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특강

모세 읽기(1) (출 3:1-12)

새벽지기1 2017. 8. 14. 16:21


모세 읽기(1) (출 3:1-12)
-이드로의 사위-

모세의 망명생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3:1). 이 구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출애굽기를 통해서 알고 있는 모세 이야기의 일반적인 내력은 다음과 같다. 모세는 원래 이스라엘 부모에게서 출생했지만 이집트의 이스라엘 말살 정책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유모가 바로 친어머니였기 때문에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되었고,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결국 이집트 왕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마흔 살의 나이에 망명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망명지가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의 광야인 ‘미디안’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그 이야기는 야곱이 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에 가서 라반의 딸들을 만나던 장면과(창 29장) 비슷하다. 야곱과 모세는 똑같이 우물가에서 처녀들을 만났다. 라반의 딸들도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우물가에 왔으며, 이드로의 딸들도 그랬다. 약간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양쪽의 처녀들에게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라반의 딸들은 다른 목동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야곱 덕분으로 자기 양떼들에게 물을 일찍 마실 수 있게 했다. 우물을 덮어놓은 돌을 혼자서 해결할 걸 보면 집 밖으로 돌면서 남자답게 사냥꾼 노릇을 했던 형 에서와 달리 집 안에서 어머니 치마폭만 붙들고 늘어졌던 약골이 아니었을까 하는 야곱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라반의 딸들이 겪는 문제는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었겠지만 이드로의 딸들의 경우는 좀 달랐다. 그녀들은 다른 목동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양떼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순간에 모세가 등장해서 다른 목동들에게 혼찌검을 내주고 이드로의 딸들이 몰고 온 양떼에게 물을 먹였다. 이런 무용담을 전해들은 이드로는 모세를 자기 식객으로 들인 후, 큰딸 십뽀라를 주어서 모세를 사위로 삼았다. 미국의 서부 영화에서 나올만한 스토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못된 남자 목동들에게 시달리던 처녀들이 갑자기 나타난 신사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고, 큰 언니가 그 신사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성서 기자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대목만 간단하게 짚으면서 드라마를 매우 빠르게 진행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여기 모세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어떤 한 위대한 인물의 객관적인 전기를 읽는 게 아니라 저자에 의해서 취사선택된 이야기를 읽는 셈이다.


출애굽기 3장에 이르러서야 모세 이야기는 제 속도로 진행된다. 흡사 예수 이야기에서도 공생애 이전의 이야기들은 공생애를 위한 일종의 에피소드 모음인 것처럼 출 1,2장은 3장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일종의 서론이라 할만하다. 어떻게 보면 예수의 광야 시험 사건과 모세의 이 호렙산 이야기는 이야기 구조로 볼 때 비슷한 위치에 해당된다. 양쪽의 대목이 모두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나서기 전에 거쳐야만 했던 절대적인 힘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예수는 광야에서의 금식 40일 끝에 사탄의 시험을 통과했으며, 모세는 광야에서의 40년 목동 생활 끝에 새로운 신(神) 체험을 했다.
그건 그렇고, 세월이 많이 흘러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모세의 영웅적인 드라마가 시작한다. 그 드라마의 그 첫 문장은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는 진술이다. 모세가 이드로의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미 2장21절 이하에 상세하게 보도되어 있다는 걸 보면 2장과 3장은 서로 다른 전승이 결합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성서 자체가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 최종 편집자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수많은 전승들이 서로 다른 전승층을 형성하면서 발전되고 있었다. 그런 전승들이 최종 편집자에 의해서 논리적으로 재편되는 수도 있고, 간혹 오늘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이 원래의 전승이 그래도 기술되는 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바로 2장에서 모세와 이드로의 관계가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저자가 반복해서 기록했다고 말이다.


