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마가 16장 15-18절에도 있는 이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사랑하시는 그의 제자들에게 권고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작별하나 아주 떠나게 될 때 부탁하는 말은 가장 중요한 일만 부탁하게 됩니다. 더욱이 우리가 아주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꼭 해야 될 말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사랑하시는 모든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의 여러 가지 명령이 많지만 이 명령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그의 가장 높은 지상의 명령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으로 보아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무덤 가운데 장사 지낸 바 되었으며 또 3 일만에 부활하셔서 구원의 대도(大道)를 완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대도는 믿어야 들어올 수 있는데 믿음은 그 복음을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 복음을 들으려고 할 것 같으면 그 복음을 전하는 이가 있어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으로 보아 가장 귀한 지상의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십자군을 향해서 부르짖는, 말하자면 진군의 명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1세기의 신자들은 이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농사하는 이는 농사하면서, 고기 잡는 이는 고기 잡으면서, 장사하는 이는 장사하면서 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어떤 이는 전에 하던 직업을 떠나서 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리했고 요한이 그리했고 야고보가 그러했고 모든 제자들이 그러했고 바나바가 그러했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로 인해 세계가 뒤집히게 되었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세일 강대한 제국인 로마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를 통해서 참된 신자들은 이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울필라와 같은 사람은 문명한 고국을 떠나서 북부 만족 가운데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로마를 떠나서 그 때는 야만족의 하나이던 영국으로 갔던 것입니다. 근대에도 그렇습니다. 리빙스톤이 자기의 모국을 떠나서 먼 암흑 대륙 아프리카로 가서 일생을 바친 것도 이 명령을 순종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 선교 40년을 지낸 것도 결국은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까닭입니다. 명년이 바로 70주년이 되지만 한국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들여놓은 언더우드 박사나 아펜셀라 박사가 자기의 나라를 떠나서 그 대 다른 사람이 별로 알지 못하는 한국으로 들어온 것도 결국 이 명령을 수종하기 위해서 그리 한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의 첫째 사명입니다. 목사의 사명도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장로의 사명도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집사의 사명도 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유년부를 맡는 것도 이 복음을 전파해서 아이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에 대한 책임이 중한 것이 많지만 제일 중한 것은 그 자식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로서의 의무가 많으나 첫째 되는 의무는 친구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성가대원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도 결국은 영혼의 구원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는 자들의 첫째 사명, 세상에 살아있는 최대의 목적은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있습니다. 미국의 북방 어떤 장로교에서 어떤 목사가 처음으로 취임해서 시무 하는데 근 1년 동안 이 목사가 아무리 애쓰고 외칠지라도 그 교회가 너무 냉랭하고 1년 내내 있을지라도 한 사람이라도 새로이 나와서 믿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 목사가 혼자 많이 애쓰고 기도하다가 한 번은 당회가 모여서 이런 말을 하였답니다.『제가 이 교회에 와서 벌써 1년이 되었고 그 동안 제가 아무리 애쓰고 외칠지라도 조금도 우리 교회는 부흥의 빛이 없고 생명의 빛을 보고 구원을 얻는 심령이 하나도 없으니 어떻게 그냥 이 교회에서 목사 노릇을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사면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니까 여러 장로들이 깜짝 놀라면서『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목사님의 설교는 건덕상(建德上) 유익한 설교를 많이 하시고 우리가 은혜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이렇게 다시 말했습니다.『제 설교가 덕을 세운다는 것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 생각은 저만 사면할 것이 아니라 여러 장로님들도 사면하여야 될 줄 압니다. 삼일 기도회 같은 때는 더 적게 나옵니다. 이왕 이렇게 목사 건 장로 건 책임을 못 감당할 바에는 공연히 맡아 있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 사면하고 새 사람들이 들어와서 맡아 보면 이 교회는 부흥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 제일 나이 많은 원로 장로님에게『장로님, 이 교회의 장로가 되신 후 몇 사람이나 인도해서 새로 구원하신 일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그 장로가 머리를 숙이면서 하는 말이『목사님, 잘 기억이 안 납니다.』그 다음 장로도『한 사람도 없습니다.』그 다음 또 물어도 장로 가운데 한 사람도 개인 전도해서 구원한 사람은 하나도 없단 말입니다. 그 때 그 목사가『자 이것 보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말씀은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우리가 교회 장로가 되어서 이 명령을 순복치 않으면 어떻게 장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모든 장로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우리가 먼저 이 명령에 순종하자』오 의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아침 큰 상점의 주인 되는 그 원로 장로가 상점에 나가자마자 이어 자기 아래에 말하자면 총무과장 비슷한 책임을 맡은 사람을 조용히 청해서 조금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10여 년 동안 자기와 같이 일하면서 다른 이야기는 다 하면서도 한 전도 전도한 일이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은 사업에 관한 의논인 줄 알고 들어갔습니다. 그 때 이 장로가 이 청년을 보고하는 말이『나 참 대단히 미안한 말씀 드릴 수밖에 없소』하고『내가 당신과 10여 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모든 것은 다 이야기했으나 당신 영혼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으니 이처럼 장로의 이름을 가지고 부끄러운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이제 깨달아서 제일 중요한 한 것은 우리가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아무 것도 소용없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이렇게 장사하면서 돈 멀면 뭘 합니까? 우리의 영혼을 구원함이 제일 중요한데 예수를 진실히 믿습니까?』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제가 어렸을 때 다녔으나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 장로의 간절한 권고에 못 이겨 먼저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하여 이 때부터 이 교회가 갑자기 새로운 은혜를 입어 온 교회가 큰 부흥의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의 사명입니다.
