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신18:9-14)

새벽지기1 2017. 11. 1. 06:44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온전케 하고 완전케 하기 위함이다.

구원은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것이다.

구원은 아담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영역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것을 말한다.

 

우리 구원은 거듭남에서 출발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으면, 구원의 시작도 못한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다.

 

이 새로운 존재, 거듭난 생명은, 점점 자라서 완전한 데까지 나아간다.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온전히 이루신다.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는 말씀에 놀라거나 겁먹을 것이 없다.

사람이 어떻게 완전해 질 수 있느냐?는 것은 사람의 지혜이고 결론일 뿐이다.

하나님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99세때에 말씀하셨다.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은 욥이 완전한 자였음을 말씀하고 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이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났기에 온전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완전함의 내용을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브라함이나 욥같은 특정한 사람만 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완전할 수 있고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마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완전하고 안하고는 우리의 마음대로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우리는 어떤 핑계도 변명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성품 면에서, 삶의 행위 면에서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완전을 향해 나가는 자세를 사도 바울이 가장 잘 말씀해 주고 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계시록에서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완전함을 찾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계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하나님의 앞에서 완전함은 거룩함이기도 한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구원하신 목적이다)

 

거룩하고 완전하기 위해서는 이방인과 구별된 성품과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사람과는 다른 성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과 완전은 세상과 구별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고후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예수 믿은 후에도 우리의 성품과 삶에 변화가 없고 옛사람의 성품과 습관이 그대로라면

우리는 아직 거룩과 완전을 향해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옛사람의 성품과 삶의 습관들을 벗어가야 한다.

(거듭남은 우리 영혼 안에서 일어난 엄청나고도 위대한 변화이다.

이 변화는 전 인격과 삶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이방인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허망한 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여져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각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

(엡4:17-24)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골로새서는 이미 새사람을 입었다고 말씀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려면 이방인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신18:9-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진언자:주문을 써서 결과를 이룰려고 하는 자)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 태양 우상 몰렉에게 자식을 불태워 희생제사를 드림)

(요술하는 자: 마술(magic)을 부리거나 표적으로 점괘를 말하는 자)

 

(엡2장은 이 세상 풍속을 좇는 것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롬12장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한다.)

 

완전함과 거룩함을 이룰려면, 구별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가야 한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그것이 구원의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의 성품과 삶이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분을 알아야하고, 닮아가고, 세상 사람과 달라져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향기가 나고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왜, 완전함과 온전함을 이루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명령이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이 이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그들의 그 가증한 행위를 말미암아 그들이 그 땅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가증한 행위(세상 풍속)를 본받으면, 기업을 잃고 망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도이다.

그것은 이방인에게나 그리스도인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엄중한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의 행위를 그대로 본받고 옛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우리도 기업을 잃고 망하고 말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그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8:19-20)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이 세대, 이 세상 풍속)을 따라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하고 만 것은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가장 강하고 잔인한 민족들을 사용해서 그들을 심판하셨다.

우리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세상 때문에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결국은

심판과 멸망을 불러오게 된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들이 멸망할 때의 모습은 계시록에서 세상을 심판하는 모습과 같다.

오늘 우리는 세상과 더불어 사느라고 바빠서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 능력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두려운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의 법도를 우습게 안다.

사랑의 하나님만 알고 심판의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을 모른 사람들은

생애 마지막 날, 세상 마지막 날, 임한 진노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의 남은 자들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이렇게 이사야는 묘사하고 있다.

(사17:6)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경을 제대로 연구하고 실천하며 산 사람들은 이 말씀을 세상 심판의 날의 모습이라고 한다.

구원받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가는 사람이 적다고 하셨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길이 넓어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

 

포도나무에는 두 종류의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잎만 무성한 가지와 열매 맺는 가지라고 하셨다.

(요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거룩하게 완전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잊지 말고, 두려워할 줄 알고, 우리의 마지막 날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밤이 깊고 심판의 날, 낮이 가까워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롬13:11-14).

 

완전함에 이르는 자세에 대해 사도 바울이 말씀한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완전)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업적의 상이 아니라, 완전의 상, 거룩의 상이다)

 

우리의 생애의 끝은, 우리의 죽음은, 언제 올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날은 반드시 오고, 그 다음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 날을, 우리가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즐거운 기다림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우리가 오늘,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옛사람의 성품과 삶을 벗어버리고 거듭나게 해주신 새생명 새사람으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죄가 우리 몸과 마음 가운데 왕노릇하지 않게 하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왕노릇하도록 살기를 힘써야 한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사는 길이 열린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의 옛사람과 죄와 세상과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함을 이루어야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살 길이고 영광과 축복을 앞당기는 길이고 영원히 상급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마지막 날 우리가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죽음 앞에서 평안할 수 있는 길이다.

 

모세의 고난, 요셉의 고난, 다윗의 고난은 완전케 하기 위한 고난이었다.

그들이 완전한 단계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은 영원한 왕권의 축복을 하시고 사용하셨다.

 

히브리서 2장은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고 하셨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히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