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두아디라교회, 칭찬과 책망 (계 2:18-29)

새벽지기1 2017. 10. 25. 06:58

 

두아디라 교회는 그 사역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로 칭찬을 받는 교회이다.

책망을 받는 점은, 자칭 여선지자와 그 추종자들의 음행(우상숭배)을 묵인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점에 있어서 칭찬 받는 교회도 거짓 선지자의 미혹엔 약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두아디라는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아시아의 도시였다.

그 남쪽 경계를 상업이 성한 루디아로 하고 있었다.

바울이 마게도니야의 첫 도시 빌립보에 갔을 때 믿고 영접한 자색옷감 장사 루디아 이름과 같다.

이 여인이 자신이 살던 도시인 두아디라에 복음을 전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두아디라 교회에 보여주시는 주님의 모습은 이렇다.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 눈이 불꽃 같다는 것은, 그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는,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통찰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이시다(23절).

 

그의 발이 주석과 같으시다는 것은, 그의 섭리와 심판이 한결같고, 장엄하고, 거룩함을 의미한다.

그는 완전한 지혜로 섭리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한 분이 이 두아디라 교회를 살피시고 칭찬하신다.

그들의 사랑을 칭찬하신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종교도 없고 믿음도 없다.

그리고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고,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성령으로, 믿음으로 하지 않는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의 섬김을 칭찬하신다. 사역자들과 지체들에 대한 섬김이다.

섬김과 봉사가 없다면 교회는 유지될 수도 없고, 그 기능을 발휘할 수도 없다.

주님은 은밀하게 섬기는 봉사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

주석같은 거룩하고 장엄한 보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믿음은 사랑과 섬김, 모든 다른 덕을 실행시키는 은혜(추진력)이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도 없고 사랑도 없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믿음을 주신 것 감사하고, 믿음으로 살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그들의 인내를 칭찬한다. 사랑에도 섬김에도 믿음에도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하지 못하면, 사랑도 섬김도 믿음도 일시적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 25년, 요셉 13년, 모세 40년)

 

그들의 열매들을 칭찬하신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음을 칭찬하신다.

다른 교회들이 처음 사랑을 버리고, 처음 열정을 잃어버렸을 때,

이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도 섬김도 믿음도 인내도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점점 나아지고 선해지고 풍성해지고 성숙해지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끝이 좋아야 하고, 나중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목표와 간절한 소망이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처음보다 나중 열매가 더 많고 더 좋은 우리가 되자.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좋은 두아디라 교회인데도 책망 받을 일이 있다.

이 책망은 교회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그 교회 안에서 가증한 짓을 자행하는 사악한 미혹자들에 대한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의 잘못은 그러한 잘못한 자들을 묵인하고 방치한 처사였다.

 

이 사악한 미혹자들은 이세벨에 비유되고 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왕비로 선지자들을 박해한 여자였다.

그녀는 우상숭배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큰 후원자였다.

 

이들의 죄는 또한 하나님의 종들을 미혹하여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게 한 것이었다.

이 미혹하는 자들은 자칭 선지자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역자들보다 더 높은 권위와 존경을 요구했다.

교회 사역자들을 무시하고 그 꼭대기에 올라가 온갖 판단과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주님의 포도원을 허물고 자기들의 사냥터로 삼는 것이다.

 

이 미혹자들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진리를 반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운다.

그들은 그들이 본 것, 그들이 들은 것, 알게 된 것들이 다 성령의 것으로 안다.

사탄이 들어가면, 자기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들을 한다.

 

주님의 포도원을 허물면서, 그들은 주님의 포도원을 바로 세우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이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 위에 서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종이 되십시오’이다.

(왕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이 되십시오’ 하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다.

(마7:15-1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깊은 것, 진리 운운하며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노략질하는 이리로 정체가 드러난다.

열매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나겠어요, 엉겅퀴에서 무화과가 나오겠어요?

남자 이세벨도 여자 이세벨 못지 않게 오늘날 교회를 미혹하고 흔들고 있다.