어쨌든지 텍스트에 대한 직관력을 갖춘 독자라고 한다면 이 문장을 읽고 이렇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모세는 어쩌자고 미디안 사제의 사위가 되었을까?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성서 기자는 무슨 생각을 했기에 모세가 미디안 사제의 사위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걸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읽는다면 이런 구절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으며, 또한 성서기자도 깊은 의미를 담지 않고 이런 사실을 보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런 대목에서 질문해야만 한다. 첫째, 텍스트는 저자의 손을 떠난 다음에 훨씬 심층적인 세계를 향해서 길을 간다. 이 말은 곧 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계까지 이 텍스트가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성서를 성령의 활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인정한다면 성서해석에서 이런 관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이 어떤 보편적인 해석학의 기준을 놓치게 될 경우에, 즉 극단적인 주관성에 빠지게 될 경우에 텍스트의 왜곡이 벌어질 것이다. 둘째, 역사에서는 이렇게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이 훨씬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때가 많다. 성서가 결국 역사 해석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읽는 우리는 이런 보도를 통해서 성서 전체의 깊이로 들어갈 수 있으며, 사려 깊은 독자라면 그런 영적 통찰력을 갖추어야한다. 생각해 보자. 모세가 미디안 사제인 이드로의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을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목사 아들이 대처승의 사위가 되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은 <진리와 방법>으로 세계적인 해석학적 철학의 대가로 자리한 가다머가 100세 된 해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성적 주간지 ‘슈피겔’은 연초에 이 가다머와의 대담을 실었다. 슈피켈 편집장은 이 노 철학자에게 철학이 무엇인지, 철학의 기본적인 기능이 무엇인지 물렀다. 그러나 가다머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대답했다. 철학은 사람에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특히 중요한 질문을,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사유의 깊이를 제공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도 근본적으로는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하나님, 세상, 인간, 교회, 종말, 생명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거지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옳은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미래를 맡겨야 할 그 절대적인 대상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믿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우리의 모든 존재를 위탁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일단 신뢰감이 가야만 한다. 이런 신뢰감은 그 대상을 이해했을 때만 가능하다. 물론 상대방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사랑의 마음이 솟구쳤다는 젊은 연인들의 감정에서 발견하듯이 하나님을 이해하기 전에 무조건 그를 믿을 수 있다는 말도 가능하긴 하지만, 설령 그런 체험이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자기가 확인하지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이라는 대상을 향한 인식과 이해가 선행되는 게 틀림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 바로 질문이다. 예컨대 이 세상의 피조물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는 신자들을 근본에 대해서 질문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게 하는지, 아니면 그것에 마음을 닫고 살아가게 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 지도자라 할 모세가 미디안 사제의 사위였다는 사실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걸 보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타종교와의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갈등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만약에 그 당시에 이스라엘이 이미 타종교를 적대시하고 있었다면 이런 문장은 일찌감치 삭제되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구약신학이나 종교학의 관점에서 좀 더 과학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윤곽을 잡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우선 구약성서에는 유대교가 다른 종교와 완전히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과연 그런 대립 구도가 처음부터 그렇게 명백했을지 의문스럽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어떤 절대적인 세계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차이로 인해서 종교 사이에 서로 대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각각의 종교에서 지향하고 있는 절대적인 세계라는 것은 어떤 형체로 구체화될 수 있는 게 아니라 훨씬 궁극적이고 신비한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미처 완전하게 포착하지 못한 세계의 차이로 인해서 상대의 종교를 파괴하는 일은 아예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은 이렇게 공격적이고 독단적으로 바뀌게 되었을까? 이건 종교가 국가 이데올로기와 일치되는 과정에서, 국가 종교*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종의 변형, 변질, 변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현상은 콘스탄틴 대제의 밀랑 칙령(313년)을 기점으로 교황과 황제가 호형호제하며 유럽의 권력으로 등장한 이후에 기독교에서도 그래도 벌어졌다.

