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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종교 다원주의와 가톨릭교회

새벽지기1 2016. 6. 30. 12:10

종교 다원주의와 가톨릭교회

 

 

1. 글머리

 

최근, 신학적 토의에 뜨거운 논쟁거리로 대두된 것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문제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는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는가? 등의 문제가 조직 신학자, 종교철학자, 종교현상학자, 선교학자,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제시된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의 기원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까지 소급된다. 이스라엘 종교와 다른 종교들 혹은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들의 관계는 가나안 정착 후 하나의 문제로 등장했다. 그 뒤 특히 교부시대에 들어서면서 타종교와의 논쟁이 활발해지고 변증가들에 의해 기독교와 그리스 및 로마의 고전문화의 관계 문제로 여러모로 해명되었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기독교만이 참 종교요 절대 종교라가 믿는 기독교 절대주의(christian absolutism)의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 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가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는 기독교의 자기 이해를 위한 중요한 주제가 된 동시에, 다원주의는 기독교인에게 큰 도전과 위협이 되었다. 기독교처럼 자신을 절대적으로 유일한 종교 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라고 주장하는 종교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 문제에 대해 가장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연구와 저술이 가톨릭 신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5)를 분수령으로 하여 전통적인 기독교 절대주의로부터 절대주의와 다원주의의 중간 길이라 할 수 있는 포괄주의(inclusivism)로 입장을 전환했다. 가톨릭교회의 관점은 교회 중심주의로부터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그리고 다시 신 중심주의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여러 종교가 만나는 지점이므로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성은 민감한 문제인 동시에 목회와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실제적인 문제이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다보면 “모든 종교는 다 마찬가지 아니냐. 어느 것이나 하나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사람을 흔히 만나게 된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대의 종교다원주의가 왜 일어났는가를 밝히고 이에 대한 응답을 유형 별로 분류하고자 한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입장과 현대적인 입장을 비교하여 제시하려고 한다.

 

 

Ⅱ. 현대 종교다원주의의 발행 배경

 

에덴동산에서 인류가 추방된 이후, 종교다원화의 문제는 세계 도처에서 제기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구약시대의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들의 관계 문제, 그리고 교부시대의 기독교와 고전문화의 관계 문제가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독교는 특히 중세 이후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기독교 절대주의의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렇다면 현대에 들어와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 문제가 관심과 논의의 대상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고 전통적인 기독교 절대주의에 대한 강한 도전과 반대가 일어나게 된 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인가?

 

스미쓰(Wilfred Cantwell Smith)에 따르면, 종교적 다원주의 문제는 교회가 다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었던 선교지 최 일선의 선교사들과 비교 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 되었다.1 기독교는 313년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칙령에 의해 종교 자유를 공인받게 되고 그 후 데오도시우스 황제 치하(379~395)에서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가 됨에 따라 로마제국과 기독교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로마제국은 기독교 왕국이 되었으며, 제국의 안정은 교회의 안정과 직결되고, 제국의 적은 동시에 교회의 적이 되었다. 이에 근거한 18, 19세기의 기독교 선교 정책은 서구의 식민주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하는 식민주의적 선교 정책제국주의적 선교정책이었다. 서구의 군대가 동양의 나라들을 점령하면, 선교사가 뒤따라 들어가 기독교로 그 지역의 종교를 점령하는 정책이었다.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전통적인 선교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에는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전파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식민지 정책이 종식되고 서구의 식민지들이 독립을 획득하게 되자, 정복식의 선교정책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54년 인도 정부는 개종을 주목적으로 활동하는 선교사들은 철수하도록 명령했으며 그 뒤 선교사들은 중국, 앙골라, 아랍 세계 등에서 동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선교 상황이 이론과 실제 양면 모두에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다른 종교와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종교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선교지 일선의 일부 선교사들에 의해 일어나게 되었다.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는 공존의 논리를 전제한 것이었다.

