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
지금 읽은 말씀에는 먼저 장로들에게 권면한 말씀이 있고 그 다음에는 일반 교우들에게 권면할 말씀 세 마디가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고 권면합니다. 그 까닭은 주님께서 우리를 권고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셋째로는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 까닭은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권면은 그야말로 보옥(寶玉)과 같이 귀해서 한 마디 한마디가 우리 심령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 마디 말씀을 일일이 다 생각할 시간은 없는 고로 셋째로 권면한 말씀『근신하라, 너희 대적 마귀가 오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는 이 말씀을 잠깐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느 상가에 청함을 받아 갔던 일이 있습니다. 가서 보니 지나본 이는 누구나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 방에 들어가 보면 신앙의 기분이 도무지 없습니다. 그러나 갔던 길이니까 잠깐 예배를 보고 나와서 그 가정의 사정을 잘 아는 이를 통해서 세상 떠난 이의 과거를 잠깐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이도 역시 이북에서 38선을 넘어온 분인데 옛날 그이가 청년 시대에는 교회에 잘 출석하고 교회의 직분까지 맡아서 교회를 섬기던 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시험에 빠져서 그만 신앙이 타락된 이후에 다시 회복할 길을 찾지 못하고 북한과 남한에서 이리저리 그야말로 속된 세상에서만 헤매다가 그만 연세가 높아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저는 그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님께로 다시 돌아와서 그 심령이 구원을 얻었기를 바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 심령이 다시 돌아와서 구원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의 일생을 생각할 때에 이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섭섭하고 애석한 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이가 그냥 든든히 믿음에 서서 주의 일을 계속하고 교회를 그냥 받들고 꾸준히 나왔던들 이 죄악 많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냈을 것이고 주의 일도 많이 하고 그 일생이 뜻 있는 일생이었겠는데 그만 그의 일생은 아무 하는 것 없이 속된 생활을 계속하다가 그만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감을 따라서 속절없이 쓰려졌으며 그 일생은 아무 의의 없이 낭비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가슴이 쓰린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친구 가운데 혹은 친척 가운데도 이와 같은 분들을 많이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왜 희망이 빛나는, 아름답게 시작한 청년들이 일생을 이렇게 낭비하고 말게 됩니까? 시험에 빠져서 유혹에 드는 까닭에 마귀의 꾐을 받아서 시험에 빠지는 까닭입니다. 여러분, 무서운 것은 시험입니다. 시험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간절히 부탁하셨습니다.『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바울 선생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특별히 깨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까닭이올시다. 누구든지 시험에 들고 싶어서 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와도 마귀에게 삼킨 바 되었습니다. 아담도 마귀에게 삼킨 바 되었습니다. 유다도 마귀에게 삼킨 바 되었습니다. 여러분, 마귀에게 삼킨바 되지 맙시다.
그러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신문을 보니, 영등포에서 어떤 사람이 어렴풋이 아는 사람의 집에 가서 마침 그 집 식구들이 감기 들린 것을 틈타서 자기가 감기 잘 낫는 좋은 약이 있는데 써보시라고 하면서 식구들에게 주어서 약을 먹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감기 약이 아니고 잠자는 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약을 먹고 잠을 잘 자는 동안에 그 사람이 그 집안에 있는 것을 홀딱 다 도둑질해 갔다고 합니다. 왜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으라고 합니까? 깨어 있지 아니하고 잠자다가는 물건보다 더 귀한 우리의 영혼을 도둑 맞습니다. 혼을 도둑맞은 사람 많이 있습니다. 금보다 더 귀한 심령을 도둑맞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죽은 송장만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깨어 있어야 합니까? 시험이라는 것은 예고하고 오는 법이 없습니다. 갑자기 마귀가 덮칩니다. 여러분, 에서가 시험에 든 것을 잠깐 생각해 보세요, 에서는 호협(豪俠)한 남자올시다. 사냥을 좋아하고 말타기를 좋아합니다. 사냥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게 될 때에 몸은 피곤하게 되었습니다. 시장하지 않겠습니까? 아, 안뜰에 척 들어오다 보니까 동생이 솥에다 붉은 죽을 쑤고 있는데 냄새가 무럭무럭 나고 참 먹음직하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장한 김에 하는 말이『얘, 거 죽 좀 다고』하였습니다. 그 때 야곱이 뭐라고 했습니까? 으레 그럴 줄 알고 있다가『아, 죽을 올리긴 올리겠습니다. 한데 형님, 그 장자 권을 제게 파십시오』하였습니다.『아, 뭐 시장해서 죽게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어서 죽이나 좀 가져오너라』하고서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렸습니다.
