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시간의 흐름은 성숙을 낳습니다.

새벽지기1 2017. 10. 3. 10:17


시간의 흐름은 성숙을 낳습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변화는 시간이라는 변수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변화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는데도 변화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뜻입니다. 아이는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라납니다. 그리고 엄마 몸속에 최대한 있을 수 있는 시간인 10개월을 채우면 새로운 성장을 위하여 몸 밖으로 나옵니다. 그 순간부터 변화의 속도는 엄청납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외적인 성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를 맞이합니다. 시간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봄이 오면 싹이 움틀 거립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자신의 몸을 밝히 드러냅니다. 우리처럼 사계절이 있는 나라는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낙엽이 떨어지고, 날씨가 서늘하여 집니다. 그리고 겨울이오면 엄청난 추위가 몰려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몸으로 시간의 흐름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삶에서도 동일합니다. 시간의 흐름은 우리의 신앙에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영적인 성숙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이 자라서 가르치는 신앙으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성숙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긴 시간의 숙성이 필요합니다. 시편 기자가 고난 받음이 내게 유익이라고 한 것은 그의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었음을 진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이 송이 꿀보다도 달다고 한 것 역시 신앙의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성숙은 긴 시간의 흐름 가운데 살며시 찾아오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는데도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봄에 심은 씨앗이 자라지 않으면 씨앗이 병들었거나 죽었을 확률이 많습니다. 물론 늦게 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 부분은 병들었거나 죽었기 때문입니다. 추울 때 춥지 않고, 더울 때 덥지 않으면 지구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정상적인 활동이 주어지지만 문제가 있으면 주춤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삶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간이 흘렀으면 변화와 성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이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고.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죽만 먹는다면 병든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단지 성경 지식의 확장이 아닙니다. 영적인 변화의 시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지면서 자신의 죄에 대한 각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와 성숙은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역사를 이해하는 의식이 넓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가 없으면 성숙이 없고 좁은 시야의 소유자가 됩니다. 즉 좁쌀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적인 생각은 못하고 조작된 지식과 정보에 영혼을 팔려 버리게 됩니다. 특별히 어용 지식의 글과 정치적인 언론에 휘둘립니다. 성숙은 분별력이 생겼음을 말합니다. 고집이 아니라 합리적인 변증과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숙으로의 변화가 없는 사람은 참으로 서글픈 사람입니다. 외적인 모습은 화려해지지만 내적인 모습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사람을 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고 급기야는 자신의 성을 쌓고 살아갑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말과 생각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다양한 사건과 환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성숙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시간의 과정 안에서 주어집니다. 성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삶의 모습이 보름 달 같이 충만하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