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불성벽이 되어지켜 주실 것입니다. 자녀들의 불성벽이 되어 주시고, 가정의 불성벽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의 불성벽이 되실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기억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과거를 잊으라고 말씀 하셨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실패와 상처에 얽매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신 죄를 잊어버렸지만 우리는 용서받은 죄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더 크고 놀라운 일 계획
현실에 낙망하고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낙심하게 되고 미래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합니다.
사탄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삶이 형통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때에도 어려운 일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을 통해서 더 크고 놀라운 일을 계획하십니다.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한 야곱이 슬퍼하고 있을 때 요셉은 애굽에서 그의 가족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이 죽어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하나님은 룻과 보아스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위협을 피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진정한 왕으로 세울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고통 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면서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성벽이 필요 없는 예루살렘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은 왜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처참하게 부서진 예루살렘 성읍을 바라보면서 의문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지 16년이 되어가자 그들의 열정은 식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진 이유는 아마 예루살렘에 성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성벽이 없는 채로 살았습니다. 고대 도시에서 성벽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적들의 대부분이 성벽입니다. 그만큼 성벽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성벽이 견고한 만큼 성읍은 오래갔습니다. 바벨론의 성벽은 백년 이상 성읍을 지켜주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성벽입니다. 성벽이 있어야 성읍이 안전합니다. 전쟁과 약탈이 빈번했던 고대사회에서 성벽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을 의미했습니다. 성벽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 천사가 그 천사에게 말했다. ‘달려가서 저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예루살렘 안에 사람들과 가축들이 많아져서 예루살렘은 더 이상 성벽으로 둘러쌓을 수 없는 넓은 지역이 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바깥으로는 예루살렘의 불로 된 성벽이 돼 줄 것이며 안으로는 예루살렘의 영광이 되겠다’”(4~5절). 당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말씀입니다. 성벽이 없는 성읍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멸망을 뜻하기 때문에 매우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천사는 예루살렘에 성벽이 필요 없는 두 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안에 사람들과 가축들이 많아져서 성벽을 지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벽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예루살렘이 번성한다는 의미입니다. 천사가 보고 있는 예루살렘은 현재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미래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길래 성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번성한다는 것일까요. 실제 역사에서도 성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루살렘이 번성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사의 말이 틀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천사의 말은 예언이었습니다. 성벽이 없어도 될 만큼 번성한다는 것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과 꿈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고 영적 예루살렘 성읍을 짓는 것이 ‘성벽이 없는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에 성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확장된다는 것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성벽이 없는 성읍은 당시 사람들의 비전과 꿈이 되었습니다. 그 비전과 꿈은 당대에서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자신의 꿈인지 하나님의 꿈인지를 점검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이 시대가 이루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큽니다.
하나님의 꿈이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비전과 꿈은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꿈과 환상을 본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건물을 다시 세우는 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이라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불성벽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
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바깥으로는 예루살렘의 불로 된 성벽이 돼 줄 것이며 안으로는 예루살렘의 영광이 되겠다’”(5절).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재건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친히 예루살렘의 불성벽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로 된 성벽은 넘어갈 수도,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성벽 가까이 가는 순간 불에 타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하나님의 불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에도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낮에는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름기둥으로 저녁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셨습니다. 그 불기둥이 지금은 불성벽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불성벽이 되어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자녀들의 불성벽이 되어 주시고, 가정의 불성벽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의 불성벽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그런데 불성벽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보호자로 삼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성벽을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돈과 지식으로 성벽을 쌓고 그 성벽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많은 무기가 나라를 지켜 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무기가 많다고 나라가 지켜집니까. 아닙니다. 고대 역사를 보십시오. 강대국이던 수많은 나라들이 교만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불성벽이 되어주지 않으면 그 어떤 것으로 쌓은 성벽도 무너집니다. 여러분, 하나님만이 불성벽입니다.