오한복음 4장 35절을 읽어보면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눈을 들어 밭을 보라. 곡식이 익어 이미 희어졌느니라.』 이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일뿐더러 우리 한국의 실정을 눈을 들어 살핀다고 할 것 같으면 한국의 실정이 얼마나 이 복음을 요구하고 곡식이 이미 희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에 복음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이상합니다. 일본도 그렇지 아니하고 중국도 그렇지 아니하지만 동양의 모든 나라 가운데 특별히 우리 한국은 이상스럽게 옛날부터 내려오는 불교나 유교가 다 퇴폐해저서 말하자면 우리 한국민족의 절대 다수는 무슨 종교가 없고 그야말로 그들의 심령은 비었습니다. 이 빈 심령에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가지 아니하면 어떤 악한 사상, 어떤 악한 무엇이 이것을 점령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빈 심령에 다른 악한 사상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빈 영혼을 점령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 민족은 20세기 초엽이래 이조가 망하고 오랫동안 일본 사람의 압제를 받고 그 다음에 해방은 되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비극이 계속하여 일어나서 6·25 사변의 모든 가슴 아픈 일, 그리고 아직도 38선이 언제 열릴는지 알지 못하고 우리 민족은 이 여러 가지 환난에 시달리고 시달려서 피곤할 때로 피곤해졌으며 많은 사람이 절망과 낙심 중에 있고 많은 사람이 자포자기하는 중에 있습니다. 세계 어느 민족이 복음을 요구하지 아니하련만, 이런 민족에게
이러한 형편이 있을 때에 과연 위안이 필요하고 소망이 필요하고 재생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민족에게 진정한 위안을 주고 영혼의 평화를 주고 새로운 빛나는 소망을 줄 영적 생명은 오직 이 기독교뿐인 것을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특별히 우리 민족을 향해서 부르짖는 주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또 보세요. 세계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생활 수준을 높이고 생활을 잘할까 하는 것이 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민족에 있어서는 생활 문제는 돌볼 새도 업습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죽지 아니하고 생존을 계속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이것이 우리 한국 민족이 당하는 과제올시다.
이런 세계 가운데서 우리의 생존을 계속하려면 두 가지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첫째는 정치적으로 우리 나라를 바로 세우자고 할 것이면 민주주의가 되어야 자유 있는 나라가 되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잘 건설하자면 우리는 현대 과학과 기술을 잘 연구해서 경제 생활을 확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민주주의 나라를 세울 수 있고 과학과 기술을 잘 연구해서 경제 생활을 확립할 수 있는 나라의 배후에 영적 능력이 될 만한 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정신적 토대가 되고 과학과 기술의 정신적 토대가 될 종교는 우리 기독교밖에 없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또 보세요.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나라를 세워서 우리 자손의 백년대계를 잘하자 할 것이면 현재에 당면하는 두 가지 원수와 싸워서 꼭 이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사상적으로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고 파괴시키는 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겨야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길 만한 사상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들으니까 군부에서 종군목사 제도를 의논할 때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종교는 자유인데 왜 종군목사는 기독교 목사만 두고 다른 종교는 두지 않습니까? 가령 불교의 중도 군대에 보내서 종교 목사로 하면 좋지 않습니까?』하는 말을 누가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거기 있던 어떤 군인이 말하기를『그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우리가 싸우는 사람은 무신논자인 공산당과 싸우는데 불교는 종교는 종교이지만 무신론의 종교입니다. 그러니 불교 승이 지금 무신론과 싸우는 한국 군인에게 와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하였다고 합니다.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창조의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 외에 어디 있습니까?
