교통과 연합이 이루어지는 복을 받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과 영광이 있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의 교통과 연합이 이루어진다.

 

(요일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특별히 믿고 사랑을 행하는 사람은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 사람 안에 거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축복의 관계를 맺게 되고,

영적인 연합을 이루어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된다.

 

(요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연합하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방법은 세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의 내재가 우리 속에 일어나게 된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혼의 기질과 성향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내재하심을 알게 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믿음과 사랑 뿐이다.

(요15:10-12)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계명을 지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하나인 것을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자가 계명을 지키는 자이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사랑하게 돼 있다.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요15:8-9)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우리 주님께서 십계명과 모든 계명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주신 것도 결론은 사랑이다.

(마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믿는 자가 해야 할 일의 최우선과 전부는 결국 사랑으로 귀착이 된다.

주 나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먼저요, 다음은 그와 같은 사랑으로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 속에서만 축복과 영광과 천국이 있을 뿐이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자.

내게 죄 지은 자를 사랑해서 그 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자.

 

하나님께 항상 좋은 것을 얻는 자도 남을 먼저 대접하는 자라고 하셨다.

(마7:11-12)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믿고 사랑하는 자는 담대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하는 바를 얻고,

나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심으로,

평화와 천국과 영광과 축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믿고 사랑하는 주인공들이 되자.

이 믿음과 사랑으로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화목하게 하고 복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