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학습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교육은 가르치는 교사가 중심인 반면, 학습은 배우는 학생이 중심이다. 교육은 학생이 가르침의 대상인 반면, 학습은 학생이 배움의 주체다. 교육은 배움이 피동적이고 수용적인데 반해, 학습은 배움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다. 이처럼 교육과 학습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물론 교육이 없는 배움이란 불가능하다. 교육은 배움의 기본이며 기초이기 때문에 모든 배움에는 반드시 교육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배움이 완성되지 않는다. 말을 강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목이 마르지 않은 말에게 억지로 강물을 먹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람도 강제로 교육할 수는 있어도 강제로 배우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사람은 단순한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교육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학습하는 존재다. 자기 스스로 자기 앞에 놓인 세상과 삶을 학습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진정 인간이 된다. 그런 면에서 교육은 학습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다리 놓기 작업이어야 한다. 학습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주도적인 학습으로 나아가는 통로일 때 비로소 교육은 의미가 있다. 진정한 배움은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습을 통해 완성되니까 말이다.
옳다. 모든 교육은 학습하게 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일평생 줄기차게 인간됨이 무엇인지를 묻게 하고, 삶의 복잡성과 신비를 궁구하게 하고, 그 학습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교육은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하게 하는데 목표를 두기보다는 좋은 성적을 얻고, 인류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과 높은 자리를 얻게 하는데 맞춰져 있다. 학습하는 삶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취를 하는데 온통 쏠려 있다.
교회의 신앙교육도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교회의 신앙교육은 자기주도적인 성경 읽기를 할 수 있도록, 성경을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도록, 일상에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자기 호흡을 하며 자기 길을 걸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지식을 넘어선 진실, 생활을 넘어선 삶, 성공을 넘어선 구원을 배울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어야 한다. 머리로 배울 뿐 아니라 몸으로 배우게 해야 하며, 이 배움으로 삶을 밀고 나가게 해야 한다. 세속의 체계에 익숙해진 삶의 양식을 쉼 없이 갱신해나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은 성경 지식을 가르치고 믿음을 강화하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예배를 비롯해서 각종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전도학교, 간증, 세미나 등을 통해 같은 내용을 강박적으로 반복해왔다. 심지어 교회의 일꾼을 양성하는 방편이나 교회를 성장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사실이다. 교회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은 넘쳤지만 그리스도인을 온전케 하는 학습은 부재했다. 삶의 현실에서 만나는 갖가지 문제들, 현실을 넘어서는 궁극의 질문들을 놓고 스스로 고민하고 질문하며 길을 찾아가도록 눈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비평하며 세상과 다른 양식의 삶을 공부(학습)하도록 일깨우지는 못했다. 심지어 눈을 열어주고 일깨우기는커녕 학습을 위험시하며 경계하기까지 했다. 학습의 핵심인 질문을 믿음의 원수인 것처럼 금기시하면서 이미 확정된 답만을 반복적으로 강요해왔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말씀의 깊이로 들어가지 못하고 피상적인 신앙의 굴레를 맴돌고 있는 것도 교육만 넘쳤지 학습은 부재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감히 피동적인 교육에서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하는 교회로의 전환을 꿈꾼다. 쉼 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며 토론하는 교회, 세상의 체계를 읽어내는 독서와 세상의 체계에 휘둘리지 않는 생활양식을 함께 연습하는 교회, 성경을 통해 세상과 역사와 삶을 읽어가는 교회, 성도들이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주체인 교회, 고상한 지식이 아니라 거짓에 속지 않는 삶을 배우는 교회, 진리의 영과 동행하며 진리를 궁구하는 교회, 삶이 곧 배움이고 배움이 곧 삶인 교회로의 전환을 꿈꾼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교육 받는 것이고 학습하는 것이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믿고 꿈꾼다. 한국교회가 피동적인 교육공동체를 넘어 자기주도적인 학습공동체로 멋지게 전환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이 교육받는 것을 넘어 학습하는 자들로 우뚝 서게 되기를.
하나님의 영은 진리의 영이심에도 불구하고 대답의 영이 아니라 물음의 영이니까. 물음을 통해 학습 의욕을 북돋우며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성을 일깨우는 영이니까. 교육받는 것에 자족하지 않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하게 하는 영이니까. 그리고 이 영이 교회 안에 함께 하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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