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참된 신앙, 참된 교회 (슥 7:1-14)

새벽지기1 2017. 6. 2. 07:30


익숙한 종교생활에서 벗어나십시오. 진심이 담긴 예배를 드리십시오. 사랑과 공의가 있는 삶을 사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교회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생겨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교회가 안일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는 머무르는 교회가 아닙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도전하고 헌신하는 교회였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교회보다 하나님 나라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생겨나는 문제들

 

개인이나 가정, 국가가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듯이 교회도 이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타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독 안에 갇힌 소금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등잔의 빛이 되어야 하는데 등잔 아래로 숨은 빛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 안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아야합니다.  세 번째 문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인도하심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연하게 걸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생겨나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리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사년하고 아홉 달이 되던 때입니다. 다리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이년이 되던 때에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했고 육 년이 되던 해에 재건 공사가 끝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때는 공사가 반 정도 진행된 시점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벧엘 성읍 사람들의 질문

 

벧엘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여러 해 동안 늘 하던 대로 다섯째 달에 울며 금식해야 합니까?’”(3절). 벧엘 성읍 사람들 모두의 질문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 아닙니다. 아마 벧엘 성읍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할례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가 모였던 것처럼 벧엘 사람들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한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모든 민족이 금식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가 주전 586년 5월 7일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전이 파괴되자 오월에 금식을 했습니다. 완전한 금식은 아니고 음식을 절제하는 금식이었습니다. 이슬람의 라마단과 같은 금식이었습니다. 칠월에도 금식을 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유대사람을 통치하기 위해서 그달랴라는 사람을 총독을 임명했는데 암살당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임명한 총독이 국수주의자에게 암살당한 것을 보고 슬퍼하면서 금식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오월과 칠월에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그들은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는 것을 칠십년 동안이나 지켰습니다.

그런데 벧엘 성읍 사람들이 금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칠십년 동안이나 지켜 온 금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포로에서 귀환했고, 성전 재건도 반 이상 진행되었기 때문에 성전이 재건되면 금식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는 문제제기입니다. 벧엘 성읍 사람들이 한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답변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신앙습관에 진심이 담겨야 

 

하나님은 그들의 질문에 금식을 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말씀을 통해 그들의 영적 상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율법에 명문화된 금식은 대속제일과 일곱째 달  십일에 지키는 금식 외에는 없습니다. 규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지키고 싶으면 지키는 것이고, 지키기 않으려면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고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첫째,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형식적인 종교습관을 지적하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지난 70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슬피 울었는데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 금식한 적이 있느냐?”(5절).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벧엘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금식을 해야 하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금식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습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습관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진심이 없는 신앙습관이라면 그것은 위험합니다. 늘 하던 대로 하는 습관에 진심이 담겨 있어야합니다. 진심이 없으면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

 

진심이 담겨있어야 진정한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월과 칠월에 금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금식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진심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심이 아닌데도 눈물 흘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지적하십니다. 여러분, 늘 드리는 예배지만 날마다 새로운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날마다 새로운 예배가 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드리는 예배에 진심이 담겨져 있을 때 진심이 담긴 기도, 진심이 담긴 봉사도 가능해집니다. 아침마다 진심을 담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아침이 늘 새롭습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합니다. 그렇게 진심을 하나님께 드릴 때 신앙이 새로워집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내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어져 있고 사람에게서 배운 관습대로 나를 두려워할 뿐이다’”(사 29:13).‘입과 입술로는 공경하지만 마음은 멀어져 있다’는 말씀은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말하는 것과 마음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과 마음이 다른 것인데 죄가 원인입니다. 죄는 우리를 분리시키고 자아를 분열시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자아분열에서 생깁니다. 이것이 심하면 정신분열이 됩니다. 입술로는 찬송을 하지만 마음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고,  미소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저주하고 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분열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은 분열된 인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참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진심이 담긴 신앙인이 되십시오. 진심과 솔직함은 다릅니다. 마땅히 그래야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진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진심이 담긴 신앙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회복된다는 것은 진심이 회복되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신앙과 삶이 다른 이중적인 종교습관도 지적하셨습니다.“너희가 먹고 마실 때 그저 너희 자신을 위해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는 습관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채로 살아가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들이 칠십년 동안 금식을  잘 지킨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느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슬람 사람들이 라마단 기간을 보낸 후에 위장병을 많이 앓습니다. 절제 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폭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삶의 능률도 떨어집니다. 이슬람사회에서 능률이 저하되는 시기가 바로 라마단 금식기간입니다. 금식하지 않을 때, 일상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서야 진정한 금식이 됩니다.