 

한편, 과학의 발전이 종교적 다원주의의 태동을 촉진했다. 16세기 이후 유럽에 발견과 탐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콜룸부스, 마젤란 등의 탐험으로 기독교 세계 밖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거기에 기독교와 서로 다른 종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역사, 인류학, 과학 연구가들이 인류의 기록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세계의 다른 곳에도 종교의 유형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동서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권의 사람들과 빈번하게 접촉하게 되고 그들의 종교에 관한 문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결과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문제가 긴급하게 일어났다.

 

특히 비교종교학이 발전함에 따라 비교 종교학자와 종교사 연구가들을 통해 다른 종교가 기독교와 동일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일어나게 되었다. 19세기 종교사학파의 대표자 트뢸치(Ernest Troeltsch, 1865~1923)가 그 좋은 예이다. 그는 기독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의 상대주의를 주장했다. 트뢸치에 따르면,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며 제각기 진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기독교가 기독교인에게 훌륭한 종교인 것처럼, 힌두교가 힌두교 인에게는 훌륭한 종교이다.

 

이같이, 최 일선의 일부 선교사와 비교 종교학자들이 제기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는 지금까지 배타적인 선교 정책을 고수해 온 기독교인들에게 당혹스러운 문제인 동시에 신학자와 종교 철학자들이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어 왔으며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되었다.

 

 

Ⅲ. 종교 신학의 유형

 

다른 종교를 대하는 기독교의 입장은 학자에 따라, 또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필자는 현대 신학자들이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관계를 어떤 유형으로 구별하고 있는지 최근에 출판된 저서들에 근거하여 밝히려고 한다.

 

1980년대 들어와 기독교와 타 종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많은 저서들이 출판되었으며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종교 신학(Theology of religion)이란 용어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저서를 출판하여 종교 신학의 유형을 논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존 힉(John Hick), 레이스(Alan Race), 린드벡(George A. Lindback), 카워드(Harold Coward), 니터(Paul F. knitter), 디 코스타(Gavin D'Costa)등이 있다.

 

존 힉은 현재 미국 크레어몬트(Claremont)대학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종교철학자이다. 그는 모든 종교는 제각기 다른 신을 섬기는가, 아니면 동일한 신을 섬기는가, 또는 여호와, 알라, 라마 등은 별개의 신인가 아니면 동일한 존재에 대한 다른 이름인가 하는 문제들을 다루면서 모든 종교는 동일한 신을 섬기는 것으로 여호와, 알라 등은 동일한 신의 별명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다원주의을 주장했다.

 

힉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헤브레드웨이트(Brain Heblethwaite)와 공동으로 편집한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Christianity and Other Religions)' (1980)에 따르면,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는 세 가지로 대별된다.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 그리고 양자의 중간 길이 그것이다. 기독교 절대주의는 하나님이 유일하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바르트(Karl Barth)와 같은 전통적인 신학자들이 이를 대변한다.

 

반면 트뢸치와 힉이 대변하는 종교적 다원주의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자기 계시의 증거가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그들의 경험 역시 신적인 것을 만난 여러 다른 경험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틸리히(Paul Tillich)와 스미쓰(Wilfred Cantwell Smith)는 기독교 절대주의 보다는 종교적 다원주의에 가까운 인물로 분류되고 있다. 한편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 양극 사이에 위치하는 입장이 있다. 가톨릭 신학자들인 라너(Karl Rahner)의 “익명의 크리스천”(anonymous christian)"이나 파니카(Raymond Panikkar)의 “미지의 그리스도(unknown christ in Hinduism)”개념이 이를 대변한다.

 

영국교회 신학자인 레이스는 '기독교인과 종교적 다원주의 : 기독교 종교 신학의 유형들(Christians and Religious Pluralism: Patterns in the Christian Theology of Religions)' (1982)에서 종교 신학을 세 가지 유형즉 배타주의포괄주의 및 다원주의로 분류했다. 배타주의(exclusivism)는 사도행전 4장 12절과 요한복음 14장 6절에 근거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만이 유일하고 참된 진리이며, 구원은 교회에만 있다는 주장이다.