 

이 미혹자들은 하나님의 참으심을 남용했다.

회개하라고 주신 시간들을 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함을 키우고 확산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두아디라 교회의 잘못은 이 이세벨과 추종자들의 잘못을 두고 보았기 때문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비난하고 출교할 수 있는 치리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권한의 사용을 게을리한 것은 그들이 그녀의 죄에 동참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오늘날도 교회는 사랑이라는 위선 때문에 숫자라는 위세 때문에 치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참된 표지는 설교와 성례와 치리권이다.

설교와 성례를 잘 하면서도 치리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하면 이세벨의 무대가 되고 만다.

 

요한 사도는 이런 사람들은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했다.

(요이:9-11)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주님은 이 미혹하는 자들, 이세벨에 대한 징벌을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을 침상에 던질 터이요(22절).

이 침상은 즐거운 침상일 리 없다. 고통의 침상이요 불타는 침상이다.

이세벨과 음행의 죄를 범한 자들은 그녀와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면 이 징벌을 피할 수 있다. 그들이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23절)

문자 그대로 이행이 된다면 무서운 말씀이다.

그러나 성경 주석자들은 이 사망을 둘째 사망으로 해석을 한다.

이 둘째 사망으로 죽은 사람들은 결코 부활의 소망이 없다. 그들에겐 영벌이 있을 뿐이다.

 

주님께서 이들에 대한 징벌을 말씀하시는 것은 교회들에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23절)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 계획과 추구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자들의 간교함과 비밀스러운 성향들을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고 확실하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들에게 교인, 자칭 선지자라는 호칭이 전혀 보호막이 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순수함과 정결함을 지키는 사람들을 격려하신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24절)

 

이들 미혹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교훈을 깊은 것이라 부른 것을 볼 수 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교훈보다 더 깊다는 하는 것이 항상 문제이다.

미혹하는 자들은 더 깊고 더 비밀스러운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도 더 깊이 만나고 진리도 더 깊이 알고, 더 신비스런 비밀들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들의 소위 깊은 것에 빠지면, 그들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와 멀어지고 만다.

큐티다, 관상기도다, 제2의 회심, 제2의 축복이라는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

 

현대판 신비주의들이 교회들을 덮치고 있다. 이세벨의 무리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들을 아주 심오한 신비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보다 훨씬 깊은 신앙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허풍과 거짓말을 한다.

 

이들이 깊은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깊은 것을 아는 자들이라고 주님은 말씀한다.

사탄의 깊은 것이란, 사탄이 지어낸 망상들이나 고안물들이고, 사악한 마귀의 신비들이다.

그들의 책 제목들을 보면 그 비밀의 냄새들이 물씬 풍긴다.

‘시크릿’,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교회의 미래 전쟁’, ‘나는 환상을 믿는다’ ‘성령님을만나세요’.

미국 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TV와 방송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단체를 통해서.

 

그들의 말하는 경건의 비밀에는 반드시 불의의 비밀이 함께 한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이다.

하나님보다 그리스도보다 교회보다 성경보다 더 깊다고 하는 것이 항상 사탄의 함정이다.

 

이러한 교훈들을 받지 않고, 소위 사탄의 비밀스럽고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두아디라의 나머지 교인들을 주님은 위로하고 격려한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6)

 

너희의 믿음에 어떤 짐을 더하여 과중한 짐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다만 너희들은 나의 사역자들을 통해 받은 것을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환난들은 끝나게 될 것이다.

 

주님은 끝까지 견딘 승리의 신자들에게 분명한 보상을 약속하신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26-27절).

이 권세는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 국가로 변하는 것과 같은 시대를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권세는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그리스도와 교회의 적들을 심리하고,

정죄하고, 징벌하는 다른 세상의 시대를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또 그에게는 새벽 별을 주리라

그리스도는 새벽별이시다.

그리스도는 이기는 자의 영혼에 은혜의 빛과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에게 완전한 빛과 지혜를 주실 것이다.

그 빛과 지혜는 그의 백성들이 부활의 아침에 가지게 될 위엄과 권세의 지위에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