*최근에 서울 시청 앞에 청소년 5만 명 이상이 모인 가운데 ‘라이즈 업 코리아’라는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정근모 명지대학교 총장이 대회장(?)으로 있는 이 단체는 매년 이런 집회를 연다. 이런 모임을 기독교 신앙으로 모인다는 게 말이 되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기독교 청소년들이 신앙으로 무장해야만 이 한국을 각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자유에 속하겠지만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들을 그런 방식으로 끌어간다는 것은 복음과 국가의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물론 종교가 바른 길을 가기만 하면 그것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그 나라가 좋은 쪽으로 변화되는 건 당연하지만 종교가 그것을 목표로 무슨 운동을 벌일 수는 없다. 예컨대 도덕재무장 운동 같은 것은 시민 단체가 할 일이지 종교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저 교회당 안에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충분한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교회의 역할을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 기도라는 게 바른 기도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기만 한다면 교회로서의 역할을 끝난 것이다. 그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나라를 살리겠다고 ‘라이즈 업 코리아’ 같은 대형 집회를 연다는 것은 신앙 행위가 아니라 완전히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 여기에 바로 교회 지도자들이 분간할 수 있어야 할 매우 미묘한 자리가 있다. 기독교 신앙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그 긴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속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정치 이데올로기나 경제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않는 그 긴장이 필요하다.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보도하고 있는 출애굽 시대와 달리 가나안 정보 시대를 거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국가 종교의 길을 걸어온 이스라엘은 종교와 정치적인 점에서 주변 세계와 극단적인 대치 국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가자지구’ 정착촌 철거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1967년 6일 전쟁 당시에 이집트로부터 점령한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그곳을 포기하고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일단 팔레스타인과의 화해 제스처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자지구에서는 철수하지만 대신 예루살렘의 유대인 거주지역과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 사이에 형무소 담보다 더 높은 담을 쌓고 있는 중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류가 좀 더 확실하게 평화공존을 추구해 나가야 할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만 이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세계 구석구석에 이런 갈등이 때로는 표면화하고, 때로는 잠복해 있다. 이번 뉴올리언즈 홍수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의 흑백 문제는 늘 휴화산처럼 그럴만한 계기가 주어지기만 하면 언제라도 폭발할 태세이다.

호렙산에서


 오늘 본문은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의 사위라는 사실을 아주 떳떳하게 보도할 뿐만 아니라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첨부하고 있다. 이를테면 모세는 이드로의 데릴사위가 된 셈이다. 이집트를 떠날 때 모세의 나이는 사십 세(행 7:23)였으며, 다시 바로 앞에 나타났을 때가 팔십 세(출 7:7)였으니까, 그는 40년 동안 양떼를 쳤다는 말이 된다. 성서는 모세의 40년에 관해서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아주 단조롭게 산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양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고(1b절) 한다. 성서는 왜 모세의 난 40년에 대해서 그렇게 무관심한 것일까? 모세로서는 좀 억울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성서의 글쓰기는 늘 이런 식이다. 성서는 사람의 드라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드라마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모세의 ‘잃어버린 40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무작정 양떼를 친 걸까? 본문만 놓고 볼 때 모세 40년은 그저 허송세월에 불과하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 하며 양을 치던 야곱은 좀 달랐다. 야곱은 ‘재테크’에 뛰어난 탓인지 20년 만에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모세는 무엇을 하다가 지금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양떼를 이끌고 호렙에 까지 온 것일까?
호렙 산은 일명 시내 산*이라고도 불린다. 호렙은 모세가 하나님을 경험한 산으로 불려지고, 시내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은 산으로 불린다. 전자는 일종의 ‘소명’이, 후자는 ‘율법’이 중심이지만, 양자 모두 하나님 경험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지금 우리는 지리학적으로 이 산의 구체적인 장소를 확인할 길이 없고,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진 이야기의 중심 무대로서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 호렙 산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종교적인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장소다. 이 산은 엑서더스의 단초이며, 이스라엘 성문법의 토대이다.