 

전통적인 가톨릭교회, 바르트, 부룬너(Emil Brunner), 크래머(Hendrick Kraemer)가 이를 대변한다. 포괄주의(inclusivisim)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신학에 근거한 것으로 “다른 종교에 있는 모든 진리는 본래 기독교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을 수 있지만 구원에 이를 정도로 충분하지 못하므로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교부시대의 순교자 저스틴(Justin), 제2바티칸 공의회 문서, 라너 등이 이 입장에 속한다.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의 근본에는 하나의 신적인 문제가 있으며, 종교 사이의 차이를 단지 이 실재에 대한 형식의 차이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레이스는 틸리히, 스미쓰, 힉, 트뢸치, 토인비 등이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린드벡 역시 '교리의 본질 : 자유주의 이후 시대에 있어서 종교와 신학(The Nature of Doctrine :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 (1984)에서 종교신학에 대한 접근방법으로 세가지를 제시했다. 명제적 존재론적 방법, 경험적 표현주의적 방법, 문화―언어적 방법이 그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진리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배타주의에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종교의 공통 근원인 신적 실재에 대한 표현의 유효성에 의해 종교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면서도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포괄주의에 해당된다. 마지막 방법은 종교를 실재를 해석하며 경험을 표현하고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다른 표현 방식으로 간주함으로써 종교 간의 차이를 실재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로 취급한다. 이는 곧 다원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캐나다 연합교회 신학자 카워드는 '다원주의 : 세계 종교들에 대한 도전(Pluralism: Chllenge to World Religions)' (1985)에서 최근의 종교 신학 이론으로 신 중심적 방법,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 및 대화의 방법 세 가지를 제시했다.

 

신 중심적 방법은 그리스도보다는 하나님에 일차적인 초점을 두는 접근 방법이다. 따라서 하나의 공통적 실재를 인정하는 반면, 예수 중심적인 배타적 태도를 피함으로써 유대교, 이슬람교 및 힌두교와 같은 신 중심적인 다른 종교와의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곧 다원주의에 해당되는 것으로, 카워드는 동방 정교회의 성령중심 신학, 틸리히, 힉, 스미쓰 등을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했다.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한 성육신으로 주장하는 기독론에 근거한다.

 

이것은 예수의 종국성과 보편성을 견지하며 다른 종교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배타적인 방식과 그것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포괄적 방식으로 세분된다. 로잔대회를 통해 발표된 복음주의 신학이 전자를, 라너와 콥(John Cobb), 판넨버그(Wolfhart Pannenberg) 등이 후자를 대표한다. 대화의 방법은 모든 종교는 각각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주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다른 종교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보다 깊은 영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학적 접근 방법이다. 대표자로는 사마르타(Stanley Samartha), 파니카 등이 있다.

 

현재 미국 신시내티의 사비에르대학 교수인 가톨릭 신학자 니터는 '오직 예수 이름만으로?( No Other Name?)' (1985)에서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를 네가지 모델로 제시했다. 보수적 복음주의 모델, 개신교 주류의 모델, 가톨릭의 모델 및 신 중심적 모델이 그것으로 이것은 교회 전통에 따른 분류 방식이다.

 

보수적 복음주의 모델은 참된 종교는 하나이며 나머지 종교는 오류라고 보는 개신교 보수파의 입장이다. 바르트가 이 모델의 제창자이며 “프랑크푸르트선언(Frankfurt Declaration)" 과 로잔대회 선언문이 이를 대변한다. 프랑크푸르트선언은 튀빙겐대학교의 선교신학자인 바이엘하우스(Peter Beyerhaus)가 기초한 것으로 1970년 3월 4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에서 채택되었다. 기독교를 이해하고 다른 종교들을 평가하는 제1차적인 참조의 틀은 오직 성서라는 것, 구원은 단 한 번 영원히 인류를 위해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십자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오직 신앙에의 참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비기독교 종교들과 세계관들도 기독교 신앙과 유사한 구원의 길이라는 주장은 거짓된 교훈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이 선언의 요지이다.2 한편 1974년 7월 16~25일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복음화 국제대회는 프랑크푸르트선언의 강조점인 성서의 절대적 권위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을 재확인했다.

