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돌판에 새겨서 주신 것이다.
새 언약은 우리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피로 세우신 것이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 새 언약이 무엇인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옛 언약과 다르게 새 언약을 세울 것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다.
히브리서 8장을 보면 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히 8:7-10)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첫 언약 옛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둘째 것, 새 언약을 요구할 일이 없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새 언약이라 함은,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라고 한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옛 언약과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옛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를 않았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는 그들을 돌보지 아니 하셨다.
날이 이르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새 언약을 맺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들과 맺을 새 언약은 이러하다.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된다고 하신다.
어떻게 하나님의 법 말씀을 우리 생각에 마음에 두고 기록할 수 있나요?
그것을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이 고후 3:3 말씀이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옛 언약과 새 언약이 분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옛 언약은 먹으로 쓴 것이고 돌판에 쓴 것이었다.
먹으로 썼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하고
돌판에 썼다는 것은 옛 언약을 처음 주실 때 돌판에 하나님이 친히 써주신 것을 말한다.
돌판에 하나님이 친히 써 주셨음에도, 우리의 머리에다 아무리 먹으로 쓰더라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지킬 수 없었다.
유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아무리 율법을 머리에 돌판에 새기고 또 새겼어도
그들은 지키지 않았고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옭아메는데 썼고,
자기들의 탐욕과 방탕을, 위선과 죄악을 처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할
새 언약을 맺겠다고 하신 것이다.
뭘로 새기느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마음판에 새기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기록하셔서 생각나게 하시고 이를 생명으로 살 수 있게 해주신다. 그런데 구약의 예언에서는 이 새 언약을 어떻게 세우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새 언약은 주님의 피로 세우신다는 것을 비로소 말씀해 주시고 알게 하셨다.
새 언약은 무엇으로 세운다구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세우신다.
주님이 흘리신 피로 우리 이스라엘과 맺는 것이 새 언약이다.
주님은 우리를 그분의 피로 구원하시고 그 피로 맺은 새 언약의 일꾼되기를 원하신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1. 새 언약의 일꾼은 주님의 피로 세우는 직분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없다면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도 없고,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도 없다.
복음의 핵심은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주님의 십자가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다.(고전 2:2).
우리 새 언약의 일꾼들은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보다는 부와 성장과 축복만을 알기로 작정한 것 같다.
오늘날, 십자가 없는 ‘형통의 신학’이 교회 강단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십자가 없는, 자존감을 만족시키는 ‘심리학적 신학’이 설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 류의 책들을 유명 목사들이 추천서를 쓰고, 그것들이 기독교의 베스트 셀러를 장식하고 있다.
축복과 형통, 자아만족을 위한 복음 아닌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대형교회와 교단, 급속성장한 교회가 성공하고 축복받은 교회로 높임을 받고
작은 교회들은 그 본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주님이 허락하신 십자가는 질려고 하지 않는, 성장위주 축복위주의 복음은
바울의 말씀대로 ‘저주 받을 다른 복음’이다.
(갈 1:7-1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을 본을 따라, 그분의 자취를 따르려고 하는
새 언약의 일꾼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말았다.
우리 주님은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베들레헴 마구깐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30년동안 목수의 생활을 하시면서 십자가의 길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끝내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그 예수를 하나님은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본을 보이시고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 위해 우리도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베들레헴 말구유의 고난, 나사렛 목수의 고난을 회피하는 일꾼은 새 언약의 일꾼이 될 수 없다.
십자가 없는, 예수님의 피가 없는, 설교와 교회는 우상의 종교일 뿐
더 이상 주님이 당신의 피로 세우신 교회와 강단이 아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세워지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시기 바란다.
그분의 고난의 본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을 따라가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시기 바란다.
그러노라면 하나님이 친히 높이 세우시는 그 영광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2. 새 언약의 일꾼은 하나님의 영으로 세우는 직분이다.