* 산은 사람들에게 신비한 느낌을, 신령한 느낌을 제공한다. 우리 민족의 경우에도 산신령 설화는 많이 등장하는데, 들신령이나 사막신령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물론 우리의 지형이 산악으로 되어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산이 인간에 주는 신비한 체험과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예수의 변용사건이 일어난 곳도 역시 산이었다. 성서에서 산이 어떤 종교적 이미지로 작용하는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오늘 본문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호렙 산과 율법 수여가 일어나는 시내 산만 놓고 본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신앙에서 산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 연구에서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한 때가 된 것 같다. 모세는 이 호렙 산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성서는 모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고 설명한다. 그는 양떼에게 먹일 풀과 물이 광야에 없어서 점점 더 멀리 가다가 우연하게 호렙 산에 이르게 된 것일까? 우리는 성서 본문만 갖고는 그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세하게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아마 하나님이 모세를 그렇게 이끌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모든 게 하나님의 각본에 의해서 진행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실체와 의미를 전혀 모르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그건 믿음이 아니라 광신일 뿐이다. 우리는 성서 텍스트의 심층으로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깊이 들어가도록 노력해야한다.
일단 본문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호렙 산에서 모세는 이상한 현상을 보았다. “떨기에서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것”(2절)이었다. 성서기자는 그 현상을 가리켜서 “야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2절)고 설명한다. 이 현상을 본 모세가 불꽃이 이는 떨기에 가까이 다가가자 야훼께서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셨다고 한다.(4절). 2절에서는 야훼의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더니, 4절에서는 야훼가 직접 말씀하셨다고 진술되어 있다. 천사와 야훼는 같다는 말인지, 아니면 천사는 불꽃이고, 야훼는 말씀이라는 뜻인가? 이 대목에서 신학적인 내용을 한 마디만 언급한다면 이렇다. 이 이야기에는 J기자와 E기자의 진술이 섞여 있다. 약간씩 차이가 나는 전승들이 훗날 어느 편집자에 의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천사와 하나님이 동시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가 불꽃이 이는 떨기나무를 보았다는 사실과 바로 그 자리에서 야훼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위에서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언급한 그쪽을 돌아가자. 모세는 어떻게 해서 이 떨기 불꽃 현상을 보게 되었을까? 우연하게 경험한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기에는 그럴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다. 앞에서 나는 모세가 미디안의 사제 이드로의 사위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말은 곧 지난 40년 동안 모세는 이드로와 함께 살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미디안 종교 의식에도 참가하고, 그 종교의 가르침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미디안 종교는 이스라엘 신앙과 다르기 때문에 모세가 사사건건 장인과 종교적인 다툼을 벌였을까?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신앙을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모세의 입장을 상식적으로 본다면 모세가 이드로와 종교적인 문제로 갈들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서는 그런 갈등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 우리는 이렇게 추정할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이드로에게서 하느님의 거룩한 산 호렙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미디안 종교에서 모세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말이다. 모든 종교는 거룩한 것에 근거를 두기 마련이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말이지만, 예수 믿는 며느리들이 시집에서 드리는 제사 때문에 갈등하는 것에 대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제사**에서도 사실 배울 건 많다.