 

개신교 주류의 모델은 계시의 보편성은 인정하지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개신교 자유파의 입장이다. 이것은 일반 계시와 특수 계시의 개념을 원용한 것이다.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것은 긍정하지만, 다른 종교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은 부정한다. 알트하우스, 브룬너, 틸리히, 판넨버그, 브라텐 등이 이를 대변한다.

 

가톨릭 모델은 구원의 길은 많으나 규범은 하나라는 입장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가 보편적이라는 전제에 기초하여 모든 종교를 구원의 길로서 수용하는 반면, 규범과 종국성은 기독교에 돌려지고 있다. 대표자는 라너이다. 니터는 가톨릭 모델이 개신교 주류의 모델로 수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가톨릭의 입장에 대해서 다음 장에서 상술하려고 한다.

 

신 중심적 모델은 하나의 중심에 이르는 많은 길들이 있다고 보는 다원주의의 입장이다.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종국성이라는 “걸림돌”을 피하려는 시도이다. 힉, 파니카, 사마르타, 니터 자신이 이를 대변한다.

 

인도 출신의 가톨릭 신학자 디 코스타는 '신학과 종교적 다원주의 : 다른 종교들의 도전(Theology and Religious Pluralim : the challenge of Other Religions )' (1986)에서 기독교인이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가지는 반응을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존 힉으로 대표되는 다원주의, 크래머로 대표되는 배타주의 및 라너로 대표되는 포괄주의가 그것이다.

 

이상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응을 최근에 출판된 저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정리해 본다면,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 또는 배타주의와 다원주의를 양극으로 하여 이 양자를 절충하고자 하는 포괄주의로 대별된다. 절대주의가 다른 종교의 모든 주장을 거부하고 그것을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면, 포괄주의는 다른 종교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부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며 다원주의는 거부와 용납의 변증법적 결합을 통하여 다른 종교의 주장을 인정하고 그것과 공존하려는 것이다.

 

대화의 모델은 다원주의의 변형으로 이해된다. 교회 중심주의가 배타주의를 대변한다면,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포괄주의를, 그리고 신중심주의는 다원주의를 대변한다. 전통적인 가톨릭교회와 복음주의적인 개신교가 배타주의의 입장에 있다면, 현대 가톨릭교회는 포괄주의에, 그리고 동방 정교회와 일부 자유주의적 혹은 급직전 개신교회는 다원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바르트, 부룬너, 크래머, 바이엘하우스, 린드셀(Harold Lindsell), 칼 헨리(Carl F. H. Henry)등이 배타주의에 속한다면, 라너, 콥, 판넨버그, 한스 큉 등은 포괄주의에, 그리고 스미쓰, 힉, 트뢸치, 토인비, 니터, 사마르타 등은 다원주의에 속한다. 한편 틸리히, 파니카 등은 학자에 따라 포괄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고 다원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Ⅳ. 가톨릭교회와 타종교

 

다른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현대 가톨릭교회의 특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분수령으로 하여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인 교회 중심주의와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를 포기하고 타종교들과 교회의 관계성을 주장하는 포괄주의로 입장을 변경했다. 뿐만 아니라 라너, 큉, 파니카, 니터 등 많은 가톨릭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입장과 현대적인 입장을 비교함으로써 가톨릭교회가 자연 계시 개념에 근거하여 교회 중심주의로부터 그리스도 혹은 신중심주의로, 기독교 절대주의로부터 종교적 다원주의 또는 포괄주의로 이동하고 있음을 밝히려고 한다.

 

1. 전통적인 입장

 

교부시대, 특히 변증가들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다른 문화 및 종교와의 관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발히 논의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저스틴은 기독교 신앙과 고전 문화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가 되기 이전까지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다양한 태도를 취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적 입장이 있었는가 하면, 고전 문화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포괄주의적 입장도 3있었다.