자! 여러분, 그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귀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보면 그렇게 되니까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어찌해서 장자의 명분을 잃었습니까? 시험에 들었습니다. 왜 시험에 들었습니까? 갑자기 시험에 들었습니다. 시장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일, 그것은 마귀가 우리 믿는 사람을 삼키는 방법이올시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하느냐 하면, 언제든지 악한 마귀는 사람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유혹이라고 하는 것,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속아서 물리게 됩니다. 새가 속아서 창에 갇힙니다. 물고기가 속아서 찌를 뭅니다. 사람이 속아서 시험에 빠집니다. 하와도 뱀에게 속았습니다. 아담도 속았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복 받을 줄 알았습니다. 시험에 드는 사람이 누구나 시험에 빠져서 지기 일신이 망할 줄 알고 시험에 빠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대로 하면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을 것 같아서 시험에 듭니다. 속습니다.
미국 서 남방 애리조나 주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데「사망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그 위를 비행기로 지나가면서 감개가 깊었습니다. 이 곳이 어떻게 사망의 골짜기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근 100년 전에 기차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을 때 캘리포니아 주에 금이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동방에 사는 사람이 금을 캐려 마차를 타고 그 남방 길을 걸어서 그 골짜기로 들어왔던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 골짜기는 전연 사막 지대입니다. 별로 비가 오지 않으므로 물이 없어서 그만 그 골짜기를 지나가다가 목말라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물이 없는 줄 알면서도 왜 그 길로 갑니까? 그 곳이 이상한 것은 그 골짜기에는 신기루란 현상이 많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아마 신기루란 말은 다 들었을 줄 압니다. 아주 건조한 지대에 있는 것인데, 지도 보지 못했다가 지나간 여름에 아주 건조한 텍사스 지방에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았는데 자동차 앞으로 난 길에는 새파란 물 같은 것이 보이고 멀리 집이 있으며 호수가 그 집의 절반쯤 올라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저기 가면 좋은 물이 있으니까 물 있는 그 곳을 따라가자 하고는 달려가면 물은 없고 그 다음에도 없고, 그리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 죽었습니다.
그와 같이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속입니다. 우리가 속아서 시험에 빠집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몇 가지로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조심할 것을 생각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은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심히 약하다고 하는 사실이올시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 그 말이올시다. 시험에는 강한 사람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담대히 예수 님 앞에서『모든 사람이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마는 저는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마는, 정작 시험 장소에 갔을 때에는 베드로는 그만 약해졌습니다. 세 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죄에 대하여, 시험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약할뿐더러 또한 사람은 그 육신 가운데 약한 부분이 있음과 같이,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이는 특별히 폐(肺)가 약하고 어떤 이는 심장이 약하고 어떤 이는 위가 약한 것과 같이, 우리의 성격 가운데도 어떤 사람은 특별히 이 방면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저 방면에 약해서 누구든지 약점 한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에서 같은 사람은 특별히 먹는데 약점이 있는가 봅니다. 노아 같은 사람은 특별히 술 같은 것을 마시는 데 약점이 있었는가 봅니다. 솔로몬 같은 사람은 특히 정욕 방면에 약점이 있었는가 봅니다. 이와 같이 사람 사람마다 특별히 자기의 약점이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사람마다 지옥에 내려가는 사닥다리가 각각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각 어떤 점에서는 조금 잘못하면 지옥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사다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방면에 특별히 약점이 있는가 스스로 살피어 특별히 조심해서 유혹에 들지 않도록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플라톤의 제자 한 사람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바다에 배를 띄워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한 번은 배를 타고 바다에 가서 놀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나서 배가 다 깨어져 죽을 뻔하고 겨우 살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집이 바로 바닷가에 있었는데 바닷가로 향하는 창을 다 막고 남 벽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어떤 친구가 와서 묻는 말이 좋은 바다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는 이 창들을 왜 이렇게 다 막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 때 이 사람이 하는 말이『내가 지난번 배를 타고 나갔다가 꼭 죽을 뻔하고 살아왔는데 내가 그 다음부터는 다시 배타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창을 그냥 두었다가 어떤 따뜻한 봄날 바다 가 잔잔한 때에 이 창을 내다보면 내 마음속에 다시 이 바다로 나갈 생각이 나고 배를 탈 생각이 나게 되면 그만 다시 나갔다가 그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아예 내가 바다 가 보이는 이 창을 박은 것입니다.』