* 성서를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방식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어떤 논리성과 합리성을 무력화하는 것은 성서를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할 설교자로서는 바른 태도가 아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의 합리성을 뛰어넘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를 우리의 합리성 안에 가두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이성과 합리성을 뛰어넘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에 직면할 때까지의 과정은 철저하게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두 사태 사이에서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곧 설교자이다. 우리의 합리성을 뛰어넘는 하나님과 철저하게 합리성 안에서 사유해야 할 사람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자칫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에만 치우침으로써 우리의 논리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논리에 집착함으로써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신비를 폐기할 수도 있다. 신비와 합리성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설교자의 영성이 아닐까 한다.
** 초기 선교자들이, 주로 로마 가톨릭 선교자들에게서 두드러진 일이지만, 한국 사람들의 제사행위를 무조건 배척한 것은 그렇게 지혜로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순전히 유교적인 것만도 아니고 샤머니즘적인 것만도 아닌, 한국 고유의 종교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는 제사의례에서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사실만은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하나는 제사를 통해서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음을 현실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제사를 통해서 한 마을의 공동체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지만 옛날에는 제사가 있는 집에서는 제사 국밥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런 게 오늘 우리에게 유효하겠는가에 대해서는 무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일반적으로 배척하는 건 우리가 아무리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세의 정신적 정체성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지낸 40년 동안 한편으로는 이집트 문명과 종교를 배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에 관한 의식이 깊어졌으며, 더 나아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디안에서 지낸 40년 동안 미디안 문명과 종교에 관해서 이드로에게서 상당한 정도의 공부가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은 곧 모세가 야훼 하나님 신앙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적 전통도, 그러니까 그는 최소한 세 가지 종교 전통*을 섭렵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성서를 왜곡하는 것일까? 물론 성서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분을 부풀려서 침소봉대하는 건 별로 지혜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근거를 훼손시킬 개연성이 없지 않지만 성서 텍스트의 이면을 포착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성서의 의미를 훨씬 심화하는 길이다. 모세에게 세 가지 종교가, 아니면 최소한 세 가지 문화가 승화함으로써 훨씬 성숙한 야훼 신앙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민족적 영웅이라는 방향으로만, 특히 이스라엘 신앙으로 무장한 야훼의 사람이라는 관점으로만 확신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실체를 놓치는 건지 모른다. 어쨌든지 내가 보기에 그가 호렙 산에 이르게 된 것은 미디안 종교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 우리는 종교의 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일단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원칙적으로 유대교라는 토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신약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원시 기독교 공동체는 유대로부터 독립할 의사가 아예 없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기 위해 미문을 지나다가 지체장애인을 치료한 일이 있었는데, 이 말은 곧 그들이 여전히 유대교의 종교적 습관을 그대로 지켰다는 의미이다. 소위 일곱 집사에 관한 사도행전의 보도는 교회 공동체의 업무를 분담하기 위한 조치로 각색되었지만 실제로는 히브리 파 공동체와 헬라 파 공동체의 분리라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결국 오늘의 기독교가 이 역사 안에 등장하게 된 근거는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럽 지역으로 전파했다는 사실에 있다. 소위 ‘예수 세미나’ 운동에 참여한 학자들은 바울에 의해서 기독교가 헬라화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시 원래의 역사적 예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만약 그런 주장이 극단화하게 되면 결국 기독교의 역사적 뿌리가 단절될 수도 있다. 즉 나사렛 예수를 근거리에서 추종하던 사도들과 예수의 동생들은 아무도 유대교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야기가 좀 복잡하게 전개되었지만, 우리가 기독교의 초기 역사를 통해서 볼 때라도 유대교, 헬라 사상 사이의 좁은 길을 통해서 기독교가 새로운 종교적 정체성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은 원시 기독교에서 끝나고 마는가, 아니면 오늘도 여전히 그런 종교적 지양(Aufhebung)이 일어나야 하는가?  