 

2세기의 키프리안은 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해석했다. 노아의 시대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대홍수 때 구원은 노아의 방주 안에만 있었다. 방주 밖에는 구원이 없었다. 그러므로 교회 안,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논리이다. 4세기의 어거스틴 역시 교회를 그리스도의 영역과 신비스런 몸으로 해석함으로써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이것이 서방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이 되었다.

 

한편, 동방 교회에 속하는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테오필루스, 아테나고라스 등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종국성을 고수하는 동시에 참된 계시와 구원의 가능성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로고스 개념에 근거하여 성서적인 구원사에서의 특별 계시와 다른 종교들에서의 일반 계시를 연결시키려 했다. 예를 들어, 저스틴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로고스를 따라서, 그리고 로고스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누구든지 로고스를 따라 사는 한 기독교인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로고스의 씨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진리의 단편적인 면에 도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성으로 산 이교도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 이전의 기독교인들이었다. “합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무신론자라고 불리웠을지라도 다 그리스도인들이다. 헬라인들 중 소크라테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그러하였고, 야만인들 중에는 아브라함, 엘리야등이 그러하였다.”3 이와 같이, 저스틴은 이교철학에 어느 정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했으며 철학자들의 지고한 학설은 성경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헬라철학과 기독교의 조화를 시도한 저스틴의 입장을 수용하여 더욱 발전시킨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이다. 그는 율법이 유대인에게 한 역할을 동일하게 철학이 헬라인에게 했다고 주장했다. 즉 율법이 유대인을 교육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 같이, 철학은 헬라인을 교육하여 복음에 이르게 했다.4

 

이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에 대한 신념에 근거한 것이며, 이것은 473년 알즈(Arles)공의회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리스도, 즉 우리의 주요 구세주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저주하고 “그리스도는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교회의 입장은 중세시대에 이르면서 철저한 배타주의로 입장이 정리되었다. 1215년 라테란(Lateran)공의회는 키프리안의 신조를 강화하여 “교회 밖에는 전혀 구원이 없다”고 선언했으며, 1302년 교황 보니파스(Boniface)8세는 교회 밖에는 구원도 죄의 용서도 없다는 것과 교회에 복종하는 것이 구원에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천명했다. 또한 1442년 플로렌스(Fflorence)공의회는 이를 다시 확인하여 “자선을 베풀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피흘렸다 하더라도, 가톨릭교회 울타리 안통일성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교회는 배타주의적인 입장과 함께 포괄주의적 요소도 지니고 있었으나 중세교회로 넘어오면서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가 가톨릭교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현대적인 입장

 

가톨릭교회는 트렌트(Trent)공의회(1545~1563)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종래의 극단적인 배타적 입장이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교회의 필연성이 균형을 유지하는 신조를 채택했다. “만약 이교도들이 도덕적 양심을 따라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면 그들은 묵시적으로 교회에 들어오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서 구원의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은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교회를 은혜의 유일한 통로로 보는 배타적 이해에서 포괄적인 이해에로, 그리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신념에서 교회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신념에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를 포기하는 분기점을 이룬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다. 이 공의회의 몇몇 선언은 다른 종교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특히 “비기독교적 종교들과 교회의 관계성에 대한 선언”은 다섯 항목, 즉 서론, 힌두교와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및 보편적 형제애를 손상시키는 분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선언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보편성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만들고 그들에게 거주하도록 온 땅을 주셨으므로 모든 민족은 공통적인 기원을 가진 단일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분명한 선하심과 구원의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확장된다.” 또한 가톨릭교회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 안에 있는 참되고 거룩한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의 교훈이 모든 사람의 빛이 되는 진리를 반영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종교 안에서 발견되는 영적, 도덕적 요소들을 인정하고 보존, 발전시키라고 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으면서도, 하나님을 진실로 찾고 하나님의 은혜로써 자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애쓰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5

 

제2 바티칸 선언은 모든 종교가 구원의 길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으면서도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신도를 구원에 포함시키려 함으로써 전통적인 교회중심주의로부터 포괄주의적인 입장에로 방향을 전환했다.

