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기도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수 있어”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기도하며 여쭙기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였습니까.
1. 하나님의 뜻을 믿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요 자기 요구대로 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자아를 포기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는 자기의 평안과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를 중심으로 살 때에는 끊임없는 고난을 당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일이 안 되어도 그 환경에서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2. 의를 따라 갚아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천국의 구원을 입혀 주실 만한 의가 우리에게 있나요?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뿐입니다. 그것을 받는 방편은 믿음뿐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증거는 그리스도의 의를 사모하되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사모하는 것입니다(마5:6).
3. 남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의인들의 구원을 위한 것도 사실이지만, 소돔 고모라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라고 한 말씀(24절)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남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은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기도를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삼상12:23). 그런 기도가 쉽게 되지 않지만 힘쓰면 가능합니다.
모든 좋은 일들은 힘쓰지 않고 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좋은 일이든지 힘쓰면 처음에는 잘 안 되던 것도 후에는 순조롭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힘을 써서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신 법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를 “쳐 복종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9:27).
4. 대면하여 말하는 기도였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기도를 읽어보면, 두 사람이 서로 대면하여 담화하는 기도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청원하면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고, 하나님이 대답하시면 아브라함이 또 다시 청원하였습니다. 기도가 이렇게 된 것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사이에 교통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죄악입니다. 이런 사상과 행동은 우상 숭배나 음행과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우리는 생사의 문제를 걸고 주님을 믿는 만큼, 이런 우상 숭배와 음행을 결사적으로 배척해야 합니다.
5. 자기를 티끌과 같이 보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티끌”과 같이 보았습니다. 티끌은 땅에 붙어 있는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자기를 땅에 붙은 티끌과 같이 낮추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도록 만드는 것도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원수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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