거룩 경험
도대체 호렙 산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일까?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도움으로 호렙 산의 떨기 불꽃 앞까지 온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5절).
모세가 경험한 이 가시떨기의 불꽃현상은 초자연적인 게 아니라 어떤 일정한 조건이 주어지게 되면 발생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엘모의 불’이라고 한다. 성서 시대는 아직 자연과학이 미개할 때였기 때문에 자연현상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일은 많았다. 사실 지금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물리적 현상들은 적지 않다. 북극 지방의 밤하늘에 나타나는 오로라 같은 현상들은 우주 물리적 현상이긴 하지만 평범한 우리의 인식을 뛰어넘기에 충분하다. 간혹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도 성모 마리아 상이 눈물을 흘렸다거나 신앙심 깊은 소녀가 마리아를 직접 보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여온다.
성서기자는 무슨 이유로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말할까? 불꽃이 일지만 떨기는 타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것일까?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현상인 ‘엘모의 불’을 거룩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일정한 장소만이 아니라 ‘땅’ 전체가 거룩하다고 볼 수 있다. 땅이 거룩하다는 사실은 모든 시인과 화가들에 의해서도 노래되고, 그려졌다. 이미 창세기 기자도 하나님이 창조한 이 땅이 “보기에 좋았다.”(창 1:10)고 했다. 우리의 몸이 땅의 질료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것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땅은 거룩하다는 의미이다. 모세는 이미 미디안 사제인 이드로를 통해서 이 세상이, 생명이 가득한 이 지구의 모든 것이 거룩하다는 가르침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땅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영적으로 깊이 깨닫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경험의 핵심이다.
필자가 오래전에 도로테 죌레와 루이제 쇼트로프가 공동으로 집필한 책 <Die Erde gehört Gott>을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는 제목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 그 책은 1985년 독일 중부 도시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된 개신교 선교대회(Kirchentag)에서 이 두 여 신학자가 끌어간 성서연구 모임의 강의였다. 그들은 여성해방과 생태학의 기초에서 성서 텍스트를 해석했는데, 그 밑바탕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이 거룩하다는 생각이 놓여 있었다. 비록 인간의 죄로 인해서 노아 홍수가 발생했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은 무지개를 통한 약속을 주시면서 이후로 이 땅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 책은 이 땅과 거기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더 이상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피조물로 여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마 한국 기독교인들도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믿고 구원받는다.”든지 ‘예수천당, 불신지옥’ 패러다임에 빠져 있을 게 아니라 이 땅을 향한 새로운 시각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한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작동시킴으로써 생명의 신비를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밤하늘의 은하수, 가을비와 낙엽, 커피 향은 우리의 생명력을 감미롭게 자극한다. 요르크 칭크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면, 저는 땅에 아주 가까이 있게 됩니다. 저는 그분이 밭과 샘물, 나무와 꽃, 태풍과 폭풍, 저녁노을, 빛, 불, 빵과 포도주, 호수의 물고기, 들판의 양떼,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갈릴래아 거리의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분이 하느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시면, 마치 그 나라가 밀처럼 땅에서 자라나는 듯합니다. 그분은 성서 이외에는 거의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분은 하늘과 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깝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하늘과 땅,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똑같은 힘과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모든 설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대가 보이지 않은 것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눈과 귀를 열고 그대 가까이에서, 바로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의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종교를 표방하신 적도 없고, 땅과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땅에서 아무런 영향도 발휘하지 못하는 종교를 주장하신 적도 없습니다. (Jork Zink, Erde, Feuer, Luft und Wasser: Der Gesang der Schöpfung und das Lied des Menschen, Kreuz 3-Verlag, 1986).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시각만 예민하게 열어둘 수 있다면 이 세상이, 곧 이 땅이 얼마나 거룩한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이 곧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지상천국’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땅의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여전히 생명의 궁극적 비밀이 숨겨진 상태에서 우리가 땅과 하늘의 문제를 단정적으로 언급한다는 것은 매우 경솔한 태도이다. 다만 우리는 현재 이 땅을 거룩하게 경험하지 못하는 한 이 땅과 미래의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변증법적 긴장이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유한한 땅의 거룩과 무한한 하나님의 거룩이 어떻게 소통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여기서 핵심이다.
그런데 과연 ‘거룩’이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루돌프 오토는 <Das Heilige>라는 책에서 종교의 핵심이 곧 거룩에 대한 경험, 즉 거룩한 두려움인 ‘누미노제’라고 언급했다. 우리는 우리와 전혀 다른 지평의 세계를 경험할 때 거룩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을 바르트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전적 타자’(totaliter aliter)에 대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존재유비로도 표상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거룩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예컨대 SF영화 한 장면처럼 갑자기 외계인을 만난다거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동굴 안의 종족이 동굴 밖을 경험했을 때 그런 거룩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거룩하면 거룩할 뿐이고, 두려우면 두려울 뿐이지 어떻게 이 두 개념이 하나로 결합할 수 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만약 자는 중에 강도가 들어와서 턱밑에 칼을 들이민다면 그건 단지 두려움일 뿐이다. 그 대상이 자기와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완전히 파괴시킬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룩한 두려움은 자기가 파괴되거나 않는다는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와 만났을 때만 일어나는 인간의 고유한 종교 경험*이다.