 

현대 가톨릭 신학자들은 바티칸선언과 보편계시 개념을 기초로 하여 종교다원주의에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응답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해석과 방법론은 학자들에 따라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라너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포괄주의를, 큉은 구원의 일반적인 방법과 특수한 방법을 주장하는 포괄주의를, 파니카는 종교 간의 대화를 중심한 다원주의를 그리고 니터는 신중심주의적인 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 중 라너, 파니카, 니터를 중심으로 현대 가톨릭 신학의 동향을 살피고자 한다.

 

라너는 바티칸 선언 출현에 여러모로 기여한 신학자인 동시에 종교 신학의 개척자이다.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한다는 것과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에 근거한다. 특히 1961년 4월 28일 바바리아에서 행한 강연 “기독교와 비기독교 종교들”에서 라너는 4개의 명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기독교는 유일한 절대 종교라는 것과 다른 종교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초자연적 은총의 요소를 지닌 합법적인 종교라는 신념을 동시에 수용하기 위한 대안으로 “익명의 크리스천(anonymous Christian)" 개념을 도입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다른 신앙인은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인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자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 밖에 있으며 역사적 예수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과 똑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을 수락한 사람을 말한다.6

 

한편 라너는 익명의 크리스천 개념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종교의 타당성을 명확히 제한한다. 다른 종교 안에 구원의 은혜가 있으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과 다른 종교의 타당성은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복음과 접하게 되면 그 효력은 상실된다.

 

라너의 견해는 다른 종교에 대한 중요한 태도 변화를 의미한다.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기독교 배타주의를 포기한 것이다. 그의 입장은 한마디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가능하지만 그리스도 밖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인 개념을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라너의 견해는 대부분 가톨릭 신학자들의 종교신학에 기초가 되었다.

 

파니카는 가톨릭 사제로서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동시에 힌두교 학자이다. 스페인의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 신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가정적인 배경과 이 두 문화와 종교 전통 사이에서의 성장으로 인해 세계 종교의 정황 속에 기독교의 주장을 설정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대화의 방법을 통해 하나 이상의 종교에 종교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했다.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면 정상 자체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철저한 다원주의자란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는 1960년대 초 이후 세계 종교들 사이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범 세계적 일치 운동(ecumenical ecumenism)" 을 주도했다. 이것은 다양성을 유지하는 통일성을 추구했다.

 

파니카는 그의 처녀작 '힌두교의 미지의 그리스도(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 (1964)에서 기독교와 힌두교의 만남을 논의하면서 이론적이거나 교리적인 면보다는 실존적인 면에서의 만남을 강조했다. 파니카에 따르면 양자가 만나는 지점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에게 속한다. 그리고 기독교와 힌두교가 그리스도에 속한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인이 숨겨진 그리고 미지의 그러나 힌두교에서 나타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파니카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의 모델로 “대화적인 대화”(dialogical dialogue)"를 제시했다. 이것은 다원주의를 근거로 한 대화이다.8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화한다.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주체로 간주하며 실존적인 차원에서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에 진정한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대화는 파니카 자신의 기독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예수를 구분한다. 보편적인 그리스도(universal Christ)와 특수적인 예수(particular Jesus)개념이 그것이다. 그리스도는 예수 이외에도 크리슈나이스바라부처 등에서 현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의 구세주들은 기능적인 면에서 보편적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9 그러므로 그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특정 종교가 우월하다는 것을 부정했다.

 

니터는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종교 신학의 유형을 제시한 후 가장 유망한 것이 신 중심적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그 자신이 이 입장에 서 있다. 이것은 하나의 중심에 이르는 많은 길들이 있다는 다원주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교회 중심주의와 그리스도 중심주의로부터 신중심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이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보편적이며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이다. 그리스도를 유일한 규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의 계시와 구원을 밝힌 보편타당한 구원자로 간주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배타적 주장을 복음의 핵심이 아닌, 그 시대와 문화의 종교적 언어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했다.