영광이 떠나지 않는 인생
성경은 죄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롬 3:23).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의 문제는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는 더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형벌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 인생이 되어야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분열하고 싸우고 정죄하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서 떠나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개인과 교회, 나라와 민족이 되어야합니다. “‘이제 어서 북쪽 땅에서 도망쳐라.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하늘의 네 방향에서 부는 바람처럼 흩어 버렸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자 도망쳐라! 바벨론 성에 살고 있는 시온아.’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괴롭힌 나라들에게 영광스런 일을 하기 위해 주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를 건드리는 나라는 주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치겠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네 종들에게 모두 빼앗길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6~9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고레스의 칙령이 발표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 자리 잡고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예루살렘은 위험하고 불안한 도시였습니다. 성벽도 없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많은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안전한 땅’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망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오라’는 것과 ‘도망치라’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 상황은 다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벨론만큼 안전한 땅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말씀하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의 눈에 안전해 보이는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성벽은 견고해서 어떤 민족도 침략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웠습니다. 안전하고 좋은 땅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위험한 곳이 있습니다. 반대로 인간이 보기에는 위험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안전한 땅이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적인 눈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롯의 눈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좋은 땅이었지만 그곳은 멸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땅이 좋은 땅입니까. 위험해 보여도 하나님이 부르신 땅이 좋은 땅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만큼 안전한 땅은 없습니다.
하나님 임재의 기쁨
둘째, 하나님이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 있을 때 그분께서 황무하고 짐승의 소리가 들리는 데서 야곱을 발견하셨다. 그분이 야곱을 방어해 주시고 그를 보살펴 주셨다. 여호와께서 그를 그분의 눈동자처럼 지키셨다” (신 32:10). 하나님이 야곱과 야곱의 후손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지키셨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눈동자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십니다. “‘시온의 딸아, 소리쳐 노래하고 기뻐하라. 내가 와서 너희와 함께 살겠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날에 많은 나라들이 여호와께 와서 그들이 그분의 백성이 되며 그분은 너희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셨음을 네가 알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고 그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그분의 것으로 삼으실 것이다.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들아,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라. 그분께서 그 거룩한 곳에서 일어나신다(10~13절).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리쳐 노래하고 기뻐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들은 낙심과 두려움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소리쳐 기뻐하고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이고, 신약은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속까지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 하나님이 살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소리치고 기뻐해야합니다. 인생이 무미건조하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께 내어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동행하실 것입니다.
로버트 멍어는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저서에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300년 이상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로렌스는 수도원에서 교리를 가르치거나 성경을 가르치는 수도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부엌에서 일하는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15년 동안 부엌에서 일하다 무릎이 아파 구두를 고치는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꼭 큰일만 해야 할 필요 없는 없다. 나는 프라이팬의 작은 오믈렛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는다. 그 일이 모두 끝나고 더 할 일이 없으면 나는 바닥에 엎드려 오믈렛을 만드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경배했다. 그리고 일어날 때 나는 어느 왕보다도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하나님이 임재 안에 거하는 것에는 무슨 특별한 기교는 없다. 늘 똑같은 마음으로 단순하게 이것을 연습할 따름이다.”여러분이 계신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그러한 인생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날마다 일하시는 하나님
둘째, 11절을 보면 ‘그날에 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넓은 시각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백성들은 자신들만 바라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어디를 바라보고 계십니까.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예루살렘을 보고 계십니다. 어려운 현실에 놓이면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환상과 꿈을 꾸는 사람은 하나님의 넓은 시각을 바라봐야합니다. 열방에 수많은 민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성벽 없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대의 예루살렘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미래를 바라보고 말씀하셨습니다. 13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들아,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라. 그분께서 그 거룩한 곳에서 일어나신다”(13절). 여기서 육체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육체로만 판단하는 사람은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질문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곳에 앉아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날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에 불성벽이 되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임재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벽이 필요없는 예루살렘을 바라봤던 그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비전과 꿈을 가지고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박정일 meteorjip@nate.com
'좋은 말씀 > 이재훈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력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스가랴 4:1-14) (0) | 2017.05.31 |
---|---|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스가랴 3장 1~10절) (0) | 2017.05.29 |
교만의 뿔을 꺾으시는 하나님 (슥 1:18-21) (0) | 2017.05.24 |
다시 선택하시는 하나님 (슥 1:7-17) (0) | 2017.05.22 |
내게로 돌아오라 (스가랴 1:1-6) (0) | 2017.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