*내 둘째 딸의 두 번째 생일에 케이크에 초불을 키고 늘 하던 대로 가족끼리 둘러앉아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불을 입으로 불어서 끄라고 시켰다. 그 불을 본 아이의 눈빛에서 나는 불이라는 현상을 처음 본 고대인의 그런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고대인들이 처음 불을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들은 당연히 불도 침팬지나 여우같은 동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지나가는 길목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동물 말이다. 자신들이 평소에 경험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만났을 때 인간은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아득한 느낌, 어떤 어지러움 같은 것을 경험한다. 이 세상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그 모슨 것들이 신비하기 그지없다. 여기 내 손안에 놓여 있는 연필 한 자루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 시간에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존재’하는가를 우리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이런 존재론의 원천으로부터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을 조금씩 경험하고 인식해나가는 게 아닐는지, 모세의 경험도 이런 구도에 놓여 있는 게 아닐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나님을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에서 인식하고 그 인식을 심화하는 내면적 경험이 바로 기독교의 원천적 영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생각에 종교의 본질이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오토의 지적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텍스트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옳다. 고대인들이 거룩한 곳에서는 신을 벗어야 했듯이 엘모의 불 앞에서 모세는 신을 벗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6절)고 한다. 모세가 얼굴을 가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우리가 그 실체를 파악하기는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표현된 그대로만 생각한다면 흡사 첫날밤에 처음 신랑을 본 새색시가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모세가 자신 앞에 나타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체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모세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존재의 근거를 두고 있는 존재라고, 즉 “나는 나다.”(출3:14)라는 대답을 들은 것처럼 야훼 하나님은 인간과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을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대비시킬 수는 없다. 이 본문에서 핵심은 모세가 자기의 모든 삶의 근거가 해체될 수 있을 만큼 전혀 새로운 사건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 앞에서 그는 신을 벗고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즉 거룩한 두려움이 모세를 사로잡았다는 말이다.

하나님 경험과 역사
모세는 미디안 종교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덕분으로 호렙산까지 왔으며, 여기서 엘모의 불을 통해 거룩한 두려움을 경험했다. 이제 이 장면부터 이드로의 미디안 토착종교와 모세의 야훼 신앙이 갈린다. 이드로는 자기 사위에게 ‘엘모의 불’이 일어나는 호렙 산을 지시하는 데 머물렀지만, 모세는 바로 그 대목에서 한걸음 더 나간다. 그게 무얼까? 모세는 야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는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어라.”(7-10절).
모세의 거룩 경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역사 안으로 승화한다. 이 호렙산 엘모의 불 앞에서는 그는 이집트에서 소수민족으로 학대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크게 깨닫는다. 이것은 곧 그가 야훼 하나님과 역사를 일치시켰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이 역사와 결합되었다. 특히 고통당하는 인간의 역사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하나님의 역사 개입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계속 이어지며, 결정적으로 예수에게서 완성된다. 거룩한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은 이 땅에서 태어난 한 인간과 하나 되신 성육신 사건이 곧 예수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경험과 역사의식을 매우 긴밀하게 연관된 것으로 이해한다. 이미 구약성서는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로 여기고 있으며, 종말론적 인식론에 토대를 둔 신약성서도 역시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를 역사의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다. 이 말은 곧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경험을 어떤 한 사람의 실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역사적 차원에서서 접근한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는 무엇인가?>에 관한 훨씬 근원적인 질문이 충분하게 제기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암시만으로 접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모세의 하나님 경험이 구체적인 역사와 연결되었다는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다.
마지막으로 모세의 하나님 경험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모세와 같은 거룩한 경험은 우리에게도 역시 유효하다. 모세에게 느닷없이 호렙 산 사건이 벌어진 게 아니라 40년 미디안 광야의 삶이 그 밑바탕이었다. 우리의 한 평생의 삶도 그런 과정이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향해서 나가고 있을까? 거룩한 땅, 생명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고 있나? 그런 경험이 구체적인 역사 참여로 실체화하고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역사 참여라는 건 단순히 정치 경제 민주화, 지속가능한 생태보존을 위한 투쟁, 노동해방 같은 사회 문제를 가리킨다기보다는 훨씬 근원적으로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 세상 전체를 가리킨다. 에버하르트 융엘의 저서 ‘세계 비밀로서의 하나님’(Gott als Geheimnis der Welt)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듯이 하나님을 세계 초월자로서만이 아니라 세계 내재자로서 인식할 때, 즉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가 변증법적으로 일치할 때 예수의 부활 사건에서 선취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것이 곧 이드로의 사위인 모세가 미디안 종교를 넘어서 역사로서 계시하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건이다.
(2005년 9월29일, 통합측 목사 모임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