 

 

Ⅴ. 마무리

 

이상에서 필자는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이 어떻게 표명되고 있는지를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가톨릭교회는 제2바티칸 공의회를 분수령으로 다른 종교에 대해 가장 개방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입장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가톨릭교회의 종교 신학 흐름은 교회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을 거쳐 신중심주의로, 또는 배타주의로부터 포괄주의를 거쳐 다원주의로 변천하고 있다. 고대에는 동방교회를 중심한 포괄주의와 서방교회를 중심한 배타주의가 혼재하는 등 비교적 다양한 입장이 제시되었으나 중세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배타주의와 교회 중심주의가 교회를 지배했다. 그러나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배타주의가 포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많은 가톨릭 신학자들은 신 중심적 다원주의를 전개하고 있다.

 

둘째,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은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양극 사이에 위치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많지만 규범은 하나라는 포괄주의이다.10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 교회가 수용하지 않았던 져스틴과 클레멘트 등의 포괄주의로 다시 복귀한 것이다.

 

셋째, 이것은 자연신학과 인간 본성의 선을 주장하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교회 밖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한다는 신념을 다른 종교에 대한 통찰과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지성적 토대로 삼고 있다.

 

넷째,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다른 종교권에 사는 무수한 사람들이 역사적이며 지리적인 우연으로 인해 구원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배제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의 반영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기독교 편에서의 중대한 태도 변화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한다면,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성경적이어야 한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기독교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는 성경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다면 선택의 폭은 좁다. 예수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종교적 다원주의는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며 따라서 원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가톨릭교회의 포괄주의는 양심대로 산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든지, 익명의 크리스천, 미지의 그리스도 개념, 그리스도와 예수의 분리 등의 개념을 받아들임으로써 원칙으로 부터 반쯤 벗어난 것으로 이해된다. 양심이 구원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양심이 보편적이냐, 상대적이냐 하는 또 다른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피레네 산맥의 이쪽과 저쪽의 양심이 다르다는 주장이 가능하지 않는가? 극단적인 예로 식인종의 양심과 기독교인의 양심을 비교할 수 있다. 식인종은 사람 잡아먹어도 양심에 문제될 게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관습적으로 행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해도 이미 살인한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반면 극단적인 배타주의는 인류의 대다수 사람의 영적 고향이 되는 다른 세계 종교들의 존재와 타종교 생활을 전적으로 무시하기를 요구하는 난점을 지닌다. 따라서 필자는 그리스도의 유일회성을 확산하는 동시에 비기독교권의 구원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온건한 절대주의가 성서적이고 복음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판단하실 것이다.

 

 

[주(註)]

 

1. John Hick and Brian Hebblethwait(ed), Christianity and Religiou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1), pp 87~91

2. 니터, 폴 F, 오직 예수 이름으로? (서울: 한국 신학 연구소) 1985 p135

3. 한철하, 고대 기독교 사상 (서울: 대한 기독교 서회, 1970) p 38

4. Ibid, pp 62~64

5. Walter M. Abbott, S. J. (ed), The Documents of Batican (New York: Guild Press, 1966). 이 책은 바티칸 공의회 문서와 함께 논평을 수록하고 있다.

6. Hick, pp 52~79

7. 니터, p 250

8. Frank Whaling(ed), The World's Religious Traditious (London; T. T. Clarke LTd, 1984) p 207

9. 니터, pp 253~254

10. Ibid, p 199

 

 

[참고문헌]

 

1. 니터, 폴 F, 오직 예수 이름으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2. 카워드, 하롤드,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서울: 서광사) 1990

3. Aldwinckle, Russell F, Jesus-A Savior or the Savior (Macon: Mercer University Press) 1982

4. Hick, John and Hebblethwaite Brian(ed), Christianily and Other Religion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1

5. Rouner, Leroys, (ed), Religious Pluralism (Notre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4

6. Thompson, Normah, Religious Pluralism and Relinious Education (Birmingham: Religious Education Press) 1988

 

 

  목창균 박사/서울신대 전 총장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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