사람마다 유혹의 창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시험의 창이 있습니다. 이 창을 내다보면 우리가 언제 어떤 시험에 빠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약점, 시험의 창을 미리 알아서 아예 그 방면을 단단히 막아버리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갈 때에 언제든지 나를 유혹으로 인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예 미리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유혹으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습니까? 그 친구를 멀리 하세요, 우리는 유혹으로 인도하는 책자가 있습니까? 그 책을 멀리 하세요,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하는 사업이 있습니까? 그 사업을 멀리 하세요,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하는 오락이 있습니까? 그 오락을 멀리 하세요,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하는 집이 있습니까? 그 집을 멀리 하세요, 무엇이든지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하는 것은 멀리 해야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수도사가 산에 가서 조용히 도만 닦다가 세상 구경이 너무 간절해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내려와서는 어디로 갔는고 하니 세상 사람이 오락으로 즐기는 극장에 연극 구경을 하려 가서 앉았다고 합니다. 연극 장에 가만히 들어가 앉아서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재미를 가만히 볼 때에 수도사의 마음 가운데『야! 거 세상 재미가 괜찮구나』하고 얼른 시험이 마음 가운데 들어온단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수도사인지라 스스로 마귀에게 이러한 문답을 했다고 합니다.『오! 이놈, 너 마귀야, 네가 아무리 사람을 잘 시험 하기로니 이렇게 여러 십 년 수도한 나 같은 사람을 시험하느냐?』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대답하는 말이『당신이 그렇게 여러 십 년 동안 수도했다고 할 것이면 어찌해서 내 영토 속에 들어왔습니까?』연극 장은 흔히 마귀의 영토입니다. 마귀의 영토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동무가 마귀의 영토가 되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귀의 영토를 가까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낚시질을 해 본 사람은 다 압니다. 낚시를 던지면 낚시 미끼 주위로 맹맹 도는 물고기는 아무래도 위험합니다. 멋 하려고 낚시 가까이, 미끼 가까이 맹맹 돌 필요가 있습니까? 마귀의 영토를 멀리 하세요,
그러나 어떤 때에 아무리 이런 곳을 멀리하려고 하지마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런 곳에라도 있을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이것이 이렇게 위험한 것을 미리 깨달아서 그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서 조심해야 합니다. 집에 있는 것보다 객지에 나가서 객지 생활을 할 때는 좀 더 시험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보다 군대에 나가 군인이 되어서 군대 생활을 할 때는 그 때야말로 더 유혹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 생활보다 독신 생활할 때는 유혹이 더 많은 줄 알아야 합니다. 요사이 38선으로 말미암아 독신 생활을 하는 남자도 많고 부득이 독신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여자도 많습니다. 가정 생활할 때보다 독신생활을 부득이해서 하게 될 때에는 얼마나 두 유혹과 시험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서 미리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분주한 때보다 한가할 때에 더 시험이 많습니다. 믿는 사람의 사회에서 살 때보다 믿지 아니하는 사회에 부득이 살수밖에 없을 때에, 가령 공무원으로 관청 같은 데 있을 때에 유혹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고 버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를 시험으로 인도할 수 있는 악한 모양은 그 모양이라고 버리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피해 갈 때에 돌아보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잘 따라가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한 번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악한 일은 한 번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지 못한 술잔을 한 번이라도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불의 한 돈은 한 푼이라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여러 가지로 조심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때는 갑자기 시험을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저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 님의 하신 대로 따라가십시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 계실 때에『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니 베드로가 곧 대답하는 말이『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자, 이어 하시는 말씀이『시몬 바요나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시한 말씀이다. 나도 네 이름을 베드로라 한다. 내가 이 신앙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예수께서는『내가 오래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선생님, 그걸 수가 있습니까? 그것을 멀리 해 주세요』하고 말할 때에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했습니까?『사단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는구나』방금 베드로라고 하는 이름을 준 제자라도 그 마음 가운데는 사단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고로『사단아, 물러가라』하시며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배격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네 눈이 범죄 하거든 네 눈을 뽑아 버리라. 외눈으로 천당에 가는 것이 두 눈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나으리라』했습니다.『한 손이 너를 범죄로 인도하면 제 손을 찍어 버리라, 한 손으로 천당에 가는 것이 두 손 다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조심할지라도 언제 갑자기 우리를 시험할지 모르는데, 그 때에는 우리는 단호한 태도로『사단아, 물러가라』하고 전격 전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이 약한 사람은 백병(百病)이 항상 침노합니다. 이렇게 물론 조심해야 되겠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을 항상 튼튼히 가져서 작은 시험이 감히 침노를 못하도록 우리의 신앙 생활을 건전히 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일 것입니다. 첫째는 온전히 내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내 구주로 받아서 중생하고 성신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둘째로 우리가 규율적 신앙 생활을 해서 우리 신앙 생활의 훈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이 새해의 셋째 주일이올시다.
구리는 금년 1년의『인생의 행로』를 걸어갈 때에 어떠한 시험과 유혹을 만날는지 모릅니다. 이 새해의 셋째 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이 말씀을 마음 가운데 기억하십시다.『근신하라, 깨어라.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려 다니는데 너희들은 믿음을 굳게 해서 저를 대적하라』『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깨어 기도하라!』 (1954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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