새 언약의 일꾼은 율법 조문으로 세우신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세우심을 사도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세우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세의 율법 옛 언약은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몽학선생의 역할을 감당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오늘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옛 언약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주님이 떠나가심으로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충만한 사람마다 하나님의 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어 새언약의 일꾼이 되었다.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고, 온갖 희생과 시련을 감당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는 신년수양회에 가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충만함을 입고 돌아왔다.
우리 주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주시는 분이다.
구하고 강청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불로 묘사되는 성령의 세례를 항상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불은 열과 빛과 힘이 있다. 성령의 불도 마찬가지다.
성령은 우리에게 뜨거움과 열정과 능력을 주신다. 따뜻함가 온화함도 주신다.
로이드 존스는 말한다.
“어떤 불도 꺼지기 쉬운 법이다. 가끔 그 불을 북돋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열정은 식어버릴 것이다. 풀부질을 하고 부지깽이로 재를 제거하여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라. 뜨거움이 사라지고 능력이 점점 적어져 가고 있는가? 불길을 돋우라. 깨어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활동하면 할수록 성령께서는 더욱 충만하게 임재하실 것이며, 자신을 분기시키면 시킬수록 성령께서는 더욱 여러분을 분기시킬 것이다. 이것이 영적생활의 철칙이다.”
항상 그 무엇보다 성령을 구하고 의지하고 인도함을 받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시기 바란다.
성령을 소멸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자.
3 새 언약의 일꾼은 정죄의 직분이 아니라 의의 직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사용하여 사람들을 겁주고 죽이는 것이 정죄의 직분자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렇게 했다.
율법을 의지하여 자기들의 종교적 의로움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죄인으로 정죄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사사건건 반대했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박았다.
지금도 교회 안에 유대 대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삼아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겁주고 위협하여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고 자기들의 영광을 드높이고 있다.
요즘은 겁주고 위협하는 대신 사랑과 위로로 격려하며 스스로를 만족케 함으로
그들의 영적 감각을 둔화시켜서 자기들의 탐욕과 영광을 높이고 있다.
사탄의 술책은 얼마나 광명의 천사와 같은지 분별하지 못하면 넘어가고 만다.
지금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의로움을 내세우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은 항상 죄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하는 제도권의 사람들이다.
살리는 영이 없으면 율법과 자기 의를 내세우며 사람들을 죽인다.
살리는 영이 있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피로,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는 복음을 가지고
주님이 하시는 것처럼 죄인들을 사랑하고 살리고 구원에 이르도록 헌신한다.
율법조문으로 죽이는 정죄의 직분자가 아니라
영으로 살리는 의의 직분자가 되시기 바란다.
4. 새 언약의 일꾼은 영광의 직분이다.
십자가 끝에 영광이 있다. 광야 고난 끝에 가나안이 있다.
베들레헴 마굿감의 고난, 나사렛 목수시절의 고난, 십자가를 지는 고난 끝에
부활의 영광, 승천과 존귀의 영광이 있다.
새 언약의 일꾼들을 높이 세우심으로, 모든 무릎을 꿇게 하고, 모든 입으로 시인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날이 온다.
주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노라면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되고 성숙하게 되고
그 끝에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날이 온다.
이 또한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는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한다.
‘오직 성경’ 하다가 유대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같은 정죄의 일꾼이 되지 않아야 한다.
‘오직 형통, 축복’하다가 사두개인같은 십자가의 원수의 일꾼이 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성령’ 하다가 미혹의 영에, 적그리스도의 영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성령인 줄 알고 하는 성령운동자들 가운데 가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일꾼들은 사도와 선지자들과 청교도들이다.
그들처럼 우리도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에, 균형있게 사로잡혀
그리스도의 의로 피로 은혜로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좋은 말씀 > 강대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을 아끼라 (엡 5:8-17) (0) | 2016.07.15 |
---|---|
새 포도주, 새 부대 (마 9:14-17) (0) | 2016.07.13 |
상속자의 영광 (롬 8:16-18) (0) | 2016.07.08 |
복 주어 창성하게 (사 51:1-8) (0) | 2016.07.06 |
복음의 능력 (딤후 1:7-14) (0) | 2016.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