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영적인 마음을 가진 증거가 아닌 것' / 존 오웬

새벽지기1 2016. 6. 13. 07:11


영적인 마음을 가진 증거가 아닌 것'

 

이제 우리의 생각이 영적인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자. 생각을 점검하는 방법은 신뢰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우선 신뢰할 수 없는 점검법 세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설교를 경청한다고 영적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첫째, 좋은 설교를 즐겨 경청한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 당시에도 예수님의 설교를 경청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예수님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르치셨듯이, 설교가 끝나자마자 그들은 들은 말씀을 잊어버렸다. 돌밭이나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한 땅 또는 토양이 매우 얕은 땅과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마13:18-30).

물론 신자들이 영적인 마음을 갖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좋은 설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설교의 영향을 받는 이들과는 달리, 신자들이 설교로부터 유익을 얻는 것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방식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믿음이 독려된다. 신자의 영적 필요들이 충족된다. 그리고 영적인 이해가 성장한다.'

 

유창하게 기도한다고 영적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둘째, 유창하게 기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말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은사가 그가 영적이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타고난 은사는 신자가 그리스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섬기게 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은사와 더불어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그 기도가 영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으로 드리는 기도는 무언가를 몹시 원하거나, 큰 곤란을 당했을 때, 또는 타고난 언변때문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를 모두 거짓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거름에서 악취가 나므로 거름을 결코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어리석다. 은사가 반드시 영적인 마음을 나타내는 표시는 아니지만, 영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우리의 기도가 영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선 기도의 동기를 점검함으로써 알 수 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동기가 신실한지 아닌지 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요일5:10).

 

기도가 기쁨을 주고, 심령을 새롭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양심을 편안하게 한다면 그것은 참된 기도이다(시36:7-9). 우리의 기도에 이러한 것이 없다면, 참된 기도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겸손히 간구해야 한다.

 

또한 기도가 거룩하게 행동하려는 열망을 수반한다면, 그 기도는 영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올바로 기도하는 신자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경건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피하려 할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영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끝으로 기도가 실제 행동을 수반한다면(약1:27) 그것은 참된 기도이다. 다른 이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되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는 갈길을 지시하지만 정작 자신은 늘 같은 장소에서 있는 푯말과 같다. 때로 참된 신자가 "나는 기도가 즐겁지 않아." 하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이 반드시 그의 기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가 잃어버린 기도의 기쁨을 슬퍼한다면, 적어도 가끔씩은 기도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기도 부족으로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게 된다면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참된 간구자는 기도 중에 마침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것이다.

 

영적 대화를 한다고 영적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셋째, 영적인 대화를 한다고 반드시 영적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른 신자들의 영적인 대화에 귀 기울일 때 영의 생각이 자극될 수도 있다. 영의 생각이 외적인 자극에 의해서만 생겨난다면, 사람 속에 있는 영적인 마음으로부터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 생각이 호텔을 방문한 손님 같은지 아니면 집에 거하는 자녀 같은지 자문함으로써 테스트할 수 있다.

 

호텔에 손님이 도착하면 일시적으로는 부산하지만, 잠시 후면 그들은 떠나고 잊혀진다. 그러면 호텔은 다른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자녀는 집에 속해 있다. 자녀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부모는 걱정하며 기다린다. 부모는 자녀에게 줄 음식과 위로의 말을 준비하고 있다.

 

참된 영적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생각은 자녀와 같다. 부모는 자녀에게 언제나 기대감을 가지며, 자녀를 잃어버리면 찾으려고 애쓴다.

 

* 존 오웬의 '영의 생각 육의 생각' 중에서 chapter3 발췌 (28-34p)