 

신앙과 생활이 다른 이중적 삶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하십시오”(고전(10:31). 여러분, 신앙과 생활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살지 마십시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구는 마음대로 써도 됩니까. 아닙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십의 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릴 때 의미가 있습니다. 주일성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교회에 나오면 나머지 요일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까. 아닙니다. 진정한 주일성수는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주일예배는 예배에 오기 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아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디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은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경청과 순종이 없는 습관도 책망하셨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듣고 순종하지 않았으며 등을 돌리고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여호와께서 이전의 예언자들에게 그분의 영을 부어 주셔서 율법과 말씀으로 가르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귀 기울이지 않으려고 마음을 돌같이 굳게 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크게 화를 내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불렀을 때 그들이 듣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들이 부를 때 듣지 않겠다”(11~13절). 하나님은 금식보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금식을 왜 하겠습니까.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전이 무너지고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왜 자신들이 멸망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주님 음성에 귀 기울이기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과거의 재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율법을 만들어 지키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면에 귀기울여야합니다. 등을 돌리고 귀를 막고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 금식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종교적인 노력과 고행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요,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에게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이 금식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말아야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돌아오게 하려는 징벌

 

신앙이 형식적이고 이중적으로 변하면 진정한 신앙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진심 어린 신앙은 없어지고 종교적인 습관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됩니다. 이 상태가 심각하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징벌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세 가지 징벌이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불렀을 때 그들이 듣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들이 부를 때 듣지 않겠다. 내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나라들 가운데로 흩어 버리겠다. 그들이 흩어진 뒤 그 땅은 황폐해져서 아무도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13~14절).  첫 번째 하나님의 징벌은 ‘하나님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수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귀를 막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귀를 막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징벌은 ‘회오리바람으로 흩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명기 28장에 이미 예언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땅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모든 민족들 가운데로 너를 흩으실 것이다. 거기서 너는 다른 신들을, 너나 네 조상들이 알지 못했던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숭배할 것이다.”(신 28:64)


여러분, 흩어짐은 징벌입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인간들을 흩으셨습니다. 참된 교회가 되지 못하면 흩어집니다. 하나 되지 못하면 깨어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명으로 흩어지지 않으면 회오리바람을 불어서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스데반의 핍박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도들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바람과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회오리바람에 의해서 흩어지게 됩니다.

세 번째 징벌은 ‘아름다운 땅이 황폐해진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저주의 땅이 되어버립니다. 땅은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느냐에 따라 그 땅이 축복의 땅이 될 수도, 저주의 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축복의 땅에 살고 있지만 저주 받은 인생을 살면 그 땅도 저주 받은 땅이 됩니다. 여러분이 서있는 땅이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황무지 같은 곳일지라도, 사막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들어가면 광야에 꽃이 피고, 사막에 길이 나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사랑과 공의가 담긴 삶 


그렇다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지 않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신앙은 어떤 모습이고, 참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오늘 본문 9절과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이렇게 말했다. ‘공정한 재판을 하라. 서로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라. 너희가 서로 해치려는 악한 마음을 먹지 말라’”(9~10절).  공의로운 삶과 사랑을 베푸는 삶, 하나님이 성품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참된 신앙이요, 참된 교회입니다. 우리끼리 사랑하는 것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주변에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부와 고아,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탈북민, 이주노동자, 독거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우리가 돌봐야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금식은 열심히 하는데 사랑 나눔이 없고, 금식은 열심히 하는데, 다투고 싸운다면 공의롭지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간절한 사랑과 진실한 공의를 나타내야합니다. 해치려는 악한 마음먹지 말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십시오. 익숙한 종교생활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심이 담긴 예배를 드리기 바랍니다. 사랑과 공의가 담긴 삶을 사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린 신앙으로 참된 교회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