또 보세요. 우리가 꼭 싸워서 이길 원수는 도덕적 형편은 지금 말할 수 없이 타락되어 많은 세계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지 말할 수 없고, 아무리 외국이 도와준다 할지라도 우리가 결국 도덕적으로 갱생하지 못하면 우리 나라를 바로 세출 수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 타락한 자리에서 민족적, 도덕적 중생을 가져올 종교가 오늘 어디 있습니까? 불교에서 찾을 수 있어요? 유교에서 찾을 수 있어요? 오직 회개와 중생의 종교인 기독교만이 이 사명을 수행할 구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여러분, 우리 한국의 실정을 볼 때에 꼭 전도를 해야겠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눈을 들어서 백두산에서부터 한라산까지 삼천리 강산의 신령한 밭을 보세요! 그 심령이 빈 점을 보십시오. 이 민중이 말할 수 없이 도탄 가운데서 위안과 갱생의 소망을 요구하는 점에서 보거나, 우리 민족이 자존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문제를 보거나, 우리가 우리 나라를 설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겨 정복할 수 있는 이 점에서 보거나 우리 민족이 제일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셋째로, 마태 16장 3을 읽으면 주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너희는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내일은 날이 개이겠다고 말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날이 흐리게 되면 오늘날이 궂겠다고 말하지 않느냐? 시대의 징조를 살펴보더라고 하나님의 경륜이 어떤 방면으로 흘러가는가? 하나님의 손이 인간 역사를 어느 곳으로 가리키는가?』이미 말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에 크게 이렇게 복음의 물은 열어 놓았습니다. 이상스럽게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회가 이 땅에 설립되자마자 일본 사람에게 핍박받아서 많은 순교자가 났습니다.
그 다음에 해방이 되었지만 그 보다도 포악한 사람이 북한에 들어오고 남한에도 일시로 점령해서 많은 교역자가 피를 흘리고 순교를 했고 많은 장로와 많은 집사와 많은 청년들이 피를 흘려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삼았습니다. 터툴리안의 마로가 같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입니다. 이 순교자의 피가 종자가 되어서 반드시 일어날 때가 있는 줄 압니다.
이런 모든 점을 종합해 보건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전도의 문을 여는 동안에 우리 한국 기독교인이 남달리 많은 시련을 받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두 가지 경륜이 분명히 보입니다. 첫째는 우리 한국 민족으로 하여금 다 그리스도께 돌아와서 우리 나라가 기독교의 나라가 되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경륜인 줄 압니다. 둘째로는 어째서 하나님께서 이런 경륜을 가지고 계시느냐? 그것은 우리 민족을 다 주님께 돌아오게 해서 기독교의 나라를 이 동아에 분명하게 든든히 세운 다음에는 이 기독교 나라를 통해서 온 동아 십억 민중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사명을 우리 배달민족에게 맡기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인 줄 압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명이요,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교회의 역사적 사명인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에스겔 3장 17절에서 19절까지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안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너희 믿는 사람들을 내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대하여 파수꾼으로 세웠다. 내가 분명히 온 세상 사람에게 하는 말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말해서 그들을 깨우쳐서 그들을 회개시키지 아니하고 그냥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되 가운데 죽어서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면 그 사람들이 죽을뿐더러 그들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파수꾼의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마음이 떨립니다. 우리가 우리 친구든지 더욱이 우리 가정이든지 우리 민족에게 향하여 이제 하나님께서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분명히 주셨는데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말하여 주지 아니해서 그 친구가 이 다음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면 그 사람만 멸망을 받을뿐더러 마땅히 그 사람에게 그것을 경고해 줄 파수꾼의 책임이 있는 나도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에 있어서나 우리 상점에 나가서나 친구 사이에서나 제일 중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파수꾼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분명히 우리 아들과 우리 딸들에게, 우리 친구들에게, 우리 이웃 사람에게, 우리 민족 전체에게 분명히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어제 혼자서 가만히 묵상하며 제 과거를 돌아볼 때에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이 책임을 등한히 한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자복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책임을 게을리 한 자식이올시다.『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상명령이올시다. (1954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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