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윤선박사

거룩한 삶 위한 결심과 실행

새벽지기1 2016. 9. 22. 21:16


“순결 위해 무엇이든 감수할 마음 가지길” 

 

무엇을 하려고 식사를 합니까? 무엇을 하려고 수고로이 공부합니까? 무엇을 하려고 사업을 합니까?

이 모든 우리의 움직임은 순결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먹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의 인격이 순결해져야 하겠습니다.

혹은 내가 굶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 인격이 순결해져야 하겠습니다.

사업을 함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겠고 연구를 함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순결하게 설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나아가며

과연 하나님과 나 사이의 교통을 목표해서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이 목표를 바로 깨닫고 인식하는 사람은 고생을 해도 달게 받습니다.

 

메리 여왕(Mary I, 1542-1587)이 기독신자들을 많이 잡아 가두었을 때에 그 신자들은 성결을 목표하고 고생한 것입니다. 순교자 래티머(Hugh Latimer, 1485-1555) 같은 사람은 옥중에 있으면서 기도를 그렇게 힘썼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려고 엎드러진 다음에는 힘이 다 빠져서 일어날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이 일으켜 줘야만 일어날 수 있을 만큼 고생을 한 사람입니다.

 

그때에 옥중에 있던 모든 사람이 무엇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까?

그들은 주님 앞에서 바로 서려고, 주님 앞에서 깨끗하게 되려고, 그야말로 주님 한 분을 모시는 것이 천하를 얻는 것보다 나음을 알고 주님과 나 사이에 순결한 연락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을 한 것입니다.

 

순결을 찾기 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해서 잘못된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는 그 동기를 알아줄 수는 있습니다.

은둔 수사 안토니(Antonius, 251-356) 같은 사람은 기둥 위에 올라가서 두 번만 내려왔다 하는데,

그 방법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기둥 위에서 살았다고 하니 그렇게 순결을 사랑하고 성결을 추구한 것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되고자 하는 순결주의를 고집해야 합니다.

욥이 말한 것과 같이 ‘내 기도는 깨끗하니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살아보기 위해서 무슨 고생이든지 감수할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위축되고 퇴보하고 낙심하는 식의 생활은 우리 기독자들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거룩이 행복보다 낫다”(Holiness is better than happiness!).

 

이 세상 사람들은 평안히 살겠다, 육신을 좀 즐겁게 하겠다, 육적으로 순조롭게 잘 살아 보겠다 하는 그 행복만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대로 사는 기독자들은 행복(happiness)이 아니라 거룩(holiness)이 우선입니다.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울기도 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수척하고 파리해지기도 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어려움도 당합니다.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어디든지 가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못할 일이 없다고 결심하고 실행함으로써 나아가는 것이 기독자란 말입니다.

 

출처 / “개혁을 하려면 큰 사람이 되라”,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