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로이드 존스, 「성령론」(18)

새벽지기1 2016. 6. 22. 14:49


21 장 성령을 소멸하는 죄(2)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

 

성령이 이라면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있지는 않는가?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 않는가? 불에는 열과 빛 뿐만 아니라 힘의 특성이 있다. 불이 가는 곳은 어느 곳이나 진보와 파괴가 있다. 능력은 성령의 특성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대단히 강대한 능력이시다. 그런데도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고 저항하고 근심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큰 신비이다. 성령의 능력은 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는 상처입기 쉬운 온순한 비둘기로도 오신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2).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령(불과 능력)에 의하여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자극하시고 강권하시며 인도하신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생명과 원기와 활기를 주신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는 죽은 자요 생명이 없는 자이다. 그들은 살고 있지 않고 다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며 그것이 오늘날 세상의 비극이다. 하나님의 영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8).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도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생동적이어야 한다. 무기력하다면 그것은 성령을 소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증거할 수 있는 대담성과 힘을 부여하신다. 성령이 능력이 주어지면, 베드로 뿐 아니라, 교회사를 통하여 비천한 사람들이 큰 증인들이 되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기도하도록 인도해 주신다. 기도하는 가운데 능력을 주신다. 교회가 왜 그토록 무기력한가? 교회에 기도의 능력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대부흥의 역사를 읽어보라. 그러면 한번도 공중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기도하기 시작하고 전에는 기도를 하지 않던 자들이 개인적으로 기도를 시작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임하시어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 기쁨과 찬양과 감사를 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어느 면으로든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단히 큰 책임이 있다. 우리는 교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지 세상을 우선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밖에 있는 자들에게 우리가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활력있고 감동적인 곳이어야만 한다. 만일 교회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것이다.

 

1. 성령을 소멸하는 여러 경우들

 

중생과 성령의 세례를 동일하다고 가르치는 것보다 더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중생할 때 성령세례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왜 사도들과 그토록 차이가 나며 왜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들과도 같지 않은가? 사도들은 오순절 전에 중생하였다. 성령의 세례는 중생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참하고 불행한 상태에 있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일이나 양자의 영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존재이며 사랑하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을 그것을 지적으로, 이론적으로만 믿을 따름이다.

 

1) 성령의 인치심과 보증과 확신과 증거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여러분은 성령을 소멸하고 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영을 초월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

 

2) 그것을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믿는 자들이 많이 있다. 오순절의 사건은 일회적이며, 두 번 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성령을 소멸하고 있다. 베드로는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이 약속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이 축복은 우리와 자녀와 후손들에게까지 수세기를 통하여 계속되는 것이며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위대한 부흥운동도 그들에게 대답이 될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3) 그것은 몇몇 위대한 성도들에게만 해당된다고 함으로써 성령의 사역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는 자들이 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이 성령의 능력과 열정의 축복이 어떤 특별한 성도나 설교자나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사용하시고자 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라는 말씀은 어느 곳에도 없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것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들에게주신 약속인 것이다.

 

예배 드릴 때 무엇인가 기대하는 바가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뵙고 서로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서 모두 함께 모일뿐 아니라, 성령의 은혜스러운 감화를 받으려고 모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지극히 고귀한 특권이다. 어느 순간에라도 성령께서 오셔서 그곳을 당신의 영광과 임재와 광체로 충만하게 하실 것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임에 이런 기대가 없다면 그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다.

성령과 성령의 사역에 대해 우리의 교리는 완전하고 분명해야한다.

 

4) 형식주의는 교회 안에 있는 가장 큰 독이다. 유감스럽게도 형식주의는 오늘날 모든 교회의 모습이다. 형식주의는 로마 카톨릭에서 극도로 발달하였다. 그 화려함과 진행의 순서나 의복 등등의 지극히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장엄한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사람들은 실제로 그 예배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부흥이 카톨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할 수도 없고, 할 여유도 없다. 모든 것이 인간들에 의하여 통제된다. 예배는 세목에 이르기까지 연출되어지고 모든 것은 완벽하고 질서 정연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든 종파에서 그런 방법을 모방하고 있다. 이렇게 물어보자. 성령의 자유와 병존할 수 있는 어떤 규정의 예배의식이 있는가?

 

예배가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반복될수록 성령께서 역사하실 기회가 적어진다. 예배는 아름답고 완벽하지만 성령의 숨결이 어느 곳에 있는 것일까? 소박하고 경건한 목사들이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성령이 떠난 것처럼 보인 것은 바로 19세기 중엽에 품위와 고상함과 학문과 지식과 교양에 대한 열망이 교회 내에 만연된 때였다. 인간들이 성령을 소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형식주의는 언제나 성령의 능력과 생명과 자유의 가장 큰 적이다.

 

이 사실은 우리의 생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교훈도 알고 말을 유창하게 잘하면서도 그러나 참 생명과 능력과 자유가 없다.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아직도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감사하는 바리새인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앞으로 더 매진해야 할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약성경 안에 있는 생명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가르침을, 번거로운 것이 두렵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거부하고 있다면,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쓸모없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성령께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셔서 그의 자비로운 감화로 여러분의 마음을 민감하게 해 주실 때에 성령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오셔서 소생케 하시고 감화하실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성경 공부를 하라고, 기도하라고, 무언가 일을 하라고 촉구하실 때 성령을 소멸하지 말자. 저항하지 말자.

 

또한 우리 안에 주신 은사를 힘껏 활용하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하지 않을 때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불도 꺼지기 쉬운 법이다. 가끔 그 불을 북돋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열정은 식어버릴 것이다. 풀무질을 하고 부지깽이로 재를 제거하여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라. 뜨거움이 사라지고 능력이 점점 적어져 가고 있는가? 불길을 돋우라. 깨어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게으름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은 것에 만족하는 것과, 연료를 공급하지 않고 부채질을 하지 않는 것과, 성령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활동하면 할수록 성령께서는 더욱 충만하게 임재하실 것이며, 자신을 분기시면 시킬수록 성령께서 더욱 여러분을 분기시킬 것이다. 이것이 영적생활의 철칙이다.

 

오늘날 무엇보다도 가장 긴요한 일은, 개개의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교회에, 성령의 능력, 성령의 불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성령을 소멸하지 말자. 오히려 성령을 갈구하며 성령께 기회를 드리고, 그의 자비로운 인도하심에 자신을 복종시키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